ROC 문제, 구조적 개혁 필요…무기 구매 절차 안정화가 진정한 국방개혁
갑자기 대검이 논란이 됐다. 며칠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육군 특전사의 새로운 대검이라는 사진이 올라왔다. 공개된 특수작전용 칼은 미제 군용 대검과 전체적으로 유사한 형태지만 세부적으로는 다른 형상이다. 특수작전용 칼을 처음 공개한 SNS에는 새로운 대검이 18만원쯤의 가격이라고 공개돼 있었다.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일파만파 비난 여론이 끓어올랐다
◆ 논란 속 대검
우선 지적된 것은 색깔이다. 사진 속 칼은 번쩍거리는 외관으로 과연 군용이 맞는지 지적됐다. 은색으로 번쩍거리는 칼날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손잡이의 칼을 들고 야간에 적 초병을 공격하려고 이동하면 곧바로 들키지 않겠냐는 주장이었다. 또 칼날의 모양이나 크기, 손잡이 등도 지적 대상이었다.
가장 큰 우려의 목소리는 방산비리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사진상으로는 뛰어난 성능으로 보이지 않는데 왜 가격이 비싼지, 누군가 중간에서 장난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였다. 과거 '95만원짜리 USB'의 사례처럼 국방예산이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SNS에 사진 하나 올라간 수준이었지만 점차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며 기사화가 되며 논란이 더욱 가열됐다. 모 매체에서 '비싼데 부실한 군특수작전 칼, 손잡이 불편 전투부적합'이라는 기사를 내놓으며 이슈가 정점을 찍었다. 기사에는 보급된 칼에 대한 일선 특전사 대원의 불만이 소개됐다. 논란이 가열되자 육군은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사안을 설명하면서 국민의 이해를 도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특수작전칼을 찾아서
특전사가 생각하던 접이식 전술용 칼은 아마도 스트라이더 SMF에 기반한 모델로 보인다. 스트라이더 SMF는 미 해병 특수전사령부가 채용한 특수작전용 칼이다. 커스텀 칼을 만드는 스트라이더 나이프 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이 칼은 가격이 무려 60만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CPM S30V라는 특수한 스테인리스 스틸 강재를 칼날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특전사가 책정했던 7만원으로는 어림없는 가격이다.
하지만 강재가 무를 경우 군용으로 쓰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몇 번 칼을 쓰고 나면 무뎌져서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경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숯돌로 갈아 날을 세우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같은 420 계열이라도 420J는 저급 강재로 한계가 있지만, 420HC는 탄소함량이 높아 그나마 날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 대게 일반 생활용 칼로 420HC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경도가 높아도 반드시 실용적인 것은 아니다. CPM S110V 같은 강재는 일반적인 연마석으로 아무리 갈아도 날이 서지 않는다. 제대로 된 글라인더로 날을 세워야 사용이 가능하다. 심지어 칼을 만드는 업체도 고개를 저을 정도가 된다. 물론 가격도 살인적으로 비싸다.
◆ 특전사용 서바이벌 나이프
특전사에서는 고민했을 것이다. 애초 2015년에 도입하자고 했던 7만원짜리 접이식 칼도 결국은 420 계열 저급 강재를 사용한 제품이다. 이것으로 작전이 가능하냐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아예 특전대검 자체를 교체해 새로운 특수작전용 칼을 구매하자고 결정한 것이다. 7만원이었던 개별 단가는 신형 특수작전용 칼을 위해 15만원까지 올라갔다.
특수작전칼은 2017년 8월 입찰을 시작해 참가한 6개 회사 가운데 폭스 커트레이 제품이 채택됐다. 보도에 따르면 채용된 제품의 가격은 17만4000원으로 알려진다. 현재 폭스가 만드는 군용 나이프는 익스플로러 라인업이 있는데, 전체 길이 32.5㎝·날 길이 18.5㎝ 크기며 경도는 HRC 58~60 정도로 알려진다. 특전사가 채택한 모델은 이 시리즈 가운데 가장 비싼 모델인 '폭스 램블러' 모델의 아이녹스 버전으로 보인다. 해외 시중판매가격이 180~200달러(19만2000원~21만3000원)쯤이니 17만4000원에 샀다면 최소한 가격은 뒤통수 맞지 않고 잘 산 셈이다.
