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새 남북 협력 모델로 4차 산업 혁명을 제안한다면

입력 2018.04.27 11:08 | 수정 2018.04.06 06:30

최근 서울 북촌에 위치한 다락방구구에 남북 협력이나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였다. 교수, 연구원, 기자, 의원, 변호사, 학생, 감독과 PD 등 소속도 다양했다. 이날 주로 나눈 이야기는 남북 해빙 무드를 반영한 신(新) 남북협력 모델이었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강국임을 자부하며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앞둔 남한이 국민 소득 146만원에 불과한 북한과의 협력, 그것도 테크놀러지 분야에서도 '윈-윈(Win-Win)'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을까. 희토류만 20억톤이 매장돼 있다는 북한의 지하 자원 개발이 아니고 말이다.

기술을 취재하는 기자는 선발자의 함정과 후발자의 이점을 결합하면 드라마틱한 '뒤집기 역사'를 써온 기술 분야에서도 남북이 절묘한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오프라인에서 인터넷과 모바일로 진화할 때마다 선발자들은 거대한 레거시(유산)을 보유한 탓에 제때 혁신하지 못하는 덫에 걸리고 오히려 후발주자가 새 패러다임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지킬 게 없는 게 때로는 재빠르게 혁신하는 기반이 된다는 뜻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운영체제(OS)와 반도체 칩을 납품하던 신출내기였지만, 퍼스널 컴퓨터(PC) 시대가 열리자 100년 역사의 '빅블루(IBM)'를 위기에 몰아 넣었다. 세계 최고의 브라운관 기술을 자랑한 일본 기업은 차세대 디스플레이(LCD, OLED)에 승부수를 던진 삼성과 LG의 일격에 쓰러졌다. 부지불식간에 잘 나가는 기업들을 무너뜨리는 불연속적인 테크놀러지 역사를 두고 흔히들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로 정리한다.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시험 운행 중이던 우버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를 치는 사망 사건을 보면서 평양에서 자율주행차 시대를 더 빠르게 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여파로 엔비디아, 누토노미 등이 잇따라 자율주행차 시험을 중단했고 회의론자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회의론자들은 "새가 날아들어 전방 카메라를 고장낼 수도, 아이들 장난으로 센서가 오작동할 수 있다. 그때그때 생겼다가 없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규약까지 대응하는 자율주행 알고리듬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BMW, 포드, 볼보 등이 앞다퉈 2021년까지 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세부 계획을 뜯어보면 주행차가 도로를 완벽하게 인식하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정밀한 지도를 만들어 차량의 자율주행 능력을 높이겠다는 수준이다.

구식 도로에 신식 자율주행차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율주행차 시대에 맞는 교통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답일 수 있다. 가령, 평양에 가솔린(휘발유)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스템이 아니라 자율주행차에 최적화한 교통 시스템을 만들면, 후발주자의 '건너뛰고 도약(leapfrogging)'이 가능해진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선 인터넷 인프라를 깔지 않고 곧바로 무선 인터넷 시대로 진입해 모바일 뱅크 서비스에 나섰던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가 기존 도로 체계를 자율주행 전용도로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고속도로를 닦는 데 수 백조원을 이미 지출한 데다 가구마다 가솔린 차량을 1대씩 보유한 국민에게도 불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평양에 차세대 교통 시스템을 만들기로하고 남한과 긴밀하게 협력하면, 남북한이 자율주행차 교통 시스템의 '퍼스트 무버'로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토연구원 2017년 11월 연구 보고서(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한 첨단 도로 인프라 정책 방안)도 앞으로 자율주행차 전용 도로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율주행 차량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면, 차량 흐름이 끊어지고 운전자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전용도로는 실시간 교통 정보를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수준을 넘어서 차량과 차량, 차량과 도로 및 컨트롤타워 3자 간 실시간 정보 소통이 가능한 도로다. 초고속주행에 적합한 기하 구조의 신규 자율주행 전용도로를 구축하면 '군집 주행'이 가능해져 도로를 2.5배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주장이다.

지난달 28일에는 고급차 시장 맞수인 독일 다임러와 BMW가 차량공유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손을 잡고 차량 공유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기로 했다. 자율주행이나 공유 차량으로만 움직이는 이른바 '서비스로서의 이동성(MaaS Mobility as a Service)'이라는 교통의 미래도 남북한이 먼저 가볼 수도 있다.

비단 자동차뿐만 아닐 것이다. 이미 투자된 자산과 각종 이해 관계에 얽혀 한발짝도 움직이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쉽게 하기 어려운 차세대 통신망(저궤도 위성 인터넷),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교통망(하이퍼 루프), 의료망(유전자 분석), 금융망(블록체인 기반 거래) 등을 평양, 신의주, 남포 등에서 시도해 볼 수 있다. 남한은 이를 지원하고 차세대 산업의 시험대(테스트베드)를 배후로 둔 이점을 살리는 것이다.

현재 기술을 건너뛰고 차세대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정보기술의 반복된 역사의 요체를 간파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세계적인 거물이 된 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넷 시대를 내다보고 야후, 알리바바에 투자했고 사물인터넷 시대를 보고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35조원에 샀다. 또 사무실 공유 시대, 차량 공유 시대를 내다보고 '위워크'와 '우버'의 주주에 올랐고 위성으로 인터넷 시대를 열겠다는 저궤도 소형 위성업체 '원웹'에도 투자했다.

남북한도 구식 사업이 아닌,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미래를 내다보고 '윈-윈' 프로젝트를 구사해 볼 것을 제안한다. 물론 정치적, 군사적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한의 이런 담대한 협력 모델도 가능할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