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특허전문 저널 '영국 IAM'은 3월 삼성전자의 미국 특허왕 등극 소식을 전했다. 유효 미국특허 보유수가 부동의 1위 IBM을 제쳤다는 소식이다.

실제 IBM은 미국특허 출원 및 등록수에서 지난 20년 간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IBM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소식이 내외신을 통해 가끔 들려도, 결국 매년 초 집계되는 전년도분 최종 순위에서는 IBM 특허 보유수가 삼성전자를 늘 조금씩 앞섰다.

하지만 IAM이 미국 특허데이터 분석 전문업체 케이티마인(ktMINE)의 보고서를 들여다 본 결과는 달랐다. IAM과 케이티마인은 출원 또는 등록 특허수를 단순 집계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유효 특허'에 집중했다. '출원→등록'이라는 과정을 거쳐 특허를 최초 획득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후 특허 유지비(관납 연차료)를 지불하며 만료기간(20년) 동안 특허권을 실제 유지하는지를 따져봤다는 얘기다.

그 결과 삼성의 누적 유효특허수는 총 7만5596건이 나왔다. 2위인 IBM 대비 3만건 가까이 많은 독보적 수량이다. IBM 자극할 필요없다며 매년 미국특허의 출원·등록순위 '2위 전략'을 고수해 온 삼성전자다. 하지만 유효특허의 수십년 누적집계 순위까지는 '관리'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유효특허 보유순위(2018년 1월 1일 기준). / IAM·케이티마인 제공
미국 유효특허 보유순위(2018년 1월 1일 기준). / IAM·케이티마인 제공
특허왕 등극 소식을 보도한 내외신 언론의 바람(?)과 달리 삼성 내부에선 그다지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괜한 게 알려졌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왜일까.

특허를 대하는 삼성과 IBM의 기본 마음가짐을 비교하면 그 이유를 어림할 수 있다. 먼저 IBM은 특허에 매우 유연하다. 돈 된다 싶으면 팔고, 아니다 싶으면 권리를 소멸시킨다. 제조 기반 없는 기업이니 굳이 매년 적잖은 유지비를 내면서까지 모든 취득 특허를 가져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삼성은 특허에 대해 과도하게 경직된 조직문화가 있다. 남의 특허 잘 사지도, 자기 특허를 잘 팔지도 않는다. 어줍잖은 특허 역시 제대로 소멸시키지 못하는 삼성이다.

현업 부서에서 타사 특허가 필요해 양수라도 하려 들면 '왜 돈 들여 사냐, 우리가 개발해 따면 되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유 특허를 팔려해도 "팔걸 왜 기를 쓰고 등록했냐, 누구 좋으라고 그걸 파냐"는 비난이 두렵다. 누가 봐도 필요 없는 이른바 '쓰레기 특허(garbage patent)'인데 꼬박 연차료를 내고 있는 건도 적지 않다. 소멸 시 그 책임소재를 따져야 하니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삼성이 미국 유효특허 보유수 1위 자리를 꿰찬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삼성전자 ‘IP센터’가 입주한 우면동 소재 서울R&D캠퍼스 전경.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IP센터’가 입주한 우면동 소재 서울R&D캠퍼스 전경. / 삼성전자 제공
소중한특허법률사무소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6000만달러(642억원)쯤의 외화를 매년 미국 특허청에 납부하고 있다. 특허 연차료는 보유 연수가 쌓일수록 더 많이 내는 구조다. 따라서 납부주기별로 특허유지 여부를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삼성전자의 현행 IP 거버넌스상 이는 요원하다. 기술의 삼성이 '특허의 삼성'으로 거듭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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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동 위원은 전자신문 기자와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국내 최대 특허정보서비스 업체인 ㈜윕스에서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특허청 특허행정 모니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와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ICT시사상식 2015' 등이 있습니다. '특허시장의 마법사들'(가제) 출간도 준비 중입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활동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올해 3월에는 세계적인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이 선정한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 2017)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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