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회생을 위해 한국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소식은 지난 주말 전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평창 동계올림픽만큼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정부가 사기업을 위해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GM에 묶여있는 30만명쯤의 일자리가 공중분해되는 위기를 방관할 수도 없다.
한국GM은 앵글 사장의 방한이 통상적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지원이 아닌 '회사가 어려우니 많은 도움을 달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방한이라고 했으나 여기에 더해 메리 바라 CEO의 발언과 거의 실시간으로 카젬 카허 한국GM 사장은 노조와의 2018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상견례에서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다"며 위기상황을 강조했다.
정부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수천억원이나 되는 국민 세금을 사기업 하나를 위해 투입하는 건 국민 정서상 용납되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총자루는 현재 GM이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자리 창출'이 가장 큰 과제인 현정부로서는 한국GM과 직간접적으로 엮여있는 30만여개의 일자리를 눈뜨고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GM의 위기는 GM의 사업 개편이 가장 큰 이유다. 내수 부진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한국GM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내수 점유율 10%대를 유지해왔다. 게다가 2016년에는 사상 최대치인 16만9034대를 기록했다. 또 내수 판매는 쉽사리 증대할 수 없는 '내수 포화'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간 한국GM이 수출에 매달려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수출 전략은 해외 시장 환경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GM의 사업 개편으로 한국GM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GM이 적자를 이유로 한국GM이 공급을 담당했던 유럽 쉐보레를 철수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GM의 수출은 2012년 65만4933대에서 2013년 62만9478대, 2014년 47만6151대, 2015년 46만3468대, 2016년 41만6890대로 줄었다. 2017년에는 39만2170대로 떨어졌다.
한국GM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던 것은 '판매 진작'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라는 공고한 회사가 버티고 있는 한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장을 지키고 싶은 현대·기아차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판매 늘리기는 결국 누가 더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느냐의 싸움인데, 물량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국GM은 굳이 가격 정책면에서 승부를 걸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조 역시 사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국GM 노사 문제는 임금 인상에 머무르지 않고,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경영실책의 문제를 모두 생산직 직원에게 돌릴 순 없지만 고통을 분담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다. 회사가 정상화 될 때까지 '임금 동결'이라도 먼저 외치는 결단이 필요하다. 대신 이를 카드로 GM과 한국GM 측에 생산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향후 몇년간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일자리'에 연연해 묻지마 지원이 이뤄질 수는 없다. 회계 내용을 모두 들여다 본다는 게 현재 정부의 방침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이중, 삼중의 논리 장벽을 만들어 놓은 GM에게 회계상 '깨끗하다'는 명분만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생산 및 수출 물량에 대한 보장이 없을 경우 지원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어차피 지원을 해도, 하지 않아도 정부가 욕을 먹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일자리를 100% 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