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를 해결한 인류는 장거리의 빠른 이동을 꿈꾸기 시작한다. 말, 마차, 기차, 여객선, 항공기, 자동차로 인류의 꿈은 하나둘씩 현실화했다. 특히 승용차는 혼자서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운전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운전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도 많다. 인류는 이제 자율주행 자동차를 꿈꾼다. 공학자와 기업가에게는 자율주행차가 흥미로운 도전과제이자 사업기회다.

자율주행차는 자동화 수준에 따라 대개 5단계로 나뉜다. 3단계부터가 자율주행차라고 할 수 있으며 위험한 교통 상황이나 기후조건에서는 운전자가 개입한다. 4단계는 거의 항상 자율로 주행해 승객이 잠을 잘 수도 있지만, 기후 상황이 좋지 않거나 지도가 불완전한 등의 특별한 상황에서는 주행하지 않는다. 5단계는 완전 자동화로 어떤 상황이든 항상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현재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고속도로 등 제한적인 도로에서 4단계 전후의 자율주행차를 2020~2021년에 출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벤츠, 르노처럼 도심 내 주행까지 포함한 자율주행차를 2020년에 출시하겠다는 기업도 있지만 도심 주행까지 가능한 4단계 자율주행차는 2020년대 후반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도 도심 자율주행차는 2030년에나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자동차 제조사나 투자기관, 컨설팅 기업은 대체로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기술력을 과시하고 우수 엔지니어를 유치하거나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정작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나 기술전문가, 교통전문가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5단계의 완전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기까지 기술적 난관이 많고 완벽한 검증 및 승인, 규제, 관련 교통 인프라 개선, 최종 사용자의 교통 서비스 이용과 구매 행태 등에서 많은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간된 빅토리아 운송정책연구소의 보고서를 참고해 몇 가지 이슈를 짚어 본다.

첫째, 자율주행차의 용도나 도입 목적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을까? 자율주행차는 운전자의 운전 스트레스, 사고위험, 교통혼잡, 환경오염, 운송비용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한다. 대중교통을 대체 또는 보조하도록 자율주행 택시, 자율주행 밴 등의 공용 자율주행차가 확대돼 차량 미소유 저소득층, 운전 불능자, 고위험 운전자에게 저렴한 교통편을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과 달리 저렴한 교통편이 늘어나면 총 이용 거리 및 시간이 늘어나고 자율주행차의 편대 주행, 전용 차로 제공 등으로 오히려 교통혼잡이 심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교통혼잡 감소, 환경오염 저감, 운송비용 절감 등 사회적 가치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주장도 많다. 또 공용 자율주행차의 청소 비용, 교통인프라 개선 비용 등 숨겨진 비용 요소가 많고 서비스 품질이 나빠질 것이라고도 한다. 공용 자율주행차 내부 인테리어나 편의사양은 최소화될 것이라고 한다. 해킹 위험, 동승자에 의한 안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한다는 기능적 가치를 넘어선다. 운전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또 오디오, 안락한 의자 등 고급 편의 사양을 탑재한 차량을 소유한다는 운전자의 자부심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 자가 운전자가 자동차를 소유하는 대신 저렴한 공용 자율주행차를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자가 운전자는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된 고급 자율주행 자가용을 원할 것이다. 트럭, 버스 등 상용 자동차는 운전자 인건비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자율주행차 도입에 적극적일 것이다.

하지만 무인 상용차 도입을 위해서는 5단계의 완벽한 자율주행차가 필요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벤츠 등이 자율주행 트럭을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 자율주행 수준과 범위가 제한적이다.

둘째, 완전 자율주행차는 믿을 수 있는가? 올해 5월 AAA(미국자동차협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73%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연이은 사고로 근래 조사에선 2017년 말 대비 10%나 증가했다.

최근 교통사고는 거의 매일 뉴스에 오른다. 사고의 90%는 운전자의 잘못이다. 그런데도 운전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10%의 자동차 고장으로 인한 사고위험 때문에 자동차를 타지 않는 사람도 없다. 안전에 대해서는 수치로만 얘기할 수 없다. 자율주행차가 인적 오류에 의한 사고위험을 90% 이상 낮출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율주행차의 숨겨진 위험도 많다고 한다.

기술혁신으로 자율주행차는 현재의 자동차보다 사고 확률이 100분의 1로 낮아져도 저항감은 더 커질 수 있다. 운전자가 통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고가 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다.

자율주행차는 완벽해야 한다는 믿음도 큰 장벽이다. 사용자가 거의 완벽하게 안전한 자율주행차를 개발한 후나 타겠다면 사실상 자율주행차는 개발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자동차를 오늘날 수준으로 안전하게 만들어진 이후 본격적으로 타려고 했다면 100년 넘는 기간 동안 자동차 기술과 산업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율주행차도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서 사용하고 구매하는 사람이 있어야 기술개발과 제품 개발이 진행될 수 있다. 즉 자율주행차의 기술혁신과 산업발전 과정에서 ‘용감한 사용자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탑승자의 의지대로 통제·대응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에서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자율주행차를 탈만큼 용감하거나 절실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자율주행차 시장이 창출될 수 있을까?

