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면 좋다? 중고시장 '채굴용 그래픽카드' 주의보

입력 2018.04.10 06:25 | 수정 2018.04.10 06:30

최근 가상화폐(암호화폐) 열풍이 다소 주춤한 가운데, 채굴용으로 사용되던 그래픽카드 물량이 중고 시장에 상당수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암호화폐 거래 가격 하락으로 채굴장의 채산성이 떨어졌거나, 일정 기간 이상 사용해 교체된 채굴용 그래픽카드 물량이 중고 시장에 쏟아지면서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장만하려는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거래가격 하락과 채산성 악화로 채굴용으로 사용되던 그래픽카드 제품들이 중고 시장에 풀리고 있다. 암호화폐 채굴PC의 모습. / 최용석
2017년 PUBG스튜디오의 온라인 서바이벌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그래픽카드를 탑재한 고성능 게이밍 PC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나 2017년 말 암호화폐 및 채굴 열풍이 다시 불자 대량의 그래픽카드가 채굴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일반 유통시장에서 그래픽카드의 씨가 말랐다.

그 결과 2018년 1분기 그래픽카드 가격은 모델에 따라 최대 200% 이상 폭등하면서 업그레이드용으로 그래픽카드를 사려는 게이머들과 신규 소비자들이 상당한 피해를 봤다.

3월로 접어들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암호화폐 규제가 강화되는 분위기를 보이자 암호화폐 거래 가격도 다시 하락하는 추세다. 뒤늦게 채굴 시장에 뛰어든 사업자나, 규모가 작은 중소규모 채굴 사업자들이 채산성의 한계에 도달하기 시작했고, 투자 비용 회수를 위해 채굴용으로 쓰던 그래픽카드를 처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채굴용으로 사용하던 그래픽카드가 중고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이유는 겉모양만으로 채굴에 사용했는지, 개인용도로 사용했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고 시장에 풀린 채굴용 그래픽카드는 대부분 현재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풀려있다. 신품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그래픽카드를 구할 수 없었던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가격대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채굴용으로 사용된 그래픽카드를 권장하지 않는 분위기다. 본래 용도가 아닌 '암호화폐 채굴'이라는 특수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그래픽카드는 고장이나 오작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정상 제품보다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채굴용 그래픽카드는 효율 극대화를 위해 24시간 내내 거의 100% 성능으로 가동한다. 일부는 강제로 오버클럭까지 적용해 성능을 더욱 높이기도 한다.

최대 성능으로 쉬지 않고 작동하기 때문에 열도 많이 발생한다. 냉각용 방열판과 팬이 달려있어도 GPU와 기판, 메모리 등의 부품이 장시간 고열에 노출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열화(劣化, 물리적인 외부 요인으로 인해 물질의 특성이 나빠지는 현상)가 일어나기 쉽다.

내부가 열화된 그래픽카드는 그만큼 수명과 안정성이 떨어진다. 대표적인 증상이 장시간 과열로 인해 GPU나 메모리 등을 고정한 납땜이 떨어져 오류를 일으키는 냉납 현상이 있다. 화면에 이상한 줄무늬나 점, 잔상 등이 나타나거나 아예 게임을 실행하면 블루스크린이 뜨면서 시스템이 멈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이 추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AS 문제도 걸림돌이다. 대다수 그래픽카드 제품은 수입유통사에서 2년~3년의 AS 기간을 보증한다. 그러나 2017년 상반기 1차 채굴 열풍으로 홍역을 치른 일부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은 공급선을 분리해 채굴용 제품을 별도로 관리하는 곳이 적지 않다.

처음부터 채굴용으로 공급된 제품들은 사용 환경을 고려해 AS 기간이 최소 3개월에서 최장 1년밖에 안된다. 중고로 구매한 그래픽카드에 문제가 생겨도 AS 기간이 이미 만료됐거나, 채굴용으로 공급된 제품으로 판명되면 불이익을 얻을 수 있다.

중고 장터에 대량으로 올라온 그래픽카드 매물들. / 중고나라 카페 갈무리
물론, 채굴용으로 사용하던 그래픽카드라 해서 모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채굴용으로 사용됐던 중고 그래픽카드를 구매해 문제없이 잘 썼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by-case)인 셈이다.

또한, 처음부터 채굴용으로 공급된 제품이 아니라 일반 소비자용이라면 AS 기간에 대한 불이익은 없다. 제조사에서도 처음부터 채굴용으로 공급한 제품이 아니면 대상 제품이 채굴에 사용됐는지를 알 방도가 없다.

암호화폐 채굴에 사용됐던 그래픽카드가 시중에 중고로 다시 풀리는 것을 막을 방법은 딱히 없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일부러 중고로 나온 제품만 노리는 소비자들도 분명히 있다. 위에 언급한 문제점을 고려하더라도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PC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용자라면 채굴용으로 사용됐던 중고 그래픽카드 구매는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좋다. 언제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금전적 및 시간적인 손해는 모두 구매자 자신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