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미디어 시장이 빅뱅 태풍에 빠졌다. DVD 대여로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발 시장 재편 속도가 무서울 만큼 빠르다. 기존 콘텐츠·통신 업계 강자가 후발주자인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묘한 형국이 만들어졌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1억2500만명을 거느린 거대 인터넷 영화 플랫폼으로 성장하며 한때 콘텐츠 공룡인 월트디즈니의 시가총액을 넘어선지 오래다. 위기에 빠진 디즈니는 ‘미디어 제국’으로 평가받던 21세기 폭스의 TV·영화 부문을 78조원이 넘는 거액에 인수하며 넷플릭스에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다. 미국 2위 통신사인 AT&A는 워너브라더스·CNN 등을 보유한 타임워너를 인수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IT조선은 글로벌 콘텐츠·미디어 분야 변화의 핵심을 집어봄으로써 향후 시장을 조망해봤다. [편집자주]

13일(이하 현지시각) 월트디즈니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던 21세기 폭스 TV·영화 부문 인수전에 최근 미국 최대 케이블TV 사업자 컴캐스트가 뛰어들었다. 컴캐스트는 디즈니보다 19%쯤 더 많은 650억달러(70조3950억원)를 제안해 21세기 폭스 인수전 경쟁에 불을 지폈다.

디즈니의 반격은 곧바로 이어졌다. 21세기 폭스는 20일 월트디즈니컴퍼니 측이 1차 구매 제안 때 제시했던 주당 28달러(3만원)보다 10달러가 더 많은 주당 38달러(4만1700원)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디즈니가 총 713억달러(78조3587억원)를 21세기 폭스에 제시한 셈이다.

디즈니의 제안에 따라 21세기 폭스는 7월 10일로 예정됐던 이사회를 연기한다고 20일 발표했다. 이사회 개최일은 현재 미정이다.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컴퍼니 회장. / 월트디즈니 제공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컴퍼니 회장. / 월트디즈니 제공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은 21세기 폭스 TV·영화 부문 인수전에서 디즈니가 사실상 승리했다고 20일 보도했다. 또, 루퍼트 머독 회장과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19일 만나 인수·합병(M&A)에 사실상 합의했다고 전했다.

루퍼트 머독 21세기 폭스 회장은 “21세기 폭스가 일군 사업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월트디즈니와의 결합은 주주들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고 21세기 폭스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 디즈니가 21세기 폭스에게 얻는 것은 무엇인가?

디즈니는 21세기 폭스 소유의 TV·영화 부문 사업 인수로 영화사 ‘20세기 폭스’와 인기작 심슨과 엠파이어를 제작한 ‘20세기 폭스 텔레비전’을 손에 넣게 된다.

21세기 폭스 TV·영화 부문이 디즈니에게 넘어갔을 때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소유하게 될 방송·콘텐츠 회사. / 더버지 갈무리
21세기 폭스 TV·영화 부문이 디즈니에게 넘어갔을 때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소유하게 될 방송·콘텐츠 회사. / 더버지 갈무리
20세기 폭스 텔레비전은 미국 9400만 세대가 시청하는 케이블 및 위성방송 사업자인 FX와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사인 FX프로덕션을 소유하고 있다.

21세기 폭스가 가지고 있던 ‘폭스 네트워크 그룹 인터내셔널’도 디즈니 손에 넘어갈 예정이다. 폭스 네트워크는 유럽·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전역에서 방송 및 콘텐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도 최대 미디어 그룹인 ‘스타’와 유럽지역 2100만 세대 가입자를 지닌 방송 사업자 ‘스카이’도 디즈니가 소유하게 될 전망이다. 스카이의 경우 21세기 폭스 소유 지분은 39.14%다. 21세기 폭스는 디즈니의 인수가 마무리되기 전 스카이의 모든 지분을 인수한다는 계획이다.

자연 다큐멘터리로 대중에게 친숙한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향후 디즈니 산하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활동하게 될 전망이다.

넷플릭스로 인해 뜨거워진 인터넷 영화 서비스 업계의 경쟁도 디즈니의 21세기 TV·영화 부문 인수로 한층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 폭스는 글로벌 인터넷 영화 서비스 3위 업체인 ‘훌루(Hulu)’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디즈니와 컴캐스트가 각각 30%씩 가지고 있다. 디즈니가 21세기 폭스의 TV·영화 부문을 인수하면 디즈니가 훌루의 실질적인 주인이 된다.

디즈니는 2019년부터 자체 인터넷 영화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며, 현재 서비스 준비를 위해 독점 콘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영화 및 콘텐츠 업계는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TV·영화 부문 인수로 인해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 등 모든 장르의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는 시각이다. 글로벌 인터넷 영화 서비스 넷플릭스와 향후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영화 업계에 부는 지각 변동 바람

디즈니의 21세기 폭스 TV·영화 부문 인수는 글로벌 영화 업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 중요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영화 정보 업체 IMDB에 따르면 디즈니는 2017년 미국 영화 업계에서 21.8%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다. 2위는 워너브러더스가 속한 타임워너 그룹(18.4%)이며 3위는 유니버설(15%), 4위는 폭스(12.9%), 5위는 소니(9.8%)다.

영화사 20세기 폭스 인수는 영화 업계에서 디즈니의 성벽을 더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2017년 시장 점유율로 이미 1위를 차지한 디즈니가 폭스 인수로 34.7%쯤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20세기 폭스가 판권을 쥐고 있는 데드풀. /  20세기 폭스 제공
20세기 폭스가 판권을 쥐고 있는 데드풀. / 20세기 폭스 제공
영화 업계에서 디즈니와 폭스의 합병 시너지는 새로운 킬러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폭스는 엑스맨·울버린·판타스틱포·데드풀 등 마블 슈퍼 히어로 소재 영화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마블 영화로 높은 수익을 얻고 있는 월트디즈니와 디즈니 품 안에 안긴 마블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20세기 폭스 인수는 마블 영화 세계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완성과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

디즈니의 마블 영화에 더 많은 슈퍼히어로의 등장과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