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미디어 시장이 빅뱅 태풍에 빠졌다. DVD 대여로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발 시장 재편 속도가 무서울 만큼 빠르다. 기존 콘텐츠·통신 업계 강자가 후발주자인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묘한 형국이 만들어졌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1억2500만명을 거느린 거대 인터넷 영화 플랫폼으로 성장하며 한때 콘텐츠 공룡인 월트디즈니의 시가총액을 넘어선지 오래다. 위기에 빠진 디즈니는 ‘미디어 제국’으로 평가받던 21세기 폭스의 TV·영화 부문을 78조원이 넘는 거액에 인수하며 넷플릭스에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다. 미국 2위 통신사인 AT&A는 워너브라더스·CNN 등을 보유한 타임워너를 인수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IT조선은 글로벌 콘텐츠·미디어 분야 변화의 핵심을 집어봄으로써 향후 시장을 조망해봤다. [편집자주]

월트디즈니(이하 디즈니)가 넷플릭스와의 정면 대결을 예고했다.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2017년 8월 진행한 실적발표에서 2018년 말부터 넷플릭스 대상 콘텐츠 공급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결별하는 대신 2019년 자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마련해 디즈니·픽사·마블·스타워즈 시리즈 등을 스트리밍하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스포츠 케이블 방송 ESPN 전용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미 연초 선보였다.

시장에선 애플이 이르면 2019년에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이리라 전망하는 가운데 애플이 넷플릭스를 인수할 것이라는 의견도 꾸준히 대두된다. 여기다 애플 이외에 페이스북·글 등 거대 IT기업이 2017년에 온라인 방송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잇달아 발표한 상황이라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애플이 자체 제작 콘텐츠에 투자할 계획을 발표한 것은 동영상 콘텐츠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라고 평가했다.

월트 디즈니의 상징 ‘미키 마우스'를 만든 미국 영화 감독 월트 디즈니 / 트위터 갈무리
월트 디즈니의 상징 ‘미키 마우스'를 만든 미국 영화 감독 월트 디즈니 / 트위터 갈무리
망 중립성은 또 다른 변수다. 기존 미디어는 망 중립성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기존 TV 사업자가 넷플릭스 등을 누르고 재도약할 가능성이 열렸다. 이 때문에 2019년 일어날 미디어 대변화를 앞두고 기존 미디어는 넷플릭스 등 OTT 사업자에 반격할 기회를 모색하고, OTT 사업자는 패권을 유지하려는 치열한 패싸움을 올 한 해 동안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 디즈니, 2018년 말부터 넷플릭스 콘텐츠 공급 중단

콘텐츠 업체 디즈니는 넷플릭스로부터 받던 콘텐츠 사용료를 포기하고 내년에 자체 플랫폼을 출시한다. 앞서 디즈니는 2016년 10월 넷플릭스 인수 제안서를 제출했으나, 2017년 4월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그 사이 디즈니는 또 다른 OTT 사업자 밤테크(BAM Tech) 지분을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33%, 42%씩 인수하며 자체 플랫폼 출시 기반을 닦았다. 디즈니가 플랫폼 운영 능력과 강력한 경쟁자 넷플릭스를 견제하고 나선 것은 2019년 출시할 전용 스트리밍 플랫폼이 시장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여기다 디즈니는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의 21세기 폭스 인수에 성공하며 20세기 폭스 영화 스튜디오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20여 개 채널을 확보했다. 디즈니는 영화 아바타·엑스맨·데드풀·판타스틱4는 물론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등을 품에 안아 콘텐츠 경쟁력을 키웠다. 디즈니가 자체 OTT 서비스에 넷플릭스가 갖지 못한 콘텐츠를 선보일 경우 스트리밍 서비스 최강자 넷플릭스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미국 시장 2위의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 보유 지분도 60%로 올라갔다. 훌루는 디즈니와 21세기 폭스, 컴캐스트가 각각 30%의 지분을 투자해 만든 스트리밍 회사다.

타임워너 인수를 마무리 지은 미국 2위 통신 업체 AT&T는 이미 전략 마련에 돌입했다. 미국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AT&T와 미국 최대 케이블TV 업체 컴캐스트가 OTT 서비스 공동 출시를 놓고 예비 협상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컴캐스트는 NBC유니버설을 소유했으며, AT&T는 14일 타임워너를 손에 넣었다. 컴캐스트는 소니도 잠재적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애플, 2019년에 스트리밍 서비스 출시? 넷플릭스 인수설도

애플·페이스북을 비롯한 IT 기업은 넷플릭스와 기존 미디어 강자의 싸움에 참전했다. IT 기업이 그동안 구축한 인터넷 네트워크와 자금력을 기반으로 방송∙영화 콘텐츠 사업에 눈길을 돌리자 미디어 사업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 애플 라이브 갈무리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 애플 라이브 갈무리
특히 애플은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 진출을 위해 올해만 10억달러(1조1200억원)를 투자한다. 애플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1980년대 NBC 방송에서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던 공상과학 스릴러물 '어메이징 스토리'를 재해석한 작품 제작을 맡기고, 영화배우 제니퍼 애니스턴과 리즈 위더스푼이 출연하는 아침 드라마를 만들기로 했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와 TV 프로그램 독점 제작 계약도 맺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이 넷플릭스보다 5년 정도 뒤쳐졌다”면서도 "애플이 한발 늦었지만, 판을 뒤엎을 기회다"라고 평가했다.

