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보편화된 국민 모두를 위한 초·중·고·대로 연결되는 대량교육체제가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독일의 전신인 프러시아는 지방 영주 중심의 중세 영방 체제를 벗어나지 못해 중앙집권화, 왕권강화가 유럽에서 가장 늦어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짓밟히는 수모를 겪었다.

요한 고트리프 피히테가 독일 국민의 각성을 위해 고안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에 대한 교육이었다. 귀족이나 특수 계층만 소규모로 교육한 당시로는 획기적인 개념이었다. 대량교육을 위해 보편화된 학제·학년·학기·학급·수업·평가·교과서·교실 등이 표준화됐다.

당시 표준화 교육은 교사가 칠판을 이용해 많은 지식을 효율적으로 설명·전달하는 강의식 수업 방식이었다. 이는 오늘날 거의 모든 수업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방식이다.

피히테가 고안한 일방전달식 수업 방식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교육 방식도 속속 논의·도입됐다. 예를 들어 ▲창의성·문제 정의 및 해결·팀워크·커뮤니케이션·리더십을 키우기 위한 학생참여 ▲상호작용을 강화한 팀학습 ▲토론식 수업 등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를 가장 효율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것은 강의 방식이다.

강의를 녹화해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이러닝 기술도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저작도구도 크게 발전했다. 오피스 믹스라는 무상 애드인(Add-In) 프로그램을 파워포인트에 설치하면 노트북이나 PC에서 슬라이드별로 동영상을 삽입하고 순서를 바꾸거나 편집할 수 있고 동영상 재생, 비디오 파일 생성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눈여겨 볼 점은 '온라인 대중 공개강좌(MOOC)'가 지속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개 이상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 MOOC인 코세라를 비롯해 이디엑스·퓨처런 등 글로벌 MOOC 플랫폼은 세계 유명대학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온라인 강의를 전 세계에 서비스 중이다.

각국 정부와 대학도 경쟁적으로 MOOC 플랫폼을 구축하고 과목을 확대하고 있다. 전 세계 MOOC 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클래스 센트럴'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전 세계 800개 이상 대학에서 9400개쯤의 MOOC 과목을 제공하고 7800만명의 수강생이 활용하고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전체 MOOC 과목 중 과학기술 비중은 과학(10%), 공학(17.1%), 기술(19.9%), 수학(3.3%)에 의학(7.2%)까지 포함해 57.5%에 달한다.

MOOC 덕분에 학업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 어디든 세계 최고수준의 강의를 거의 무상으로 수강할 수 있다. 실시간 자동번역 기술이 개선되고 있어 조만간 언어장벽도 해결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교육부 주도로 국가평생교육원을 통해 2015년 K-MOOC를 출범해 현재 100개 이상의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과목수를 꾸준히 늘리고 있으며 국내외 MOOC 플랫폼에 강의를 제공할뿐 아니라 자체 MOOC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카이스트도 2016년 카이스트 MOOC(KOOC)를 개설했고 20개쯤 과학기술 강의를 개발·운영해 4만명 이상이 수강했다.

MOOC뿐 아니라 주요 출판사도 e-Book 교과서, 연습문제는 물론 강의 비디오까지 포함한 학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온라인 시험 과정을 카메라로 녹화하고 유무선 커뮤니케이션까지 차단 또는 모니터링해 온라인 시험의 공정성도 이뤘다. 또 강의 비디오 중간에 질문과 답변까지 내장하는 Q&A 기능, 학습자 커뮤니티 기능도 개발돼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상호작용과 팀워크까지 가능해졌다. 심지어 가상 모델 등을 이용해 원격으로 실험실습도 할 수 있다.

200년 전 시작된 대량교육 혁명 이후 강의·학습의 디지털화·온라인화는 새로운 교육혁명으로 이어진다. 수업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강의는 이러닝이나 디지털 교과서로 학생이 미리 공부할 수 있게 변화했다. 귀중한 수업시간은 종래 하지 못하던 팀웍 기반 과제·프로젝트에 할애되거나 실습·문제풀이·토론·발표 등 상호작용이 필요한 학생참여형으로 변모했다. 전통적 강의를 디지털화한 교과서로 '상품화' 돼 누구나 손쉽게 판매·구매·이용까지 할 수도 있다.

최근 확산되는 거꾸로 학습, 문제기반 학습, 프로젝트기반 학습, 동료 학습, 팀 학습 등 창의적 수업방식의 구현도 가능하다. 이러닝·MOOC·디지털 학습콘텐츠가 교실에서 펼쳐지던 오프라인 교육을 변혁시킨 셈이다.

강의·학습 콘텐츠가 디지털화·온라인화 되고 MOOC로 인터넷에 무상 공개됨에 따라 누구든 시공간 제약 없이 학습에 참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대량교육은 최소한 경제력을 갖춘 선발된 사람만 제한된 시간·공간에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MOOC가 확산되면 이 모든 제한이 사라질 수 있다.

대학 재학생도 다른 유명 대학의 강의를 마음껏 수강할 수 있다. 제 2의 '대량교육'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코세라, 에드엑스 등 MOOC 사용자 통계를 보면 기업 재직자, 재학생, 구직자의 지식 보충, 재교육뿐 아니라 은퇴자 등 지적 호기심에 의한 학습도 많다.

카이스트의 KOOC 과목 수강생 중 80대인 노인도 최근 인공지능 과목 등에서 왕성한 학습의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MOOC를 통해 강의가 대학 내에만 머물지 않고 인터넷에 연결된 누구나 무상으로 개방되는 열린교육·나눔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교실에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으로 강의나 수업을 듣는 것도 가능하다. 교수와 학생이 마음만 먹으면 '열린교실'도 할 수 있다. 영상 데이터를 압축하는 코덱장치, 추가 스크린과 프로젝터만 설치하면 실시간 원격 공동 수업도 할 수 있다. 카이스트와 북경대, 남가주 대학교가 수년간 원격공동수업을 했는데 기술적 장애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원격 토론식 수업도 가능했다.

실험, 실습, 프로젝트 팀웍을 위한 오프라인 세션과 결합한 효과도 극대화 되는 모습이다. 카이스트 KOOC 일부 과목에서 수강자를 위한 오프라인 세션으로 실습, 팀 과제 등을 제공한 결과 전국에서 100명쯤 수강자가 대전까지 와서 참여했다. 적절한 수준의 오프라인 세션을 결합하면 MOOC 및 원격교육에 의해 수준 높은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최근 하이테크 기업은 MOOC 및 실시간 원격 교육을 활용해 직원의 과학기술 대학원 교육을 대학에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직원을 수년간 파견 교육 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근무 중 원격수업, 온라인 수업, MOOC 강의를 듣고 학위를 얻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기업의 재교육, 기술역량을 손쉽게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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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억 교수는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교육원장이며 대한산업공학회 회장입니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신성장동력기획단 위원, KAIST 정보시스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자동화, 정보기술 응용, 산업지능 분야 전문가이며, 일방전달방식강의에서 탈피하는 수업방식 혁신을 통한 교육혁신, 교육의 기회 균등 실현을 위한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 확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KAIST,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