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의 큰 제목이 ‘밀리터리 프라모델 세계’인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밀리터리 잡학 시리즈가 되어버린 관계로 이번 회에서는 제목에 충실한 프라모델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프라모델이란 플라스틱+모형(모델)의 합성어로(사실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립식 모형을 말한다.
◇ 장난감과 프라모델의 차이
예전 세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남자 어린이는 한 번쯤은 해 보았던 조립식 모형은 대부분의 사람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만두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학생이면 이제 애들이 아닌데 아직도 장난감을 갖고 노느냐?”는 부모님의 질타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성인이 프라모델을 보는 시각은 ‘장난감’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시각은 지금도 거의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키덜트’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프라모델이 재조명되고는 있지만 역시 키덜트란 용어도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른”이라는 말이니 예전의 시각에서 전혀 변한 것은 없고, 그저 “어른도 장난감을 갖고 놀 수는 있지”라는 관대한 인식이 새로 등장했을 뿐이다.
장난감의 정의를 무엇이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장난감은 기본적으로 험하게 만져도 파손되지 않고 만지는 사람이 다치지 않아야 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프라모델은 장난감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정교하게 만든 프라모델은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부분을 쥐고 옮겨야 할지 만든 사람만 아는 것들도 있고(그 부분을 쥐지 않으면 바로 파손된다), 조금이라도 험하게 만졌다가는 모형도 바로 파손되고 플라스틱에 찔려 신체에 고통이 올 수도 있다.
프라모델은 상당히 정교한 물건이고 그 대상이 되는 실물이나 조립을 진행하는 과정 안에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하나하나 정성껏 조립하다 보면 다른 취미에서 느낄 수 없는 보람과 희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 프라모델의 분야
프라모델도 몇 가지로 분야가 나뉘는데, 크게 나누어 보면 SF와 캐릭터 모형, 그리고 스케일 모형으로 나눌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음악에서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으로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다 보면 된다.
SF·캐릭터 모형은 요즘 인기있는 ‘건담’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로봇 모형이나 영화나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모형으로 만든 것들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기 때문에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조립의 편의를 추구하는 제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접착제 없이 스냅식으로 조립한다든가, 사출물을 여러 가지 컬러로 만들어 굳이 색칠할 필요가 없도록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역시 ‘오덕(오타쿠)’들은 있어서 로봇에 정교한 색칠을 하고 여러 가지 옵션 부품을 달기도 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경우도 많다.
그냥 빨강색 플라스틱과 빨강색 플라스틱 위에 빨강색 도료를 칠한 것은 질감에 차이가 크다. 그리고 전투 로봇이 전투를 벌인 흔적도 표현해줘야 하고 제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무기도 장착해 보고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스케일 모형은 어디까지나 세상에 존재하는 실물에 근거하여 그 실물을 35분의 1, 72분의 1 같은 몇 가지 축척으로 축소해 똑같이 만든 모형이다.
스케일 모형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 가지는 자동차·오토바이 모형이고 다른 한 가지는 밀리터리 모형이다.
액션 영화를 중심을 한 많은 영화에서 별의별 무기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동차보다도 더 친숙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모형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큰 것은 아닌 것 같다.
◇ 밀리터리 프라모델의 매력
앞서 어렸을 때 프라모델을 하던 사람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거의 다 그만둔다고 했는데, 필자의
경우는 그만두지 않은 케이스에 속한다.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바로 프라모델을 만들면서 그에 대한 실물을 같이 공부했기 때문이다. 어떤 프라모델이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그냥 조립하고 색칠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금세 그만두게 되지만 그에 대한 실물의 역사나 성능, 활약상 등을 알게 되면 이 취미를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예를 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책상 앞에 붙여놓거나 바탕화면에 깔아두는 행동은 그 연예인에 대한 일종의 애정표현이고, 실제 연예인을 옆에 두지 못한 데 대한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밀리터리 프라모델 또한 어느 멋있는 무기가 어느 전투에서 어느 부대가 사용하면서 어떤 실적을 올렸느냐에 대해 알게 되면 그 모형을 갖고 싶게 되고, 그러고 나면 그 실물과 상대했던 상대방의 무기라든가, 그 실물의 변형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어 또 그 모형을 만들게 된다.
필자가 굳이 밀리터리 프라모델 칼럼에 실물 이야기를 계속 쓴 것도 그 실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프라모델을 접하는 것이 프라모델 취미를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리터리 프라모델은 사실은 만들고 색칠하기가 제일 어려운 분야에 속한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많고 완전히 만들고 나면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프라모델 시장의 한 분야인 프라모델 서적들에서 약간 ‘맛이 간’ 필진이 이 모형은 어디가 실물과 모양이 틀리다 느니, 35분의 1 스케일로 축소했을 때 1밀리미터(㎜)가 짧다느니 하는 식으로 사정없이 ‘지적질’들을 해대는 바람에 제품들이 더욱 정교하고 복잡해지는 결과가 되었다.
이런 제품들은 초보자는 만들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메이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시장이 좁으니 살 놈만 사면 된다”는 식으로 내놓다 보니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40년 넘게 모형을 만든 필자도 이런 키트 한번 만들고 나면 완전히 지칠 정도다. 대체로 보면 중국제와 대만제, 동유럽에서 나온 키트들이 이런 현상이 심하고, 한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키트들은 그래도 조립의 편의와 정밀성의 중간을 취하는 합리적인 키트를 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서유럽제 키트들은 아무래도 복잡한 키트는 거의 없지만 조립에서의 편의성이나 정밀도에 있어서는 제품별로 편차가 심한 편이다. 신기하게도 미국은 제대로 된 프라모델 메이커가 거의 없다.
요즘은 프라모델 매장 직원들도 ‘아는 체’하는 재미에 이런저런 색칠을 못 하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냥 소신껏 구입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지난 회에 필자가 쓴 F-117A 스텔스 전투기 이야기를 알고 나서 F-117A의 프라모델을 산다고 하면 국산이나 일본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일단 조립을 해 보고 나서 또 관심을 갖게 되면 후계 기체인 F-22나 F-35의 모형을 사도 좋을 것이고, F-117A와 맞섰던 이라크군의 장비를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