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러시아의 한 연구소에서 슈퍼컴을 이용해 암호화폐를 채굴하다 연방보안국(FSB)에 발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기관은 러시아 원자력공사 로사톰(Rosatom) 산하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기관으로 알려졌다. 기관의 성격상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기관은 세계 400위 수준, 이론성능 1페타플롭스(PetaFLOPS)의 슈퍼컴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연구용 슈퍼컴으로 암호화폐를 채굴하려는 시도는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 과학재단(NSF) 슈퍼컴을 이용해 1만달러(1068만원)쯤의 비트코인을 채굴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으며 하버드 대학 학내 컴퓨터로 도지코인(Dogecoin)을 채굴한 사례도 있다.
막강한 계산용량을 상징하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것은 한 번쯤 해볼만 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방법은 실제로 유용할까?
우선 기관의 슈퍼컴 운영 정책과 부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과학재단 슈퍼컴은 연구자들이 소속에 관계없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기반 시설이다. 이를 이용해 암호화폐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그 목적에 부합하지만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것은 이에 어긋난다.
이를 위반한 경우 과학재단 슈퍼컴을 활용할 수 없을뿐 아니라 과학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연구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운영정책의 이슈가 없는 경우 기술적인 문제는 없을까? 예를 들어 민간기업이 슈퍼컴을 구축해 암호화폐를 채굴하거나, 슈퍼컴을 운영하는 기관이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그 일부를 암호화폐 채굴에 사용하는 경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이클 테일러(Michael Taylor)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는 미국 에너지성이 보유한 세계 6위 슈퍼컴퓨터 세콰이어(Sequoir)를 이용해도 하루에 불과 40달러(4만3000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2013년 기준). 이에 비해 이 시스템 가격은 2억5000만달러(2674억원)다. 하루 전기료만 2만달러(2139만원)가 넘는다.
블록체인 체계에선 새로운 거래를 블록으로 나누고 그 내용을 해쉬함수(Hash)로 암호화한다. 비트코인(암호화폐·가상화폐)은 그 생성된 암호를 다른 사람이 확인하고 거래 무결성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작업을 한 이들에게 노력의 댓가로 제공된다.
따라서 동일한 계산이 반복되는 비트코인 채굴에는 범용 CPU가 장착된 슈퍼컴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해쉬함수 계산을 빠르게 수행할수 있는 전용칩(ASIC: 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현재 비트코인의 채굴에는 어마어마한 계산용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테일러 교수 추산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에 소요되는 계산용량은 2013년 세콰이어 슈퍼컴의 4500배, 2014년에는 5만8000배로 빠르게 증가한다. 또 2016년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암호화폐 채굴에 활용되는 컴퓨터 용량은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500대를 모두 합친 것에 비해 4만3000배 규모로 추산된다.
2016년 비트코인을 이용한 거래는 연 9000만건으로 전체 상거래 3890억건의 극히 일부다. 블록체인이 페이팔(Paypal)처럼 보다 광범위하게 활용되기 위해선 계산자원 및 전력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지수 소장은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했고 독일 국립슈퍼컴센터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센터 센터장, 사단법인 한국계산과학공학회 부회장, 저널오브컴퓨테이셔널싸이언스(Journal of Computational Science) 편집위원, 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는 사우디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교(KAUST) 슈퍼컴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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