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과 정부의 합의로 한국GM 사태는 한시름 놓았다. 물론 당초 예정했던 군산공장 폐쇄는 번복되지 않았다.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떨어진 브랜드 신뢰도 문제다. 누구도 언제 어떻게 한국에서 철수할지 모르는 회사의 차를 사고 싶은 소비자는 없을테니 말이다.

쉐보레 이쿼녹스. / 박진우 기자
쉐보레 이쿼녹스. / 박진우 기자
한국GM은 다시 한국 소비자 껴안기에 나서고 있다. 대규모 프로모션을 펼치는 한편, 보증수리를 강화했다. 적극적으로 국내 시장에 신차를 선보이겠다는 다짐도 했다. 공장 근로자에게는 물량이 보장되는 글로벌 전략 신차 유치를 약속했다.

쉐보레 이쿼녹스는 한국GM 정상화 계획 중 큰 축인 15종의 신차, 그 선봉에 서는 차다. 이쿼녹스는 쉐보레 브랜드를 대표하는 중형급 SUV로, 이미 미국 무대에서는 검증이 끝났다. 연간 25만대의 판매는 물론이고, 2017년에는 30만대에 육박하는 판매를 일궜다. 이쿼녹스를 한국GM 부활의 키포인트로 잡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쿼녹스는 쉐보레의 최신 디자인을 적용했다. 듀얼포트 그릴로 불리는 상하 분리형 라디에이터 그릴의 형상이 핵심이다. 상단 그릴의 중앙에는 쉐보레 보타이 엠블럼이 들어가 존재감을 낸다. 헤드램프는 크루즈처럼 과하진 않지만 눈꼬리를 날카롭게 올렸다. 후드의 음양각 굴곡도 SUV 특유의 강인함을 표현한다. 후면은 앞뒤로 두개의 굵은 캐릭터 라인이 중심을 잡는다. 뒤쪽은 수평기조가 유지된 가운데 제품을 설명하는 여럿 배지를 부착했는데, 조금 더 디자인의 통일성이 있었으면 한다. 배지가 난립한 모습은 별로다.

실내 디자인은 편안함에 초점을 맞춘 듯 하다. 중형 세단의 말리부와 분위기가 흡사하기 때문이다. 시승차는 대시보드와 도어트림 곳곳을 가죽으로 마감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가죽은 군데군데 저렴해 보이는 플라스틱 재질의 단점을 보완한다.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요즘 유행하는 휴대전화 무선충전 트레이를 넣었다. 그러나 무선 충전을 지원하는 모든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꼭 쉐보레 홈페이지에서 자신이 휴대전화가 무선충전이 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참고로 기자가 쓰는 아이폰 X는 충전되지 않았다. 갤럭시도 세대에 따라 다르다. S7은 되지 않고, S8은 가능하다.

이 차의 크기는 길이 4650㎜, 너비 1845㎜, 높이 1690㎜로, 싼타페나 QM6보다 약간 작은 체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휠베이스는 2725㎜여서 크게 빠지지 않는다. 비율적으로도 그다지 작아 보이지 않는다. 휠베이스 크기의 넉넉함은 실내 공간의 여유로움을 선사했다.

1열에는 통풍 및 열선시트가 기본이다. 뒷좌석은 등짝 또는 등짝과 엉덩이를 동시에 데울 수 있는 열선을 시트에 집어 넣었다. 추운 겨울 확실한 장점인 열선 스티어링 휠이 들어갔으며, 전동식 아웃사이드미러, 하이패스 기능을 담은 전자식 룸미러 등이 유용한 기능으로 꼽힌다.

쉐보레 이쿼녹스 실내. / 박진우 기자
쉐보레 이쿼녹스 실내. / 박진우 기자
엔진은 1.6리터 디젤에 6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한다.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32.6㎏·m를 낸다. 경쟁차종 대부분 2.0리터 엔진을 장착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작아 보이는 엔진이다. 하지만, 디젤엔진 특유의 가속감을 살린 덕분에 속도는 6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착착 오른다. 그렇다고 빼어난 성능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난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도심형 SUV의 트렌드가 ‘쉬운 운전’에 있는 듯하다.

스티어링 휠도 잘 돌아간다. 다소 가볍다는 느낌도 든다. SUV 인기가 높은 중국과 미국 시장의 소비자 특성이 반영된 탓일까? 이쿼녹스 뿐 아니라 요즘 나오는 SUV 대부분이 이렇다. 거친 면은 외관 뿐이다. 하체 감성도 마찬가지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맛은 있으나, 단단한 하체에 기반을 두고있지 않다. 물론 거동이 민첩할리 없다. 차고가 높은 SUV니까.

한국에서 쉐보레는 유독 안전을 강조하는데, 이쿼녹스는 시트 진동으로 위험을 알린다. 이른바 ‘햅틱시트’다. 소리나 빛으로 경고하는 기존의 시스템은 운전자의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진동으로 위험을 알리는 방식이 사용됐다. 차 주변의 장애물, 전방의 위험 상황 등이 감지되면 햅틱시트가 양 허벅지를 간질인다.

크루즈 콘트롤은 어댑티브 기능을 뺐다. 따라서 속도가 낮은 앞차를 만나도 속도를 스스로 줄이지 않는다. 자칫 사고가 날 수 있는 부분이니 운전자 주의가 필요하다. 요즘 왠만하면 어댑티브 크루즈 콘트롤이 들어가 있는 것과 차이가 있다. 원가 절감 때문에 넣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차선이탈방지기능은 역할을 잘 수행해내는 편이다. 다만 차선이 희미하거나 끊겨져 있는 부분에서는 작용하지 않는다.

효율은 복합기준 13.3㎞/ℓ다. 그러나 시승 때 트립컴퓨터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수치가 기록돼 있었다. 실연비가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차들은 대부분 실연비가 좋다. 국내 표시연비 신고 기준이 엄격해 졌기 때문이다. 이쿼녹스 만의 장점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2987만원부터 시작해 최상급 3892만원이라는 가격은 약간의 논란이 있다. 물론 다양한 기능을 넣은데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수입차종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소비자한테 생산지가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가격에 맞는 상품성을 갖췄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소비자 나름의 기준을 넘지 못하는 차는 시장에서 도태된다. 쉐보레 신형 크루즈가 이미 몸소 증명한 부분이다. 회사에게 있어 제품 하나는 그저 숫자로만 결과를 나타내는 성질의 것일지 모르겠지만, 소비자에게는 엄연한 재산의 하나다. 재산을 갖추는데 신중하지 않을 소비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