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직무유기' 엔비디아, PC 시장 발목 잡나

입력 2018.07.06 06:00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등 PC 기반 온라인 게임들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고 관련 e스포츠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분위기가 좋아야 할 PC 시장은 올해 들어 다소 위축된 분위기다. 게이밍 PC의 핵심 부품인 그래픽카드용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NVIDIA)가 ‘직무유기’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며 오히려 PC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최신 게임은 3D 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성능의 CPU는 물론, 3D 그래픽을 별도로 처리하기 위한 고성능의 게임용 그래픽카드는 필수다.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시장조사기관 존 페디 리서치(JPR)에 따르면 CPU 내장이 아닌 외장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2014년 2분기부터 2017년까지 7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을 이끌었다. 국내의 경우 엔비디아의 점유율이 90%를 넘었을 정도로 거의 독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특히 게임용 GPU 시장에서 유일한 맞수인 AMD의 차세대 제품 성능이 엔비디아에 한참 못 미치면서 편중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게이밍 PC 시장의 라이프 사이클도 엔비디아의 신제품 출시에 맞춰 돌고 있다.

막상 시장을 독차지하게 되자 엔비디아의 신제품 출시 사이클은 눈에 띄게 길어졌다. 2014년 9월 등장한 엔비디아의 맥스웰(Maxwell) 아키텍처 기반 ‘지포스 900시리즈’가 약 1년 8개월간 장기 집권하더니, 2016년 5월 선보인 후속작 파스칼(Pascal) 아키텍처 기반 ‘지포스 10시리즈’는 무려 2년이 넘은 2018년 7월 현재도 엔비디아의 가장 ‘최신’ GPU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기술 발전이 빠른 ICT 업계의 특성상 2년은 강산이 두 번 바뀔만한 매우 긴 시간이다. 아무리 기존 제품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기업의 기술력 과시와 미래 성장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거의 매년 주기적으로 신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ICT 업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애플과 삼성은 매년 비슷한 시기 새로운 아이폰과 갤럭시 스마트폰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무려 2년 넘게 차세대 그래픽카드용 신제품 GPU 출시가 없는 엔비디아의 행보가 비정상적인 셈이다.

물론 엔비디아가 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최근 수년간 인공지능(AI) 시장이 급성장하며 엔비디아의 GPU는 차세대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인 ‘딥러닝’의 필수 하드웨어로 떠 올랐다. 2016년 딥러닝 기반 바둑기사 ‘알파고’의 충격적인 데뷔 이후, 20달러대 후반에 불과했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2018년 초 200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10여년간 그래픽카드용 GPU로 거둔 것 이상의 수익을 단 2년 만에 거뒀다.

게다가 2017년 하반기부터 전세계를 강타한 암호화폐 열풍이 불고, 그래픽카드가 암호화폐 채굴용 연산장치로 주목받으면서 엔비디아의 GPU를 탑재한 그래픽카드는 PC 시장에 씨가 마를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엔비디아는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차세대 그래픽카드용 GPU의 개발 및 출시가 아닌, 채굴용 GPU의 추가 생산에 투입했다. 엔비디아는 지난 2월 실적발표에서 암호화폐 채굴 수요에 대비해 GPU 공급량을 2018년 하반기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막상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카드용 GPU를 기다려온 관련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PC 기반 게임이 급속도로 인기를 끌면서 게이밍 PC 시장도 덩달아 시장 확대 및 성장의 기회를 맞았지만, 그에 어울리는 차세대 게이밍 그래픽카드와 PC를 선보이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PC 관련 세계 최대 규모의 전시회인 ‘컴퓨텍스 2018’의 경우, 주요 게이밍 PC 및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그래픽카드 신제품이 없어 지난해 제품군으로 겨우 부스를 유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했다. 소비자들 역시 엔비디아의 기약 없는 차세대 그래픽카드 출시만 바라보며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PC 시장도 자연스레 위축된 상황이다.

최근 5G와 드론, 인공지능 등 차세대 사업 비중을 대폭 확대하고 있는 인텔은 그 와중에도 코어가 2개 더 늘어난 8세대 CPU 제품군을 선보이며 PC 업계 선도기업의 역할을 잊지 않고 있다. AMD도 CPU 시장에 1세대, 2세대 ‘라이젠(RYZEN)’ 프로세서를 잇달아 선보이며 PC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한편, 경쟁사에 못 미치긴 해도 그래픽카드용 GPU도 꾸준히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정작 게이밍 PC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엔비디아만 PC 시장을 나 몰라라 방치하고 있다. PC 시장을 기반으로 기반을 닦아왔던 엔비디아가 이제는 PC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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