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채식주의자, 다시 말해 '베지테리언'입니다."

인터뷰 시작부터 본인 식성 얘기를 꺼낸다. 여성가방을 만드는 공학도 출신 남성 디자이너, 안 그래도 이력이 매우 특이한데, '채식'까지 비즈니스와 연계되는 관전요소라고 한다. 여성가방 브랜드 '마르헨제이'의 조대영 대표 이야기다.

조 대표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은 디자인에 쏠렸다. 웹 디자이너 직장생활을 거쳐 K팝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JYP와 SM을 비롯한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고객으로 두고, K팝 스타들의 음반, 화보, 굿즈 등을 제작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다. '본인 브랜드 구축'이라는 열망 때문이다. 2015년 선보인 마르헨제이는 그 열망의 결과물이다.

조대영 대표. / 마르헨제이 제공
조대영 대표. / 마르헨제이 제공
수많은 아이템 중 여성가방을 택한 대목에서부터 '채식', '동물' 등의 키워드가 쏟아졌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동물의 희생 없이도 고급형 가방 브랜드 탄생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싶었다. 신체 영양 측면에서 육식, 곧 동물 희생은 불가피하지만 패션은 다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 마디로 '멋 내기 위한 동물 희생'에 반기를 든 셈이다. 여성가방은 그의 눈에 동물이 가장 많이 희생되는 패션 분야였다.

"쑥스럽지만 담론 한 번 더합니다. 문명은 야만성을 줄이고 자연과의 합리적 공생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창의적 기술력이 받쳐준다면 천연가죽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운 가방이 만들어집니다."

당연히 마르헨제이에 천연가죽 가방은 없다. 흔히 '페이크 레더(fake leather)'라고 지칭되는 합성피혁으로 고급형 베스트셀러들을 탄생시켰다. 주로 저가 제품에 사용되는 합성피혁으로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겠다니 지인들은 앞다퉈 뜯어말렸었다. 다만, 몇몇 해외 바이어들은 "트렌드를 이끌 만한 가치"라며 지지하는 뜻을 보여줬다.

여성가방 브랜드 ‘마르헨제이’ 제품 사진. / 마르헨제이 제공
여성가방 브랜드 ‘마르헨제이’ 제품 사진. / 마르헨제이 제공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매출의 수직 상승세가 지속되더니 대형 백화점과 면세점에 잇달아 입점했다. 전체 매출에서 자사 쇼핑몰 비중이 80%에 달했다.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신제품을 확인하려는 고객과 충성도가 그만큼 큰 것을 방증한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은 1~3분기의 총합과 비슷한 규모로 나왔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해외 시장에도 눈을 돌렸다. 해외 고객들의 구매 문의가 이어지면서 동남아 진출에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카페24'로 영문 쇼핑몰을 준비하는 한편, 바이어들과의 교류 폭을 넓혔다.

천연가죽 위주의 고급 가방 시장에서 합성피혁 제품으로 이룬 성공은 분명 화제성 콘텐츠다. 디자인과 기술력의 실체는 벤치마킹 대상이다. 제품 하나하나가 유수의 명품 못지않은 품질을 갖췄다고 조 대표는 강조했다. 표현하는 핵심 가치는 색감(Colorful)과 실용성(Useful), 심미성(Beautiful) 등으로 요약된다.

"외부에서는 무엇보다 가죽 원단의 경쟁력을 궁금해하시죠. 30년 이상 경력의 장인들도 외관만 보면 천연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원단을 사용합니다. 그만큼 업계의 기술이 발전해왔고, 저희는 적극 활용에 나선 셈이죠. 조만간 명품 브랜드에만 납품해 온 이태리 원단 업체와도 손 잡을 계획입니다."

디자인은 과도한 장식을 배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꼭 필요한 요소만 모으되, 기억에 남을 미적 요소에 눈길이 가도록 강조하는 방식이다. 실용성이 떨어지고 장식에만 불과한 포켓은 과감히 없앴다. 시원시원한 수납공간과 심미성 갖춘 색상, 정교한 비례 등이 고객 호평을 이끌어냈다.

최근 출시한 '제니백'이란 제품은 하루 판매량이 100개를 넘어섰다. 주문 후 제작 방식이기에 결제부터 배송까지 4~5주가 걸린다는 점은 불편이 아니라 '정성'의 일부로 전해졌다. 20대에겐 사랑스러운 분위기, 30대에겐 투박하지 않은 수납공간이 인기요소다.

"20~30대 고객들이 구매하고 중년의 가족에게 추천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특히 40~50대는 기존 명품만 찾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더욱 놀랐습니다.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패션의 즐거움이 명확히 보입니다. 이를 국경 넘어 글로벌 곳곳에 전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