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은 전설(傳說) 또는 신화(神話)와 같다고 한다. 만 개의 신약 후보물질 가운데 단 하나만 신약으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의 신약이 만들어지는데는 20년이 걸리고 2조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도 이유다. 그야말로 신약 하나는 대박이다. 그러나 사실은 신화도 전설도 아니다. 위험부담이 높은 모험(High risk venture)일 뿐이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FDA(식품의약국)에 제출된 9985개 임상시험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1상 임상시험을 성공리에 마치고 2상 임상시험으로 진행될 확률은 63.2%다. 2상 임상시험을 마치고 마지막 단계인 3상으로 진행될 확률은 30.7%, 3상 임상시험을 마치고 임상시험 결과에 근거해 미국 FDA가 신약으로 승인할 확률은 49.6%다.

세 확률을 모두 곱하면 9.6%(0.632×0.307×.0496=0.096)다. 임상시험이 시작된 10개 신약 후보물질 가운데 하나만 신약으로 승인된다는 의미다. 평균 1000개의 물질 가운데 단 하나만 신약 후보물질로 선택된 후 임상 시험을 거쳐 의약품으로 태어난다. 확률은 10% 미만이다.

신약은 네 단계를 거쳐 개발된다. 우선 실험실 연구가 끝난 신약후보 물질을 신약으로 개발할지 여부를 결정하고 개발 전략을 수립한다. 이 결정 단계가 의외로 어렵다.

10년 전 미국에서 보고된 신약개발 통계에 따르면 신약 개발을 시작해 허가 심사까지 최소 12년이 걸린다. 개발비용은 최소 1300억원이다. 개발 여부 결정은 과학적 타당성보다는 시장성에 의해 결정된다. 그만큼 실패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이를 무릅쓰고 개발에 착수한다. 개발 결정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

둘째 단계는 전임상(前臨床) 단계다. 최소 3.5년이 소요된다. 시험 약물을 제조하고 주로 동물실험을 통해 안전성과 약물 특성을 연구한다. 사람에게 안전하게 투여할 수 있는지 여부와 안전 복용량(dose) 등을 결정한다.

이 후 임상시험 계획을 세우고 임상시험 승인을 정부에서 받는다. 미국의 경우 이 과정에 3.5년 이상 걸린다. 미국 투프트(Tuft) 대학교가 2012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 때 발생하는 비용은 평균 72억원이다. 최소 7억7000만원에서 최대 211억원으로 그 편차가 크다.

셋째 단계는 임상시험 단계로 최소 6년이 필요하다. 미국의 10년 전 자료에 의하면 1상 임상시험에 1년이 걸리고 비용은 165억, 2상 임상시험에 2년 253억, 3상 임상시험에 3년 957억원 등 최소 1375억원의 비용이 든다. 이는 모두 평균이고 약물에 따라 소요시간과 비용 차이가 크다. 지금은 그 비용이 더 커져 2000억~ 3000억원으로 알려졌다.

넷째 단계가 신약허가 단계다. 신약허가 심사에는 평균 2.5년이 걸린다.두번째 단계부터 넷째 단계까지 합치면 최소 12년이다. 실패 시 비용은 몇 배 더 크고 그 비용이 포함돼 신약 하나가 태어나는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단계를 넘어가면서 또 각 단계 내에서 지연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화이자(Pfizer)등 12개의 대형 글로벌 제약사는 1997년부터 2011년까지 15년간 139개의 신약을 개발했다. 비용은 883조원에 달한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6.4조원이 들었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 Zeneca)의 경우 5개의 신약 개발에 65조원을 썼다. 신약 한 개당 13조원이 든 셈이다. 세계적으로 2015년 신약 R&D에 165조원을 썼다.

한국에서도 최근 신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제약사와 바이오텍이 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세계시장 54%를 장악한 미국(40.3%)과 유럽(13.5%)을 목표로 미국, 유럽 등지에서 신약 개발을 진행한다. 이는 1상 임상시험이 끝나면 미국·유럽 제약사에 후보물질을 라이선스 아웃(license-out)을 하기 위해서다.

다만 미국과 유럽 신약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위험 고비용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떄문에 지나친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한국이 선진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도약대가 될 수 있다면 기회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신약개발에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우선 한국은 임상시험 선진국으로 인식된다. 세계 수준의 의료기관과 의학 연구자가 진을 치고 있고 임상시험에 요구되는 각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한국에서 생성된 임상시험 데이터가 선진국에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그 증거다.

둘째 한국에서 신약개발 기간이 미국 유럽에 비하여 반이면 가능하다. 신약개발비 역시 10분의 1 수준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한국에서 속전속결로 결과를 보고 선진시장 도전 여부를 결정짓는 전략이다. 위험도가 높은 신약개발에서 속도와 저렴한 비용은 절대적인 강점이다.

선진국에서 한국 임상시험 데이터에 대해 민족적 차이에 따른 보완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한국 데이터가 전체적으로는 받아들여질 것이다. 신속하고 저렴한 신약개발 전략으로 세계시장을 도전하는 패러다임으로 한국은 신약 강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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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통계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통계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미국 국립암연구소(NIH), 국립신경질환연구소, 국립모자건강연구소 등에서 데이터 통계분석과 임상연구를 담당했다. 1999년 한국으로 귀국해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를 겸임하며 2000년도에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LSK Global PS)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임상CRO협회장을 역임해 국내 CRO산업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권위 인명 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도 등재됐다. 현재 서경대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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