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파괴] ②결혼식날 친모 불태워 죽인 백설공주

입력 2018.07.14 06:00

현재 대중이 생각하는 ‘백설공주’는 1937년 월트디즈니가 선보인 세계 첫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의 스토리 속 인물이다.

디즈니 백설공주 일러스트. / 아마존 갈무리
디즈니가 만든 백설공주는 자신의 미모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계모에게 독살 당하지만 일곱 명의 난쟁이와 왕자의 사랑으로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하는 공주로 그려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작 동화 속 백설공주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친모를 처형하는 사악한 면모를 지닌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겉보기에는 온순해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 복수의 화신으로 그려진 초판 백설공주

‘백설공주’ 초판은 독일 헤센주에 위치한 바드 빌툰겐 지방의 민화(民話)를 바탕으로 정리된 그림형제의 동화다. 동화 속 백설공주를 독살시키는 왕비는 공주의 계모가 아닌 ‘친모’다.

백설공주가 일곱살 되던 해 왕비는 마법의 거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누군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마법거울이 자신의 딸이 1000배 더 아름답다고 실토한다. 질투에 가득찬 왕비는 사냥꾼에게 어린 딸을 죽일 것을 명하고 그 증거로 공주의 몸에서 ‘허파와 간’을 빼올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바램대로 예쁘게 태어난 딸을 자신의 손으로 사지(死地)로 내몬 것이다.

사냥꾼은 왕비의 명령대로 깊은 숲 속에서 공주를 죽이려 하지만 백설공주의 눈물과 미모에 살인을 포기하고 숲으로 내 쫓는 것에 그친다. 숲 속에 두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냥꾼은 공주 대신 어린 사슴의 허파와 간을 왕비에게 바쳤고, 기쁨에 넘친 왕비는 공주의 것이라고 들은 내장을 삶아 먹는 기행을 보인다.

숲 속으로 내쫓긴 공주를 도우는 것은 ‘일곱 명의 난쟁이(sieben Zwerge)’다. 난쟁이의 정체는 판타지 영화나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드워프’이며, 일부 민화는 이들을 단순한 난쟁이가 아닌 ‘살인자’로 그리기도 했다.

공주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챈 왕비는 상인으로 둔갑해 허리 끈을 파는 척하면서 공주를 질식시켜 죽이거나, 독이 묻은 머리빗으로 찔러 살해하려 했다. 하지만 난쟁이의 도움을 받은 백설공주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났다.

두 번의 실패로 분노에 가득찬 왕비는 독이 든 사과를 이용해 공주를 독살하는데 성공한다. 난쟁이는 마치 살아서 잠든 것 마냥 누운 아름다운 공주를 땅에 묻기 아깝다고 판단해 유리관 속에 공주를 넣어 보관한다.

동화 백설공주 일러스트. / 위키피디아 제공
어느 날 젊은 왕자가 숲 속의 작은 집에서 눈을 감은 백설공주를 발견하고 공주의 시체를 자신에게 팔 것을 요구한다. 왕자의 끈질긴 설득에 난쟁이는 공주가 든 관을 왕자에게 넘긴다. 공주를 넘겨 받은 왕자는 유리관을 자신의 방에 두고 한 시도 눈을 때지 않았으며, 자신이 외출할때도 하인을 부려 관을 함께 이동시켰다.

후대 전문가들은 왕자가 인형을 사랑하거나 여성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피그마리온 컴플렉스’ 질환을 앓았다고 평가한다.

왕자의 ‘공주 사랑’ 문제로 곤란을 겪던 하인은 공주의 몸을 일으켜 세워 등을 때린다. 공주를 반죽음 상태로 만든 사과 조각은 하인의 폭행 덕에 목에서 빠져나왔고 공주는 다시 눈을 뜬다. 공주가 살아난 것을 기뻐한 왕자는 공주에게 청혼해 결혼식을 한다.

되살아 난 백설공주는 자신을 독살한 친모인 왕비를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한다. 자신의 딸인지도 모르고 초대 받은 왕비는 결혼식장에서 뜨거운 불로 달궈진 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다 최후를 맞이한다. 백설공주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인생 최대의 적인 친모를 공개 처형한 것이다.

독일 역사학자 에크하르트 잔다는 백설공주의 실제 모델이 1554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2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마르가레타 폰 바르덱’이라고 주장한다. 마르가레타의 아버지는 바드 빌툰겐 지방의 영주인 필립 4세로 로마제국의 칼 5세에게 붙잡힌 필립 1세의 해방을 조건으로 딸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기록에 의하면 마르가레타는 미모가 빼어났으며, 필립 4세의 두 번째 부인인 카탈리나의 질투를 받아 16세의 나이로 성에서 추방됐고 이후 브뤼셀로 갔다. 그는 1554년 독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설공주의 실제 모델이 헤센 지방의 마르가레타가 아닌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 살았던 ‘마리아 소피 마르가레이티 카탈리나’라는 설도 있다.

◇ 명작이라 칭송 받는 디즈니 백설공주

월트디즈니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는 당시 기술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담았다. 그림에서 깊이감을 제공하는 3차원적인 그림과 컬러 영화 채색기술인 ‘테크니컬러’를 사용했다. 당시로서는 막대한 거금인 170만달러(19억원)를 투입됐고, 제작 기간은 4년에 달했다.

1937년 개봉된 이 작품은 당시 최고 애니메이션 퀄리티를 자랑하며 6100만달러(686억원)의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백설공주는 일본 만화의 신(神)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자 ‘아톰 아버지’인 만화가 테츠카 오사무가 50번 이상 봤다고 밝힐 만큼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백설공주는 2008년 학자·평론가·역사학자 등 1500명으로 구성된 심사인단이 뽑는 ‘AFI 미국영화 100년시리즈’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디즈니 백설공주 일러스트. / 아마존 갈무리
디즈니 백설공주의 결말은 대중에게 유명한 ‘왕자님과의 첫 키스’를 통해 공주가 눈을 뜬다는 내용이다. 공주를 독살하려했던 여왕은 갑작스럽게 내려친 번개에 의해 벼랑에서 추락사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여왕은 추락하면서 마법으로 유지되던 미모를 잃고 추한 노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