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이어 국가 주도의 암호화폐(가상화폐) 발행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태국 중앙은행은 가상화폐 발행을 위한 개념 증명에 들어가는 등 각국 정부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통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텔레그래프는 8월 30일(이하 현지시각) 인도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도 화폐 루피와 연동되는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entral bank digital currency∙CBDC)’ 발행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중앙). / 모디 총리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중앙). / 모디 총리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인도 준비은행(RBI)은 8월 29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의 바람직하고 실행 가능한 디지털 통화 발행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부처 간 협동 부서가 구성됐다"고 말했다. 인도 준비은행은 CBDC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할 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다만, 인도 준비은행은 지급 및 결제 솔루션에 블록체인 기술인 분산 원장 기술(DLT)을 활용할 경우 "앞으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이 보장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인도 준비은행의 이같은 움직임은 간편 결제 서비스 등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화폐와 동전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비용을 줄이려는 조치로도 보인다. 인도 현지 매체 이코노믹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준비은행은 2018년도 화폐 발행 예산으로 9000만달러(1001억7000만원)를 책정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6년 하반기부터 디지털 경제를 강화하면서 페이티엠(PayTM) 등 전자결제업체 역시 급성장했다. 구글도 인도 전자결제 시장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2017년 인도에서 지불 결제 서비스 '테즈(Tez)' 앱을 출시했다. 이 앱은 최근 '구글 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크레디스위스에 따르면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 지역의 전자 결제 서비스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현재의 5배 규모인 1조달러(1110조8000억원)가 될 전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 정부가 민간의 가상화폐 발행과 거래를 제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 준비은행은 "가상화폐 교환은 자금 세탁 및 세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코인텔레그래프는 "인도 준비은행이 7월부터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한 이후, 인도 현지 가상화폐 거래소는 사업 초점을 P2P 거래로 옮기는 등 새로운 수익 모델 찾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 불붙는 국가 단위 가상화폐 발행

인도 정부에 앞서 베네수엘라와 이란은 미국의 경제 제재 여파를 돌파하기 위해 가상화폐 발행을 택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의 가상화폐 '페트로(Petro)'를 발행했다. 미국이 제재를 예고하자, 베네수엘라 경제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볼리바르화 가치는 폭락했다. 2월 기준 1볼리마르는 0.00004달러 수준이었으나, 미국 정부가 자국 금융이관과 베네수엘라의 거래를 금지하면서 베네수엘라는 달러를 확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월 21일 페트로 발행을 공식화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페트로 사전 판매가 시작된 지 20시간 만에 7억3500만달러(8151억8850만 원) 어치를 벌었다고 발표했다.

국가 주도로 가상화폐 ‘페트로’를 발행할 것이라고 2월 21일(현지시각) 발표하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중간). / 트위터 갈무리
국가 주도로 가상화폐 ‘페트로’를 발행할 것이라고 2월 21일(현지시각) 발표하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중간). / 트위터 갈무리
이란 정부 역시 미국 경제 제재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상화폐 발행을 준비 중이다. 이란 통신사 베나(Ibena)는 8월 29일 이란 중앙은행이 국가 단위의 암호화폐 발행에 대한 세부 사항을 공개했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가 발행할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반으로 운영되나, 일반인이 사적으로 암호화폐를 채굴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이베나는 "이란중앙은행은 국가 단위의 암호화폐 시스템에 대한 테스트를 거쳐 이란 은행과 일반 회사가 사용할 수 있는지 검토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가상화폐 페트로 발행이 금융제재를 위반한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미국 정부는 2017년 자국 은행과 투자자가 베네수엘라에서 새로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했다. 미국은 페트로 역시 새로운 형태의 채권이라는 입장이다. 여기다 베네수엘라 야당 역시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은 페트로 발행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로이터는 8월 30일 지난 4개월 동안 가상화폐와 유전(석유 생산 지역) 전문가 12명을 취재하고 페트로의 디지털 거래 기록을 샅샅이 뒤진 결과, 베네수엘라 정부가 발행했다는 페트로의 정체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