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콘텐츠 혁명
고찬수 지음|한빛미디어|316쪽|1만8000원

인공지능(AI)은 제법 오래전부터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스탠리 큐브릭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현대 SF 영화의 시초이자, 인간과 AI의 대결 구도라는 원형을 창조한 명작으로 지금까지 회고된다. AI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게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로부터 12년 만이자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한 창작자에게는 AI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미지와 공포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스탠리 큐브릭이 아직 살아있다면, 영화의 소재를 넘어 영화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 AI를 목도한 소감이 어떤지 묻고 싶어진다. 2016년 영화감독 오스카 샤프와 AI 연구자 로스 굿윈이 만든 AI 시나리오 작가 ‘벤자민'이 쓴 시나리오는 ‘선스프링(Sunspring)’, ‘잇츠 노 게임(It’s no game)’ 등 실제 단편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들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최근 AI 기술의 눈부시게 빠른 발전 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짐짓 섬뜩해지는 게 사실이다. 창작자여. 그대에게 이곳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를 세탁물 양에 따라 물 조절이나 해주는 도구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AI가 모방을 넘어 창의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때를 맞았다.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계산을 넘어 직관의 영역에 가까운 바둑이라는 분야를 AI에 내줬을 때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뉴스에서부터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문학, 미술에 이르기까지 창의성을 전제로 하는 모든 분야에 AI가 침투해 있다.

2016년 7월 일본에서는 인간과 AI의 광고 제작 대결이 화제를 모았다. 일본 껌 브랜드 ‘클로렛츠'가 신제품 광고를 유명 TV 작가와 AI에 각각 맡긴 것이다. 단, AI는 광고대회 수상작을 학습해 제작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실제 촬영과 편집은 영상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결과물에 대한 블라인드 평가 결과, 근소한 차로 인간의 승리로 끝났지만, AI의 광고 콘셉트가 더 좋았다는 응답도 46%에 달했다.

영상 편집 영역은 그동안 기계로 대체하기에는 너무나 창의적인 일로 여겨졌다. 몇 시간에 달하는 영상에서 꼭 필요한 장면을 선정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과 인력,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IBM의 AI ‘왓슨'이 2017 US 오픈 테니스 대회의 하이라이트를 제작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왓슨은 기존에 제작된 스포츠 경기 하이라이트를 학습해 게임 스코어와 중요도, 선수 표정과 세리머니, 관중 함성소리 등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장면을 포착해낸다. 이를 바탕으로 최대 18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US 오픈의 모든 경기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낸다.

창작의 고통 이면에 존재하는 반복과 숙달이라는 지난함을 AI는 모른다. 하지만, 콘텐츠 소비자에게는 결과물만이 판단 기준이 되는 냉엄한 현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AI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 역시 더는 막연한 공포감에 그치지 않는다. 한동안 AI가 인간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지, 또는 보조재에 그칠 것인지를 두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이 애써 외면하려는 현실은 정작 따로 있다. 바로 가까운 미래에 AI가 필수재가 될 것이란 사실 말이다.

AI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단순 노동직종이냐, 전문직종이냐를 따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계를 때려 부수려 했던 2세기 전의 실수를 답습할 필요는 없다. 혁신은 기존의 안정을 파괴하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현직 방송국 예능 PD인 저자는 AI 시대를 맞아 콘텐츠 창작자로 살아남기란 얼마나 고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대신 두려움을 버리고 AI와 적극적으로 협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AI를 만들었지만, AI는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낸다. AI의 창의성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인간이 가진 감정이나 습성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창의성인 셈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하모니는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AI가 누군가에게는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뮤즈가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창의성이 더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류는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