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선도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글로벌 IT 업계가 비주얼 컴퓨팅 역량 강화에 앞다퉈 뛰어들었다. 인텔, 삼성전자 등 전 세계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선두 업체도 한발 늦게나마 비주얼 컴퓨팅의 핵심인 그래픽 처리 유닛(GPU) 기술 확보를 위해 투자를 확대하며 미래 먹거리 확보에 나선다.

자율주행 이미지. / 모빌아이 제공
자율주행 이미지. / 모빌아이 제공
GPU는 컴퓨터에서 그래픽 이미지를 처리해 실제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반도체다. 초창기 GPU는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 처리 유닛(CPU)과 비교하면 제한적인 역할에 머무른 만큼 성능도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비롯해 각종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품질이 날로 정교하고 복잡해지며 상황이 반전됐다. GPU는 이미지 데이터를 더욱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연산 성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GPU의 연산 성능을 계산 자체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끊임없이 반복해 결과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분야에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성공을 거두면서 GPU는 그래픽의 굴레를 벗어나 연산 가속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GPU를 이용한 연산 가속은 슈퍼컴퓨터에도 적용됐고, 나아가 딥 러닝 등 인공지능(AI)을 빠르게 발전시키는 역할에 이르렀다. 2016년 인간을 뛰어넘는 바둑 실력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알파고' 역시 GPU 연산 가속에 힘입은 바 크다.

◇ AMD 인재 대거 영입하며 세 불리는 ‘인텔’

GPU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은 CPU의 제왕 인텔도 움직이게 했다. 인텔은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자체 외장형 GPU를 선보인 바 있으나, 당시만 해도 GPU 시장은 게임이나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 등 사용 분야가 한정돼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인텔은 대다수 사용자층을 겨냥해 CPU 내장형 GPU에 집중했다. 이후 다시 독립형 GPU 개발을 위한 ‘라라비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2010년 이마저도 전면 중단했다.

이후 8년이 지난 최근에야 인텔은 다시 독립형 GPU 개발에 재도전한다고 밝혔다. 물밑 작업의 정황은 이미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인텔은 지난해 경쟁사인 AMD에서 GPU 관련 핵심 업무를 수행한 라자 코두리 수석 부사장에 이어 올해 들어서는 짐 켈러 테슬라 하드웨어 부사장까지 영입했다.

인텔은 GPU 세부 전략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소비자용 외장 GPU 시장에 머물지 않고 AI, 머신러닝(기계학습) 등을 위한 대규모 데이터센터 시장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반도체 업계, ARM GPU 아키텍처서 독립 추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는 자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에 탑재할 자체 모바일 GPU 개발에 공을 들이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AP에 영국의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IP) 업체 ARM의 말리(Mali) GPU 설계 라이선스를 구매해 적용해왔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애플, 퀄컴 등도 기존에는 ARM의 라이선스에 의존했으나, 지금은 자체 모바일 GPU 설계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삼성전자도 자체 모바일 GPU 설계 기술을 갖게 되면 ARM에 내는 라이선스 비용을 절감하고, 모바일 기기뿐 아니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으로 비주얼 컴퓨팅 역량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주변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관건인 자율주행 분야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가상화폐)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블록체인 연산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GPU 수요가 폭증했다.

대표적인 소비자용 및 기업용 GPU 제조사였던 엔비디아는 이제 AI, 자율주행 전문 업체를 표방하며 실적 고공행진을 기록 중이다. 엔비디아의 매출은 2012년 20억달러(2조2340억원)에서 2017년 97억달러(10조8350억원)로 5년 새 385% 증가했다.

다만, 인텔이나 삼성전자 모두 자체 GPU 설계 기술이 완성도를 갖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인텔은 자체 기술로 만든 독립형 GPU를 2020년 선보인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도 당분간은 갤럭시 시리즈 등 주력 제품의 성능 향상을 위해 기존 GPU 라이선스를 유지하면서 자체 개발 모바일 GPU를 비주력 제품에 적용하는 투트랙 전략을 가져갈 것이란 게 반도체 업계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