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18’에서 사물인터넷(IoT)과 스마트 기기를 기반으로 편리한 삶을 구현하는 미래의 스마트 홈과 스마트 시티를 전시했다. 각종 센서와 플러그, 조명 등 인터넷으로 연결해 조작할 수 있는 다양한 기기로 가득한 구글 부스에서 한 독특한 제품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7~8인치쯤 크기 디스플레이 주위에 제법 큼지막한 스피커가 달린 이 제품은 태블릿 같아 보이면서도 과거 휴대용 TV의 유물을 보는 듯한 독특한 인상을 줬다. 알고 보니 이 제품은 화면을 탑재한 인공지능(AI) 스피커였다. 구글은 이 제품을 ‘스마트 디스플레이'로 명명했다.

구글이 CES 2018에서 선보인 여러 제조사의 스마트 디스플레이. / 노동균 기자
구글이 CES 2018에서 선보인 여러 제조사의 스마트 디스플레이. / 노동균 기자
스마트 디스플레이의 기본적인 사용법은 기존 AI 스피커와 같다. ‘오케이 구글'과 같은 호출 명령어를 말한 후 원하는 주문을 하면 된다. 단, 기존 AI 스피커가 주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음성에 국한돼 있었다면, 스마트 디스플레이는 필요에 따라 이미지나 영상으로 답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된장찌개 끓이는 법 알려줘'라고 명령할 경우 조리법을 줄줄이 읊어주는 것보다 유튜브에서 된장찌개 조리 영상을 검색해 재생해주는 게 더 직관적인 답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컴퓨터를 다루는 방법이 키보드·마우스에서 터치로, 터치에서 음성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하지만, 컴퓨터가 사람에게 답하는 방법까지 음성이 최종 진화 단계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여전히 백문이 불여일견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가 쇼핑이다. AI 스피커가 똑똑해지면서 말만 하면 알아서 주문해준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존 주문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AI 스피커에 ‘지난번에 산 세제 하나 더 주문해줘'라는 주문은 유효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스커트 주문해줘'라는 주문은 그렇지 못하다. 이 경우에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유행하는 스커트를 보여주고 그중 하나를 고르면 주문을 해주는 게 합리적이다.

AI 스피커의 원형인 아마존 ‘에코'도 처음에는 식품이나 소모품 등을 간편하게 다시 주문하기 위한 용도로 출발했다. 아마존은 2017년 2.5인치와 7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에코 스팟'과 ‘에코 쇼'를 출시했다. 아마존이 구글보다 먼저 AI 스피커에 시각적 요소를 도입한 이유도 결국 쇼핑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CES 2018에 전시된 LG전자의 스마트 디스플레이는 ‘LG 씽큐 뷰 WK9’라는 모델명으로, 8인치 터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 노동균 기자
CES 2018에 전시된 LG전자의 스마트 디스플레이는 ‘LG 씽큐 뷰 WK9’라는 모델명으로, 8인치 터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 노동균 기자
구글은 CES 등에서 존재감을 알린 스마트 디스플레이를 하반기 순차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구글 스마트 디스플레이의 하드웨어 파트너로는 LG전자, JBL, 레노버 등이 있다. 구글은 앞서 AI 스피커를 출시할 때도 자체적으로 만들기보다 먼저 파트너를 통해 제품을 출시한 후 직접 제조에 뛰어드는 방식을 따랐다. 최근 AI 스피커 시장에 뛰어들 뜻을 밝힌 페이스북도 첫 제품을 디스플레이 탑재형으로 선보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 디스플레이는 음성만으로는 부족했던 명령 체계를 시각적으로 보완해 스마트 홈의 허브 역할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로 한 장소에 거치해두고 쓰는 AI 스피커와 들고 다닐 수 있는 태블릿의 경계에서 스마트 디스플레이가 어떤 사용성을 제시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현재 AI 스피커 활용 사례의 대부분이 음악 감상에 치중된 만큼 스마트 디스플레이가 가정 내 영상 콘텐츠 소비 채널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도 구글 크롬캐스트와 같은 화면 공유 솔루션을 이용하면 손쉽게 더 큰 화면의 TV로 유튜브, 넷플릭스 등 인터넷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화면 크기가 작은 스마트 디스플레이에서 영상이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스마트 디스플레이의 성공 여부는 기존의 ‘말하고, 듣는’ 상호작용에 ‘본다'는 행위를 결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시너지를 어떻게 끌어낼 에 달렸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스마트 디스플레이는 스피커 일체형 스마트폰이나 거치형 태블릿에 불과하다는 평가에 머물 수 있다는 게 IT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