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삼성전자가 2018년형 QLED TV에서 '블랙' 강조하지 못한 속내는

입력 2018.03.10 21:10 | 수정 2018.03.11 06:00

TV는 '가전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제조사의 기술력을 맘껏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인 제품으로 꼽힙니다. 특히 최고의 기술력을 집약한 프리미엄 TV는 IT 전시회 등에서 관람객과 가장 먼저 마주치는 얼굴 역할을 하는 만큼 각 제조사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삼성전자 2018년형 QLED TV 발표 행사 현장 모습. / 삼성전자 제공
세계 TV 시장을 호령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잇달아 2018년형 신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각각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입니다. 두 회사 모두 디스플레이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경쟁 구도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2018년형 신제품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더 똑똑해진 TV를 강조했습니다. 반면, 예년과 비교하면 화질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내용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느낌입니다. 삼성전자가 2017년부터 기존 SUHD 브랜드 대신 QLED 브랜드를 도입하면서 불거진 마케팅 논란도 이제 한풀 꺾인 걸까요.

디스플레이 화질 경쟁은 조용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디스플레이 해상도와 컬러 볼륨 등은 이미 최고 수준에 달한 만큼 보다 단순히 수치를 내세우는 비교우위보다 사용자에게 더욱 사실적이고 몰입감 있는 화질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명암비'입니다. 명암비는 디스플레이가 가장 밝은색과 가장 어두운색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를 나타내는 기준이 됩니다. 명암비는 완전한 검은색과 완전한 흰색 사이의 단계를 측정해 해당 디스플레이가 얼마나 많은 단계의 음영을 표시할 수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명암비가 높은 디스플레이는 어두운 곳은 더 어둡게, 밝은 곳은 더 밝게 표현할 수 있어 더욱 실제에 가까운 화면을 제공합니다.

삼성전자도 2018년형 QLED TV에서 명암비를 높이기 위해 한층 짙은 검은색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선했습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2018년형 QLED TV에는 백라이트 구조를 직하 방식으로 바꾸고 촘촘하게 밝기를 조절해 명암비를 개선하는 '다이렉트 풀 어레이' 기술과 빛 반사 영향 없이 온전하게 검은색을 표현하는 '안티 리플렉션' 기술이 새로 적용됐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러한 점을 전면에 부각하지는 않는 모습입니다. 보도자료에서도 단지 ▲최고 수준의 화질 ▲화질 업스케일링 최적화 ▲디테일한 명암비 ▲대화면 고화질 시대 주도 등으로만 뭉뚱그려 표현했을 뿐입니다.

이유는 '완벽한 블랙'이란 표현은 이미 LG전자가 수년 전부터 OLED TV의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며 대대적으로 광고해온 마케팅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신제품에서 검은색 표현력을 강조할수록 LG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마워할 만한 일입니다. 자사의 비교우위를 경쟁사가 홍보해주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LG전자 2018년형 OLED TV 발표 행사 현장 모습. / LG전자 제공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밀고 있는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패널 기술의 차이를 살펴보면 배경을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현재 삼성전자의 QLED TV는 액정표시장치(LCD)에 퀀텀닷 소재 필름을 입힌 것입니다. LCD는 별도의 백라이트가 있어야 하는데, 삼성전자가 2009년부터 이 백라이트를 LED 소재로 바꾸면서 LCD TV를 LED TV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퀀텀닷의 Q를 붙여 QLED TV로 명명하기에 이릅니다.

LCD 패널은 백라이트를 아무리 미세하게 조절하더라도 희미하게 새는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LCD 패널에서는 검은색을 표현하더라도 약간 부옇다는 느낌을 줍니다. 삼성전자도 2017년형 QLED TV에서 이러한 아쉬움을 포착하고, 2018년형 신제품에서는 백라이트의 영향을 최대한 줄여 보다 완벽한 검은색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반면, LG전자가 완벽한 블랙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OLED TV는 하나하나의 화소가 스스로 빛을 내는 원리로 동작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검은색을 표현할 때는 그냥 해당 위치 화소를 꺼버리면 됩니다. 해당 화소는 아무 빛을 내지 않으므로 사용자 눈에는 말 그대로 무(無), 자연 그대로의 검정으로 보이게 됩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신제품에서 기존에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을 개선하고, 강점은 극대화하는 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맘껏 자랑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인 셈입니다.

올해 초 호주광고심의위원회 산하 광고분쟁사무국(ACB)은 삼성전자 QLED TV와 LG전자 OLED TV의 마케팅 표현을 놓고 과장 여부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LG전자는 삼성전자가 QLED의 정의에 맞지 않는 브랜드 사용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엄밀히 학계에서 말하는 진정한 QLED는 자발광이라는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삼성전자 QLED TV는 아직 LCD 기반으로 백라이트에 의존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삼성전자는 LG전자의 완벽한 블랙이란 표현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ACB는 현재로서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의 QLED 브랜드 사용을 인정했습니다. ACB는 LG전자 OLED TV의 완벽한 블랙이란 표현도 문제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지난해 2500달러(268만원) 이상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은 1위 삼성전자(39%), 2위 LG전자(26%), 3위 소니(24%) 순이었습니다. 반면 IHS마킷은 같은 기간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을 1위 소니(36.9%), 2위 LG전자(33.2%), 3위 삼성전자(18.5%)로 집계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마다 점유율 계산 방식이 달라 순위도 다른 결과가 나왔지만, 소니가 LG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을 공급받아 만든 OLED TV '브라비아'로 대약진을 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소니의 부활로 OLED TV 진영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표정은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