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블록체인 현장] ⑨룸77 가보니...카드 No, 비트코인 OK, 버거 '굿'

입력 2018.07.14 06:00

유럽 대륙이 블록체인 바람으로 꿈틀대고 있다. 블록체인을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각 분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유럽 각국의 행보는 가상화폐 가격 등락에 울고웃는 한·중·일 지역의 한탕주의 흐름이나 묻지마 투자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새 기술 패러다임으로 ‘골디락스(Goldilocks·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시대를 준비하는 유럽의 블록체인 혁신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베를린 시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힙’한 동네라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이 나온다. 한때 펑크족·보헤미안족 등 대항문화 추종자들이 거주했고 지금은 소문난 클럽이 즐비한 곳이다. 세계 최초로 맥주를 비트코인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화제를 모은 ‘룸77(room77)’도 이 지역에 있다.

룸77 입구/류현정 기자
기자는 6월 30일(현지시간) 룸77을 방문했다. 가게 입구에는 비트코인을 뜻하는 알파벳 B 네온사인이 반짝였다. 가게 곳곳에는 ‘유럽중앙은행을 끝내라(END THE ECB)’ ‘그가 너를 보고 있다(He’s Watching YOU)’ ‘구글 꺼져(Fuck off Google)!’ 등을 써놓은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감시 사실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스티커도 있었다.

룸77은 2011년 5월부터 8년째 비트코인을 받고 있다. 현금 결제는 가능하지만, 카드 결제는 안된다. 카드 결제 거부는 중앙 통제에 거부하는 가게 주인장의 뜻이라고 한다.

실내 조명은 다소 어두웠지만, 패브릭 쇼파에 긴 초로 테이블을 밝혀 아늑함을 더했다. 종업원들이 일하는 바(bar) 테이블 뒤 선반에는 여러가지 주류가 순서 없이 놓여 있었다. 마침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월드컵 16강전이 열렸다.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손님이 많았다.

룸77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비트코인으로 음식값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룸77에서 2년동안 일해 온 종업원에 따르면, 하루 3명 정도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기자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게임’하듯 흥미 삼아 비트코인 결제를 해 본다는 것이다.

룸77은 매월 첫째 목요일 암호화폐(가상화폐) 정기 밋업(모임)을 연다. 종업원은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매월 첫째 목요일에도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많아야 10명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한 달에 겨우 1~2명만 비트코인으로 결제했던 8년 전보다는 늘어난 것이다.

기자가 주문한 룸77의 버거/류현정 기자
12유로짜리 버거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해 봤다. 종업원이 비트코인 지갑(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고 ‘코인 요청(request coin)’을 클릭한 뒤 12유로를 입력하니, QR코드가 떴다. 손님이 자신의 비트코인 지갑으로 이 QR코드를 스캔하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 비트코인이 빠져나간다. 비트코인 지갑을 구동하고 비트코인 송금까지 총 걸린 시간은 약 30초. 비트코인 송금 자체는 2~3초정도 밖에 안걸렸다.

종업원은 “비트코인 결제 속도가 최근 빨라진 편”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데 30분 넘게 걸린 적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수수료였다. 12유로짜리 버거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데 0.9유로에 달하는 수수료가 붙었다. 1만5000원을 결제하는 데 수수료 명목으로 1180원가량을 더 낸 것이다. 거래액의 7.5%가 수수료로 나간다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쓰기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수수료는 비트코인 거래를 증명하는 채굴자들이 나눠 갖는 데, 수수료율은 거래 때마다 달라진다.

룸77를 운영하는 외르그 프라체씨는 비트코인 관력 책을 썼다./류현정 기자
비트코인 결제 8년 전통을 자랑하는 룸77에서도 비트코인 쓰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은 결제 방법, 암호화폐 가격과 수수료의 높은 변동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으로 보인다. 특히, 고점에서 구매한 비트코인을 12유로짜리 버거 결제에 쓰기엔 어려울 것이다. 비트코인 당 가격은 지난해 말 2만 달러 가까이 치솟았다가 최근엔 6000 달러선까지 추락한 상황이다.

기자는 룸77에서 비트코인의 가능성과 결제 수단으로서의 한계를 동시에 확인했다. 비트코인은 결제 수단보다는 금처럼 자산을 축적하거나 다른 암호화폐의 가격을 매기는 용도로 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트코인의 약점을 극복한 다른 암호화폐가 나와 결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룸77 주인은 IT 분야에서 약 30년 근무한 외르그 프라체(Joerg Platzet)씨다. ‘간단하고 좋은 비트코인 - 은행 없는 은행(Bitcoin kurz&gut, Banking Ohne Banken)’이라는 책도 썼다. 그는 4년 전 비트코인 ATM 기기도 매장에 들여놓았다가 3주만에 ‘철거'해야 했다. 독일 정부 당국이 비트코인 ATM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돈다.

한 가지, ‘룸77’의 햄버거는 훌륭했다. 패티가 두툼했고 야채도 신선했다. 알맞게 튀긴 웨지 감자와 소스도 맥주와 잘 어울렸다. 룸77 뿐만 아니라 여러 카페가 가게 밖에도 TV를 설치해뒀다. 맥주 한잔하며 월드컵 경기를 보는 거리 풍경이 펼쳐졌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