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억의 과학에세이] ‘과학기술 MOOC’로 과학기술 역량 제고해야 (하)

  • 이태억 교수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입력 2018.02.07 12:35 | 수정 2018.02.08 06:00

    최근 나타난 기술혁신 가속과 산업·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수십 년간 진행된 자동화·정보화에 인공지능(AI)까지 가세하며 생산직·기능직은 물론 사무직·서비스직·기술직·전문직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진다. 기술혁신으로 신개념 비즈니스와 일자리가 생겨나며 창의적·융합적 과학기술 역량에 대한 요구가 높지만, 대학에서 배우고 직장에서 체득한 역량만으로 따라가기 어렵다.

    창의적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혁신도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의 평생 교육체계를 갖춰야 한다. 변화 추세에 따라 대규모 과학기술 재교육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강의의 고정관념에 얽매인 교수와 학생이 교육의 새 물결을 수용해 변화하는 것이다.

    MOOC·실시간 원격 스트리밍·원격회의 등 기술을 활용하면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전 국민의 과학기술 역량 업그레이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새로운 교육기술을 이용한 재교육과 산학협력 교육 수요가 늘어나면 관련 비즈니스도 생길 수 있다. IT분야에 특화된 MOOC 기업인 '유다시티'는 산업계 전문가를 활용해 핵심 실무지식을 수개월 동안 집중 교육하고 나노디그리(Nanodegree)라는 자체 학위를 수여하고 있으며, 산업계에 널리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온라인 디지털 교육이 발전하고 원격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규제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는 점이다. 별도 법인으로 설립된 사이버대학이 아닌 일반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원격으로 수업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전임교수는 몇 명만 확보하고 대부분의 수업을 이러닝 교육으로 때우는 부실대학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규제는 대체로 최악의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전체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책임질 일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면피적 발상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최근 원격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자 교육부는 대학원과정 수업의 20%까지만 원격교육하는 것을 인정하도록 규제를 완화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원격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일반대학에서 MOOC나 원격교육으로 학위가 아니라 학점만 인정하겠다는 것도 현 체제에서 쉽지 않다. 수익형 자산 등 복잡한 요건을 갖춰 평생교육기관을 별도 설립해야 가능하다.

    원격교육을 악용한 부실대학 방지가 중요할지, MOOC 등 실시간 온라인 수업의 원격교육으로 교육 기회를 확대해 산업과 국민 전체의 과학기술 역량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할지 기로에 서 있다.

    국민이 현명하게 선별, 결정, 책임져야 할 문제를 정부의 기우로 원천봉쇄하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다. 국민의 과학기술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전략적 기회를 놓치고 있음을 각성해야 한다.

    MOOC도 정부가 직접 챙기기보다 대학의 자발적인 노력에 대해 적절한 재정지원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MOOC는 유명대학의 출자 또는 외부 투자를 받은 사회적 기업이다. 유명대학에서 강의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수강자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나 150명에 이르는 운영 및 기술 인력과 컴퓨터 및 통신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MOOC는 원하는 수강생에게 유료 수료증을 제공하는 등 부가서비스로 비용을 충당한다. 수강생 수가 많아야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힘들어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 각 대학은 MOOC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정부 주도의 MOOC에는 자유롭게 과목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자체 MOOC 플랫폼을 개발·운영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대학별 MOOC 플랫폼의 지속가능성은 미지수다. 24시간·365일 장애없이 많은 강의비디오를 전국 다수의 수강자에게 고품질 비디오 스트리밍으로 제공하기 어렵고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MOOC 플랫폼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는 공용으로 하되, 대학별 MOOC 정체성은 유지하고 과목 등록 및 유지 기능을 대학별 독립적으로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수강생 입장에서는 단일 로그인과 수강생 관리, 수강기록 관리, 전체 과목 개설 스케줄 등을 통합하는 것이 맞다.

    현재 MOOC 과목 개발 시 필요한 비디오콘텐츠 편집과 치장 등은 외부용역을 쓰며 비용은 수천만원에 달한다. 이런 고비용 구조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고가 스튜디오의 블루스크린 앞에서 촬영한 교수의 영상 뒤에 멋진 배경 영상을 넣을 이유도 없다. 오피스 믹스 같은 간편한 도구로 교수가 혼자 손쉽게 강의를 녹화·편집해 저비용으로 실용적인 이러닝 컨텐츠를 대량 생산해야 한다. MOOC 과목의 품질은 강의 내용에 있지, 현란한 비디오 편집에 있지 않다.

    최근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은 이런 방식의 협력을 통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STAR(Science and Technology of Advanced Research) MOOC를 출범할 예정이다. 플랫폼 HW와 SW는 이미 개발·운영되는 공익 기관의 것을 사용하면 돼 중복개발, 운영비 부담도 없다.

    STAR MOOC가 정착되면 더 많은 대학이 참여하는 개방형 과학기술 MOOC로 발전할 수 있다. 과학기술 교과목의 특성을 살려 온라인 가상 시뮬레이션 등 디지털 실험실습 콘텐츠를 개발·공유하는 MOOL(Massive Open Online Lab)을 개발해 MOOC과 연계하고, 오프라인 실험실습 세션을 결합하면 수준 높은 과학기술 교육이 가능하다.

    이제 각 대학과 교수의 자발적이고 명예로운 참여를 끌어내는 전략과 대학 간 협력과 조정을 할 운영체계를 갖출 과제가 남았다. 과학기술 교육의 진정한 기회균등 실현, 격차 해소, 국민과 산업의 과학기술 역량을 제고할 기회를 살려야 한다. 정부는 관련 규제를 과감히 해소하고 대학이 명예롭게 자발적·자율적으로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슬기로운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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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억 교수는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교육원장이며 대한산업공학회 회장입니다. 대통령 직속 규제ㅁ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신성장동력기획단 위원, KAIST 정보시스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자동화, 정보기술 응용, 산업지능 분야 전문가이며, 일방전달방식강의에서 탈피하는 수업방식 혁신을 통한 교육혁신, 교육의 기회 균등 실현을 위한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 확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KAIST,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