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도 벌써 절반이나 지나가고 슬슬 신학기 준비 시즌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PC 시장은 예년과 달리 다소 주춤한 분위기다. 아예 조립 PC 시장은 숨을 죽인 상태다. 고성능 조립 PC의 주요 고객층인 ‘게이머’는 물론 PC 제조업체들까지 엔비디아의 차세대 게이밍 그래픽카드(GPU) 등장 소식을 예의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8월 21일(이하 현지시각)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의 게임쇼인 ‘게임스컴’을 하루 앞둔 20일 독일 현지에서 자사의 차세대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선보일 전망이다. 2016년 5월 파스칼(Pascal) 아키텍처 기반 ‘지포스 10’시리즈를 처음 발표한 지 무려 2년 3개월이 지나서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그래픽카드를 8월 20일 공개할 전망이다. / IT조선 DB
엔비디아가 차세대 그래픽카드를 8월 20일 공개할 전망이다. / IT조선 DB
올해 들어 엔비디아가 차세대 그래픽카드를 출시할 것이라는 소문은 무성했다. 파스칼 아키텍처 기반의 지포스 10시리즈가 처음 등장한지 2년이 다 되는 시점이라 소비자들, 특히 그래픽카드 성능 의존도가 높은 게이머들의 관심도 그만큼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기대치와 달리 3월 열린 GTC(GPU Technology Conference)와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6월 열린 컴퓨텍스 등 PC 업계 주요 행사에서도 엔비디아는 차세대 게이밍 그래픽카를 언급하지 않아 제품 출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무성한 추측만 남겼다.

다만, 7월 말로 접어들면서 차세대 그래픽카드 출시 소식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 데다, 엔비디아가 이번 게임스컴을 앞두고 새로운 제품을 발표할 것이라는 티저 영상을 13일 공개하면서 소비자들은 대기수요로 돌아섰고 PC 시장은 다시 숨을 죽인 상태다.

8월 14일에는 엔비디아가 ‘튜링(Turing)’ 아키텍처 기반 전문가용 그래픽카드 ‘쿼드로 RTX’ 시리즈를 먼저 발표하면서 20일 게이밍용 그래픽카드 출시도 거의 확정된 분위기다. 엔비디아의 전문가용 쿼드로 시리즈와 일반용 지포스 시리즈는 같은 아키텍처를 사용하면서 일부 스펙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키텍처 코드명은 오늘날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에서 따왔다.

엔비디아는 이번 튜링 아키텍처의 가장 큰 차이점은 RT 코어라고 불리는 레이 트레이싱(Ray Tracing) 전용 프로세서를 탑재함으로써 물리적 광원 효과를 더욱 빠르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높은 연산성능이 요구됐던 사실적인 광원 처리를 전용 프로세서로 독립적으로 처리해 GPU의 부담을 줄였다는 것. 즉 화질은 더욱 개선하면서 전체적인 성능은 더욱 향상됐다는 의미다. 다만 레이 트레이싱 전용 프로세서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애플리케이션 역시 이를 지원해야 하는 만큼, 현재의 콘텐츠에서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능 향상이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엔비디아의 새로운 게이밍 그래픽카드 명칭은 2000번대 이름이 붙는 ‘지포스 20’시리즈가 될 전망이다. 처음에는 10시리즈의 뒤를 이은 ‘11시리즈’가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엔비디아가 유럽에 상표를 등록하고, 티저 영상에서도 이름을 언급하면서 ‘20시리즈’로 거의 결정된 것으로 확인된다. 중간 이름도 기존의 ‘GTX’에서 레이 트레이싱 성능을 의미하는 ‘RTX’로 바뀔 전망이다.

새로운 지포스 그래픽카드가 튜링 아키텍처를 채택한 것 외에 구체적인 하드웨어 사양과 구성, 가격 등은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일부 해외 유명 하드웨어 매체에 테스트용 샘플이 제공됐다는 소문은 있지만, 엔비디아가 유례없는 입단속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흘러나오는 정보도 매우 적다.

그나마 알려진 것 중 하나가 20일 발표하는 하이엔드급 모델인 ‘RTX 2080’ 및 ‘2070’(가칭)에 삼성과 하이닉스의 최신 GDDR6 메모리가 탑재된다는 정도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게이밍 그래픽카드 티저 영상 일부. / 엔비디아 유튜브 갈무리
엔비디아의 차세대 게이밍 그래픽카드 티저 영상 일부. / 엔비디아 유튜브 갈무리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차세대 그래픽카드를 일찌감치 만들어놓고도 출시를 차일피일 미룬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가상화폐 열풍으로 인해 ‘채굴용’ 그래픽카드의 품귀 및 가격 폭등 현상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생산량을 대폭 늘린 GPU가 엄청난 재고로 돌아오면서 신제품 출시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

엔비디아가 차세대 그래픽카드 출시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PC 업계도 덩달아 어려움에 봉착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고성능 게이밍 PC’의 신제품 출시 사이클이 흐트러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빠졌다. 실제로 PC 관련 최대 행사인 ‘컴퓨텍스 2018’에서도 주요 PC 제조사들은 지난해 모델로 전시 부스를 꾸리는 등 거의 개점휴업 상태였다.

게이밍 PC에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 세계 80% 이상, 국내의 경우 9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로 ‘게임용 그래픽카드=엔비디아 지포스’라는 인식이 굳어진 상태다. 게이밍 PC 라이프 사이클도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의 라인업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오는 20일에 엔비디아가 ‘정상적’으로 차세대 그래픽카드를 발표하면 성능이나 가격 여부 등을 떠나서 그동안 대기 중이던 제조사들도 관련 신제품을 대거 쏟아낼 전망이다. 물론, 지난해부터 신제품만 마냥 기다려온 소비자와 게이머들도 슬슬 닫힌 지갑을 열 전망이다. 정체된 PC 시장에도 숨통이 트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