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electrification)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100년 넘게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지목하고 있는 탓이다. 가장 규제하기 좋은 대기오염 요소가 자동차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자동차는 배출가스 저감이라는 목표 아래 매년 높은 기술력을 담아내고 있다.

각국의 자동차 배출가스를 규제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 중에는 평균 배출가스량을 맞추라는 것이 있다. 일정 수준의 배출가스량을 정해놓고, 판매 중인 모든 제품의 평균값을 구해 만족하면 ‘통과’, 아니면 ‘판매금지’ 혹은 ‘패널티’를 물리는 것이다. 슈퍼카가 전동화 바람을 탄 것은 이 탓이 크다. 이들은 전통적인 인기모델의 판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기차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다. 평균값을 크게 낮춰줄 수 있어서다.

포르쉐는 전동화에 가장 앞서는 스포츠카 브랜드다. / 포르쉐 제공
포르쉐는 전동화에 가장 앞서는 스포츠카 브랜드다. / 포르쉐 제공
포르쉐의 최근 전동화도 그런 흐름으로 이해됐다. 어쩔 수 없이 전기동력을 끌어들여와야 하는 ‘울며 겨자먹기’식이라는 오해다. 그런데 수많은 자동차 업체 중에서도 전동화를 가장 오래전부터 추구해 온 기업은 포르쉐였다. 포르쉐가 늘 강조하는 철학인 ‘스포츠카의 일상화’에 전기동력이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포르쉐 전동화 모델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차는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다. 2세대 하이브리드 버전이 지난 8월 국내 출시됐다. 혹자는 이를 두고 "포르쉐에 전기모터라니!"라고 불만을 내보이기도 하지만, 이 차도 결국에는 포르쉐일 뿐이다. 과연 잘 달리는 스포츠카의 전동화는 단순히 탄소배출의 균형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전기동력의 성능과 효율의 양립에 주효하기 때문인 것인가. 직접 확인을 위해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으로 향했다.

포르쉐 로드 투 E-퍼포먼스 행사가 열린 인제스피디움. / 포르쉐 제공
포르쉐 로드 투 E-퍼포먼스 행사가 열린 인제스피디움. / 포르쉐 제공
국내 출시된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는 2세대 파나메라의 전동화 모델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포르쉐 디자인의 근간이 되는 전형적인 911 디자인이다. 파나메라를 상징하는 4개의 LED 램프가 존재감을 내고, 하이브리드 특유의 연두색이 전동화 모델의 매력을 살린다.

품은 넉넉하다. 휠베이스가 3m에 가까울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전반적인 비율도 여유가 있다. 엉덩이가 다소 뚱뚱해 보인다는 사람도 있으나, 나름 어여쁘다.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속도를 올리면 나타나는 스포일러는 첨단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포르쉐의 실내는 치밀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스포츠카의 정체성을 공격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편안함까지 담고 있다. 장거리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그란투리스모 장르에 최적화된 형태가 바로 파나메라다.

전동화 모델임을 알리는 요소도 곳곳에 들어갔다. 계기판에 모터와 충전 상태를 알리는 표시등이 들어가 있고, 센터페시어 모니터에는 에너지 흐름도를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놨다. 스티어링휠의 주행모드 선택버튼 역시 전동화 모델만의 독특함이 묻어 있다.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다. 외부 충전으로 배터리를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2.0리터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은 330마력을 내고, 136마력의 전기모터를 결합했다. 시스템 총 출력은 462마력에 이른다. 최대토크는 71.4㎏·m다. 이 강력한 성능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6초에 끊는다. 참고로 베이스 모델인 4S보다 0.2초 늦는데, 이는 PHEV 동력계 장착으로 인한 무게 부담의 증가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모터 특유의 토크는 이 큰 몸집을 움직이는데 아무런 허덕임이 없다.

포르쉐 로드 투 E-퍼포먼스 행사가 열린 인제스피디움. / 포르쉐 제공
포르쉐 로드 투 E-퍼포먼스 행사가 열린 인제스피디움. / 포르쉐 제공
몇 개의 주행모드를 갖추고 있다. 먼저 E-파워는 전기모터만으로 33㎞쯤 달릴 수 있는 전기전용 주행모드다. 큰 차체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이질감이 있다. 순수 전기차의 영역에서는 다소 짧은 주행거리 일 수 있으나, 파나메라의 주요 사용자의 하루 평균 거리를 고려했을 때, 이 정도 주행거리는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전기로만 다닐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가속페달을 더 눌러 밟으면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주 듣기 좋은 엔진음이 귀를 때린다.

전기동력을 활용하는 주행모드는 상당히 세분화돼 있다. 하이브리드 모드의 경우 하이브리드 오토, E-홀드, E-차지 등 한번의 시승으로는 외우기도 어렵다. 전기모터와 배터리, 그리고 엔진의 역할, 동력 부담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내연기관에 전기모터가 힘을 더하는 것에서 어떤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엔진과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상적이다.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의 엔진. / 포르쉐 제공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의 엔진. / 포르쉐 제공
차체 무게는 기반 모델인 4S보다 200㎏ 가량 무겁다. 따라서 동력계가 완전히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약간 굼뜨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저속에서는 전기모터 특유의 순발력이 차를 밀어낸다. 그리고 중속 이후에는 엔진과 전기모터가 동력을 더하고 빼며 풍부한 속도감을 보여준다. 되려 고배기량 스포츠카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강력한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경량, 고강성의 MSB 플랫폼과 리어 스티어링 섀시 보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트렁크 아래에 배터리를 넣어 무게 배분을 최적화한 덕분에 안정적인 코너일 성능을 보여준다. 무게 중심이 낮아 조금 더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경쾌한 움직임은 없으나, 힘이 부족하지 않다. 원하는 만큼 달리고, 돌고, 선다. 스릴이 부족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전기모터를 달아도 이 차는 포르쉐 그 자체다.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의 실내. / 포르쉐 제공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의 실내. / 포르쉐 제공
포르쉐 같이 하이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회사가 전동화를 선택할 때는 기존의 가치를 최대한 흐트러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전통적인 소비자가 지속가능한 열광을 보낼 수 있다. 포르쉐는 기꺼이 전기동력까지도 그들의 바이러스에 주입시키길 꺼려하지 않았다. 흔히 포르쉐의 신차가 나올 때마다 외계인을 고문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파나메라 4 E 하이브리드 역시 외계인의 고등기술을 훔쳐온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사게 한다. 그 실력에 의심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