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없다."

최근 몇 년간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되면 어김없이 미디어와 소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애플에만 국한되는 얘기도 아니다. 이제는 어느 스마트폰 제조사가 최초 운운하며 신제품을 내놔도 고객 반응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아이폰을 공개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아이폰을 공개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사용자와 휴대폰의 접점(인터페이스)이 버튼에서 터치로 바뀐 지금의 폼팩터가 자리잡은 후 스마트폰의 하드웨어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제조사는 늘 더 커진 디스플레이, 향상된 성능, 높아진 편의성 등을 강조한다. 손에 쥘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스마트폰에서 외형상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기란 쉽지 않다. 스마트폰 사양은 날로 상향평준화되고, 사용자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점점 길어진다. 그동안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스마트폰 시장은 어느새 정체기를 맞았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접을 수 있는 ‘폴더블폰'이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러한 배경과 궤를 같이 한다. 휴대폰을 접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혁신이었는지는 이미 1996년 나온 모토로라의 폴더폰 ‘스타택'이 증명한 바 있다. 이후 휴대폰은 덩치를 얼마나 더 줄일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작아졌다. 더 작아지기 힘들 정도로 작아진 휴대폰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사용자가 보고, 보여주고, 터치하는 스마트폰은 디스플레이의 역할이 날로 커지면서 다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휴대폰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버리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게 태블릿이다. 스마트폰이 한창 커질 당시에는 폰과 태블릿의 합성어인 ‘패블릿'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물론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역할 자체가 다르다.

애플이 아이패드를 처음 내놨을 당시 크기만 키운 아이폰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아이패드는 이제 당당히 컴퓨터의 영역을 넘본다. 큰 것을 작게 만드는 혁신에는 많은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환상이 있기 마련이다. 반면,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혁신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당하기 일쑤다.

삼성전자가 이르면 11월 공개할 예정으로 알려진 폴더블폰은 이름 그대로 ‘접는다'는 행위만 놓고 보면 큰 것을 작게 만드는 혁신이라는 느낌을 준다. 태블릿을 접어 스마트폰 크기로 만드는 예를 생각해보자. 16대 9 비율의 9인치 디스플레이를 반으로 접으면 9대 8 비율의 5.9인치 크기가 된다. 두께는 두 배가 되겠지만, 일단 크기가 절반이 되면서 한 손에 쥘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과거 스타택이 보여준 혁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폴더블폰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으레 ‘스마트폰을 굳이 왜 접어야 하나'와 같은 의문 섞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엄밀히 이 질문은 ‘태블릿을 굳이 왜 접어야 하나'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폴더블폰을 ‘펼친다'는 관점에서 놓고 보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접은 상태의 5.9인치 스마트폰으로 전화 통화나 문자메시지 등 휴대폰 본연의 일상적 기능을 수행하고, 업무나 영상 감상, 게임 등 집중해야 할 때 9인치 디스플레이가 펼쳐진다면 기존 스마트폰과는 확연히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혁신이다.

이것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폴더블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접은 상태에서의 그립감이나 조작감이 현재 스마트폰과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이제 질문은 ‘스마트폰을 굳이 왜 펼쳐야 하나'로 바뀌고, 삼성전자가 이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다만, 관건은 어떤 상태(접거나 펼친)에서 무엇을 할지 사용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일관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제공할 수 있는지다. ‘OO모드' 식으로 어떤 기능은 접었을 때만, 어떤 기능은 펼쳤을 때만 쓸 수 있다면 폴더블폰의 혁신은 미완의 대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국, 하드웨어 혁신의 마침표는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직접 설계하는 애플과 달리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의존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 커스터마이징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 사장은 최근 막 내린 유럽 가전전시회 ‘IFA 2018’에서 폴더블폰과 관련해 "폰이 접힌 상태에서 모든 기능을 다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만약 검색하거나 무엇을 봐야할 때는 폰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펼쳐진 상태에서 태블릿과 다를 게 없다면 소비자가 폴더블폰을 왜 사겠는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방점은 왜 접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왜 펼쳐야 하는지에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