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CPU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PC 제조사들이 신제품 출시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글로벌 PC 제조사에 비해 구매력이 낮은 국내 업체는 CPU 수급이 더욱 녹록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제조사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국내 PC 제조사들이 인텔 CPU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품 생산 및 신제품 개발에 차질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텔의 8세대 코어 i7-8700K 프로세서. / IT조선 DB
국내 PC 제조사들이 인텔 CPU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품 생산 및 신제품 개발에 차질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텔의 8세대 코어 i7-8700K 프로세서. / IT조선 DB
인텔의 임시 CEO 겸 CFO인 밥 스완(Bob Swan)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주요 고객사 및 파트너사에 보낸 공개편지를 통해 최근 확대되고 있는 자사의 CPU 부족 사태의 원인이 자사의 예상을 훨씬 웃돌 정도로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발생한 품귀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클라우드 및 데이터센터용 서버 수요뿐 아니라 올해 2분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PC 업그레이드 수요가 폭증한 것이 품귀 현상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현재 8세대 프로세서 제품군이 기존 세대 제품군과 비교해 코어 수가 2개씩 늘어나면서 근래들어 가장 높은 성능 향상폭(평균 약 30%)을 달성, 소비자의 잠재적이었던 PC 교체 및 업그레이드 수요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스완 임시 CEO는 주력 제품의 생산량 증대를 위해 오레곤, 애리조나, 아일랜드 및 이스라엘 등에 위치한 자사의 14나노미터(㎚) 생산 설비에 기존 예산과는 별도로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규모의 추가 예산을 투입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반도체 제조산업의 특성상 단기간 내에 CPU 공급량이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최상위 고객사가 포진한 데이터센터 및 서버 시장에 프로세서 물량을 먼저 공급하는 한편, 일반 소비자용 프로세서 제품군은 HP와 델, 레노버, 애플처럼 구매력에서 앞서는 글로벌 PC 제조사들에 먼저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PC 제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약한 대만계 제조사와 내수시장에 의지하는 국내 업체의 경우는 CPU 수급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글로벌 PC 제조사 관계자는 "최근 삼성과 LG 등 국내 PC 제조사들은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CPU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글로벌 제조사들의 경우도 평소만큼 넉넉한 수준은 아니지만, 신제품 발표와 제품 출시 계획에는 큰 지장이 없는 상황이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2018년 신제품인 ‘삼성 노트북 펜’(왼쪽)과 LG 2018년형 ‘그램’. / IT조선 DB
2018년 신제품인 ‘삼성 노트북 펜’(왼쪽)과 LG 2018년형 ‘그램’. / IT조선 DB
일반적으로 원하는 시기에 제품을 출시하려면 최소한 2개월~3개월 전에는 필요한 부품을 확보해야 한다. PC 판매 성수기인 겨울 시장을 타깃하려면 지금부터 신제품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글로벌 제조사들은 기능이나 용도에 따른 다양한 라인업에 AMD 프로세서를 탑재한 제품을 선보이는 등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라인업이 단조로운 국내 제조사들은 지금과 같은 CPU 품귀 상황에서 꺼내 들 카드조차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국내 PC 업계 관계자는 "데스크톱 조립 PC의 경우 AMD ‘라이젠’이라는 대안이 있어 인텔 CPU 부족으로 인한 충격이 상대적으로 분산되는 분위기다"며 "브랜드 인지도 및 소비자 인지도 등으로 인해 인텔 외 다른 제품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어떻게든 인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한편 업계 전문가들은 적어도 내년인 2019년에 들어서야 인텔 CPU의 품귀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나마 10월부터 물량 공급이 소량이나마 재개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러나 공급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시장 규모나 발주량 경쟁에서 밀린 국내 대기업들이 원하는 만큼의 물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