◆ 결국 ROC와 구매의 문제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났을까? 일단 물건을 구매할 때 내리는 작전요구성능(ROC)에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차를 사고 싶다고 치자. 원하는 모델은 2000㏄ 엔진을 갖춘 세단차량이다. 예산은 3000만원 정도 있다. 보통 사람이면 이 돈을 들고 현대·기아차든 GM코리아든 찾아가서 계약하면 된다. 국가는 다르다. 어느 특정차량이 정해지면 안되고 엔진 2000㏄ 이상, 좌석 5개 이상, 세단형 차량 등 ROC를 정해놓고 걸러내야 한다.
이번 특수작전칼을 보면 최소한 그런 짜고치기 없이 실무담당관이 나름 고심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기본 요건인 색상규정이 빠졌다. 입찰에 어떤 물건을 가지고 올지는 참가업체 마음이다. 예를 들어 특전사가 하위 모델을 원했더라도 업체가 자신의 이윤을 위해 상급 모델을 들고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ROC에만 부합하고 다른 업체와 가격경쟁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구매하려는 취지가 무엇이든 방사청으로서는 ROC에 따라 기계적 판단을 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여기서 일을 바로 잡으려고 다른 판단을 내리면 담당자가 피곤해진다. 입찰에 참가한 업체가 부정당하다며 투서를 쓰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찰참가업체는 대부분 '꾼'들이다. 어떻게 하면 입찰을 따 먹을지 대략 견적이 나와있고, 방사청이나 군 부대의 약점이 뭔지 잘 안다.
하지만 ROC 설정에서 치밀함이 부족했다는 반성이 필요하다. ROC 설정이 잘못된 것을 임무를 담당한 1명의 담당관 잘못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ROC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게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제대로 된 ROC가 있어야 제대로 된 무기체계를 구매하거나 만들어낼 수 있다. 한마디로 ROC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방개혁의 기본이자 성과라는 얘기다.
◆ 좋은 장비를 사주려는 노력은 높이 사자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특전사가 일선 대원을 위해 좋은 장비를 사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칼 하나를 바꾸려면 7~8년쯤의 시간이 걸린다. 소요 제기하고 ROC 획정한 다음 중기계획에 태우는데 몇 년, 업체 선정에 몇 년, 제작에 몇 년, 시험평가에 몇 년, 보급에 몇 년, 이런 식이다. 또 필요한 장비를 국외구매로 잘 사주지 않는다. 그나마 특전사라서 칼이라도 국외구매를 허용해준 것이다. 과거 사례도 많지 않았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만약 신형 야간투시경 사업이 시작돼 애초 구매하기로 한 부대에 전부 보급이 끝나고 사업이 종료됐다. 그런데 그 사이에 신규부대가 창설되면서 야간투시경이 필요해진다. 이 부대가 새 야투경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앞서 설명한대로 현재의 시스템에 따르면 중기계획에 태우는 등 과정을 거쳐야 해 7~8년의 시간이 걸린다. 신규로 참수작전부대를 만들었는데 신규장비를 사주려면 7~8년이 걸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육군에서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국방개혁의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굶는 수밖에 없다. 방산비리 공포증에 빠져 일을 못하면 우리 국방은 구멍 날 수 밖에 없다. 공무원 제도의 장점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천천히 시스템에 맞춰 안정적으로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다. 바로 그런 제도로 인해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해야 할 일에 구멍이 생긴다. 변화와 개혁이 있으려면 응당 불법적 요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가운데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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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 대응센터장은 서울대 법대와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방부·방사청·합참 정책자문위원을 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