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성수기를 맞은 PC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부 핵심 부품의 공급 부족과 그로 인한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부문은 CPU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텔 8세대 프로세서의 주력 제품군이 품귀현상과 그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조립 PC의 장점인 ‘가격 대비 성능’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텔 8세대 코어 i7-8700과 8700K, 코어 i5-8600과 8600K 등의 인기 제품은 9월로 접어들면서 최대 10만원 이상 가격이 상승했다. 7월 기준 33만원대였던 i7-8700의 가격이 40만원대, 23만원대였던 i5-8600이 36만원대로 껑충 뛰었다. 그나마 구매를 하더라도 재고가 없어 거래가 취소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조립 PC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주력 CPU 가격이 2주 사이에 최대 10만원 이상 급등했다. /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 갈무리
조립 PC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주력 CPU 가격이 2주 사이에 최대 10만원 이상 급등했다. /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 갈무리
불똥은 경쟁사인 AMD로도 튀었다. 인텔의 주력 CPU 가격이 급등하며 AMD CPU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수요가 늘어나자 그동안 해외보다도 낮은 가격대를 유지하던 AMD 2세대 라이젠의 가격이 9월 둘째 주로 접어들면서 덩달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인텔 CPU 대안으로 많이 찾는 AMD 2세대 ‘라이젠 7 2700X’와 ‘라이젠 5 2600X’도 9월 10일 기준으로 전 주 대비 약 3만원에서 5만원 가량 가격이 올랐다.

CPU와 함께 메인보드 역시 인기 있는 제품들을 중심으로 품귀 현상이 발생하면서 가격이 조금씩 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인텔과 AMD밖에 선택지가 없는 CPU와 달리, 다양한 브랜드에서 선택이 가능한 시장인 만큼 CPU보다 가격 상승 속도는 느린 편이다.

인텔의 CPU와 메인보드 공급 부족은 차세대 10㎚ 공정 도입 지연으로 인한 기존 14㎚ 공정 라인의 과부하가 원인으로 풀이된다.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도 재고 부족 여파로 인해 인텔 CPU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지포스 RTX 20 시리즈도 예상보다 비싸게 등장하면서 PC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 엔비디아 트위치 방송 갈무리
엔비디아의 차세대 지포스 RTX 20 시리즈도 예상보다 비싸게 등장하면서 PC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 엔비디아 트위치 방송 갈무리
조립 PC를 구성하는 또 다른 핵심 부품인 그래픽카드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암호화폐 시장의 위축으로 ‘채굴’에 투입되던 그래픽카드 물량이 일반 시장에 풀리면서 가격은 안정화됐지만, 기대주였던 엔비디아의 차세대 ‘튜링’ 아키텍처 기반 지포스 RTX 20시리즈가 예상보다 비싼 가격으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9월 20일경 정식 발매를 앞두고 예약 판매 중인 지포스 RTX 20시리즈는 최상급 2080 Ti가 160만원~180만원대, 그다음 등급인 2080이 120만원~140만원대에 달한다. 기존 세대 같은 등급 제품 대비 30만원에서 50만원 가량 가격이 상승하면서 고성능 그래픽카드 하나의 가격이 중상급 PC 한 대 가격에 육박하게 됐다.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하이엔드 PC 사용자들도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할 정도다.

그래픽카드 신제품이 예상보다 비싸게 나오면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기존 세대 제품들의 전폭적인 가격 인하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존 세대 하이엔드 제품을 가격 인하로 저렴하게 사려던 ‘실속파 소비자’들도 구매 계획을 보류하는 추세다.

CPU와 메인보드, 그래픽카드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일부 하드웨어 커뮤니티에서는 "전에는 150만원으로 충분하던 게이밍 PC를 이제 200만원, 300만원에 사야 할지도 모른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용산의 일부 중간 유통상들이 가격 상승으로 인한 폭리를 취하려 한다는 루머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완제품 PC 시장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핵심 부품 물량을 대량으로 우선 구매하는 완제품 PC 제조사의 특성상 당장은 버틸 수 있지만, 보유하고 있는 부품 재고도 슬슬 바닥이 보인다는 것이다.

국내 한 PC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 설비는 하루아침에 생산량을 늘릴 수 없는 만큼 현재의 공급 부족 현상은 장기화될 분위기다"며 "PC를 구매하려면 좀 더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10월 이후를 노리거나, 아직 가격 상승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노트북이나 완제품 PC를 노리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