셋째, 5단계의 완전 자율주행차는 언제쯤 가능할까? GAO(미국회계감사원) 2016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최신 전투기 F22의 프로그램은 170만줄이지만 각종 안전 및 편의 사양을 장착한 최신 고급 승용차는 50배가 넘는 1억줄이라고 한다. 완전 자율주행차의 프로그램은 얼마나 더 복잡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커질수록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렇게 막대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완벽히 검증하는 것은 아직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현재 기술로 자율주행이 가능한 상황은 90%쯤 된다. 하지만 이를 확대하는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진다. 확률을 99.9%로 높이는 기술은 정말 어렵다. 5단계 완전 자율주행차는 개발에만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자율운행 기술의 가장 큰 도전은 번잡한 도심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보행자다. 보행자는 지도에 나타나지도 않고 사전에 탐지하거나 행동을 예측하기 힘들다. LiDAR(레이저 레이더)가 확보한 도로 상황과 카메라가 제공하는 이미지를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처리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도전이다.

AI에게 유사한 개체 데이터를 다수 학습시켜 인식시키는 기술이 크게 발전했지만 도로에서 마주칠 개체는 거의 무한대로 많고 많은 변형이 있다. 이를 일일이 분류해 학습시키기 쉽지 않다.

또 이미지가 조금 훼손되거나 변형이 있으면 AI가 착오를 일으키기 쉽다. 특히 비전 인식은 조명에 민감한데 도로 상황의 빛의 변화와 간섭은 다양하고 예측하기 힘들다. 현재의 AI는 자신의 결정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결성을 테스트하고 검증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자율주행차의 AI 비전은 엄청난 연산능력이 요구돼 초고성능 그래픽카드와 전용 AI칩이 개발되고 있다. 엔비디아 같은 그래픽카드 기업과 반도체 기업이 여기에 매달리는 이유이다.

엄청난 전력 소모도 문제다. 막대한 유사 데이터의 패턴을 학습하는 현재의 AI 기술로는 자율주행차에 요구되는 사람 수준의 실시간 시각정보 처리를 구현하기 어렵다. 사람의 시각정보처리 및 인식 능력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새로운 패러다임과 혁신이 요구된다. 스마트 공장의 무인 자동 물류차량처럼 전용도로를 구축하거나 모든 도로에 센서를 대량으로 부착하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일 수도 있다.

넷째, 자율주행차가 개발돼도 시장에 침투해 보편화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특히 자동차는 5~10년 이상 사용하는 고가 제품으로 교체 사이클이 길다. 자율주행차의 제품 개발 및 판매 사이클이 수십 회 반복돼야 기술이 조금씩 진화해 높은 신뢰성을 갖는 완전 자율주행차로 발전할 것이다.

전체 자동차 중 자율주행차가 90% 수준으로 보급되는 데에는 30~50년은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 변속기와 에어백이 보편화되는데도 각각 50년, 25년이 걸렸다.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과 진화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차량 공유를 위한 서비스인 우버가 급속히 확산된 데는 공유경제라는 그럴듯한 슬로건보다 대량 운송체계가 한계에 이르렀고,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대중교통 수요가 폭증한 덕분이었다.

자율주행차가 본격 보급되려면 기술발전도 중요하지만 자율주행차를 절실하게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도시의 교통 혼잡이 극심해지고, 대중교통으로 감당할 수 없게 도시가 팽창해 교통안전 문제가 심각해져야 한다. 또 자동차 유지비 및 보험료와 운전기사 인건비가 급속히 상승하고, 노령인구 증가로 운전 불능 인구가 크게 늘어나야만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자율주행차가 급속히 보급될 것이다. 우버가 자율주행차 기술개발에 매달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용 자율주행차는 항상 자율주행을 하는 것보다 음주운전, 졸음운전 시 이를 자동으로 탐지해 자율주행 모드로 전환되게 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다. 또는 여객기의 오토파일럿이나 자동차의 크루즈 컨트롤처럼 복잡한 도심에서는 사람이 운전하고 장거리 이동을 하는 고속도로, 고속도로의 전용 차로, 시골길 등에서만 자율주행모드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일 것이라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규제다. 1800년대 말 자동차를 처음 운행한 영국은 잦은 사고로 인해 자동차는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고 붉은 기를 든 안전요원을 뒤따라 가도록 규제했다. 그 사이에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미국 등 후발국으로 넘어갔다.

자율주행차가 도로에서 달리기까지는 극심한 사회적 저항과 규제가 있을 것이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회적 역량이 필요하다. 원격의료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탑승자와 보행자, 주변 일반 차량 운전자의 생명을 위험하게 할 수 있고, 많은 직업 운전자의 생계를 위태롭게 할 자율주행차는 과연 실용화가 가능할까? 가장 큰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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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억 교수는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교육원장이며 대한산업공학회 회장입니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신성장동력기획단 위원, KAIST 정보시스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자동화, 정보기술 응용, 산업지능 분야 전문가이며, 일방전달방식강의에서 탈피하는 수업방식 혁신을 통한 교육혁신, 교육의 기회 균등 실현을 위한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 확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KAIST,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