구글과 페이스북도 OTT 시장 진입을 예고했다. 페이스북은 2017년 자체 제작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동영상이 대세(mega trend)’라고 언급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2016년 4분기 실적발표 당시 동영상을 차기 수익원으로 꼽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TV 셋톱박스용 동영상 앱을 개발 중이다. 페이스북은 또 MTV 수석부사장 출신 미나 르페브르를 영입해 자체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페이스북은 에피소드 당 300만~400만달러(33억6000만~44억8000만원)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IT 업체 중 아마존은 가장 먼저 OTT 기반을 닦았다. 아마존은 1억명에 달하는 아마존 유료회원(1년에 99달러∙11만900원)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를 기반으로 외연 확장에 돌입했다. 스트리밍 시장 강자 넷플릭스 가입자는 2018년 1분기 기준 1억2500만명이다.

여기다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던 OTT 서비스 ‘프라임 비디오’를 2016년 4월 독립 서비스로 선보인 뒤, 그해 12월 전 세계 200개쯤의 국가에 선보였다.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해야 하는 조건을 없애고 월 8.99달러(1만원)를 내면 프라임 비디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가입자 유치에 나섰다. 아마존은 또 넷플릭스처럼 자체 제작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아마존은 2010년 아마존스튜디오를 설립하고 2013년 이후 자체 제작 콘텐츠를 선보였다.

◇ 또 하나의 변수 ‘망 중립성’ 폐지

미디어 빅뱅 시대에 미국에서 불어닥친 망 중립성 폐지는 업계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망 중립성 원칙은 망을 보유하지 않은 사업자도 모두 같은 조건으로 차별 없이 망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AT&T·버라이즌·컴캐스트와 같은 미국 통신·케이블 사업자 등을 일컫는 ISP가 콘텐츠 사업자(CP)를 대상으로 요금에 따른 속도 차별, 트래픽 조절 등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버라이즌 출신의 ‘망 중립성 폐지론자’ 아짓 파이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으로 임명했고, 11일 망 중립성 원칙을 담은 오픈 인터넷규칙을 폐기했다.

앞으로 AT&T는 자사의 위성방송업체 ‘디렉TV’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여타 서비스보다 더 빠른 인터넷 전용 회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넷플릭스나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콘텐츠공급자(CP)에게 나쁜 품질을 제공하는 차별도 가능하다. 즉, ISP가 CP에게 인터넷 트래픽을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분담금 지급을 요구하거나, 더 많은 인터넷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할 수 있다. CP 입장에서는 이용자 대상 안정적 서비스 제공을 위해 소위 ‘급행료’로 불리는 빠른 회선(fast lanes)에 가입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이 경우 자금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애플과 TV프로그램 독점 제작 계약을 체결한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 오프라 윈프리 트위터 갈무리
애플과 TV프로그램 독점 제작 계약을 체결한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 오프라 윈프리 트위터 갈무리
CNN은 “기술 트랜드는 계속 변하고 훌륭한 콘텐츠는 영원하다”며 “망 중립성이 폐지된 시대에 타임워너를 손에 넣은 AT&T가 5~10년 이내에 넷플릭스와 페이스북 등을 제칠 가능성이 있다”며 망 중립성 폐지로 ISP 사업자가 승패의 키를 쥐게 됐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선 ISP 사업자가 올 한 해 시장의 흐름을 지켜본 뒤 내년 즈음 전용 회선을 선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 결론은 콘텐츠, 아직 승패 결론나지 않아

수많은 변수에도 결국 승부는 콘텐츠가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회계 법인 딜로이트가 2017년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 중 자체 제작 콘텐츠를 가입 이유로 꼽은 비율은 54%에 이른다. 방송 콘텐츠 중에서도 자체 제작 콘텐츠가 동영상 서비스의 차별화 요소로 유의미하다는 증거다.

미국 미디어 업계에 빅뱅을 일으킨 장본인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 규모는 2013년 24억달러(2조6880억원)에서 2017년 60억달러(6조7200억원)로 증가했다. 2018년에는 80억달러(8조96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전체 투자액 중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 규모는 25%로 넷플릭스 경영진은 라이브러리 절반 이상을 오리지널 콘텐츠로 채우길 원한다. 하지만 디즈니가 콘텐츠 공급 중단을 선언하며 기존 디즈니가 제공하던 아동용 콘텐츠 제작 비용 부담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오리지널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 조선일보 DB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오리지널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 조선일보 DB
AT&T는 타임워너를 인수하며 ‘왕좌의 게임'부터 CNN까지 귀중한 콘텐츠를 갖게 됐다. 하지만 AT&T의 타임워너 인수 가능성이 높아진 법원 판결이 나온 12일 AT&T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4.5% 하락했다. AT&T가 새로운 미디어 영역에 진입하는 데 과다한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한 시장의 우려와 AT&T 본연의 핵심 산업인 통신 분야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시장조사업체 모펏너선슨의 그레이그 모펏 애널리스트는 13일 발행된 연구보고서에서 AT&T 주식을 ‘매각’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는 “타임워너는 침몰하는 배(AT&T)를 구제할 수 있는 작은 양동이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디즈니가 넷플릭스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발표하는 동시에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해 8월, 디즈니와 넷플릭스 주가는 각각 1.1%, 3.8% 떨어졌다. 세계 1위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도,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는 콘텐츠 사업자도, 콘텐츠 사업을 인수한 플랫폼 사업자도 급변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NYT는 “아마존을 시작으로 애플, 페이스북, 구글이 OTT 시장 진입을 서두르면서 기존 미디어와 넷플릭스, IT 기업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CNBC는 “단기적으로 기존 사업자는 신규 사업자에 대항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새로 진입한 사업자는 고객 유치와 고객 충성도 구축에 돈을 쏟으며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경쟁력을 바탕으로 많은 가입자를 모은 사업자가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