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보 제트기’, ‘하늘의 여왕’이란 애칭으로 세계 항공업계를 주름 잡은 보잉747 항공기가 세상에 공개된 지 50주년을 맞았다.

1968년 9월 30일 시애틀에서 첫선을 보인 보잉747 항공기는 1969년 2월 처녀 비행 이후 1970년 1월 22일 팬암 항공의 뉴욕발 런던행을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보잉747 항공기는 세계 항공시장을 송두리째 바꿨다. 항공 산업뿐 아니라 엔진 산업, 연관 시설 개발, 관광 산업 등 관련 산업군의 비약적 발전을 이뤄내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국내 항공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은 1973년 첫 번째 보잉747 항공기를 도입했다. 그 해 대한항공이 보잉747 항공기에 승객을 태우고 태평양을 건넌 후 한국 항공산업도 높이 날았다.

1973년 5월 16일, 보잉 747점보기의 태평양 노선 취항식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조중훈(오른쪽 세번째) 창업주가 정∙재계 인사와 테이프 커팅을 하는 모습. / 대한항공 제공
1973년 5월 16일, 보잉 747점보기의 태평양 노선 취항식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조중훈(오른쪽 세번째) 창업주가 정∙재계 인사와 테이프 커팅을 하는 모습. / 대한항공 제공
◇ 보잉747, 세계 항공산업 도약 시킨 ‘게임 체인저’

1960년대 베트남전을 치르던 미국 공군은 대형 화물을 싣고 비행할 수 있는 크고 성능이 뛰어난 항공기가 필요했다. 외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일반 여객 수요도 늘어나는 시점이었다.

이에 팬암 항공은 당시 최신 모델 보잉707 항공기보다 두배 규모의 항공기를 제작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고, 이를 보잉사가 받아들이면서 보잉747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보잉747은 객실 내 통로가 2개가 있는 최초의 ‘와이드바디’ 항공기다. 1968년 첫 탄생 이후 2000년대 중반 에어버스사의 A380 항공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큰 여객기로 명성을 떨쳤다.

2개의 통로와 높은 천장은 탑승객에게 다른 소형기와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함을 제공했다. 항공사에게도 수백명의 승객을 한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최적의 항공기였다.

공항도 보잉747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형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활주로가 재정비됐고, 한꺼번에 이동하는 많은 승객을 위해 터미널, 탑승수속카운터, 수하물 수취대, 라운지, 편의시설 등 시설도 바뀌었다.

기술적 진보도 있었다. 더 커진 항공기를 움직이고 띄우려면 기존 엔진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보잉747 항공기가 움직이고 추진력을 얻기 위한 수준의 엔진이 개발됐다.

많은 승객을 한꺼번에 실을 수 있는 보잉747 항공기로 인해 항공권 가격도 인하됐다. 항공 여행이 일상화되면서 여행산업이 확장되는 효과를 낳았다.

1995년 3월 24일 대한항공이 100번째로 보유하게 된 항공기인 보잉 747-400을 배경으로 관계자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대한항공 제공
1995년 3월 24일 대한항공이 100번째로 보유하게 된 항공기인 보잉 747-400을 배경으로 관계자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대한항공 제공
◇ 변방국의 보잉747 구입…‘미래 내다 본 투자’ 평가

보잉747이 첫 선을 보인 1968년 이후 폭넓은 노선망과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선진 항공사는 이 항공기를 도입해 운영을 시작했다. 당시 항공사의 위상은 보잉747 보유 여부로 판가름되기도 했다.

19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1970년 ‘보잉747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도입 타당성을 검토했다. 이후 보잉사와 보잉747 두대를 7000만달러(790억원)에 구매하는 가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당시 790억원은 천문학적인 비용이었다. 회사 내부에선 끊임없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 조중훈 창업주는 장기적으로 대한항공의 사활이 걸린 선택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72년 9월 5일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보잉747 1번기는 미국 시애틀을 출발해 1973년 5월 2일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2주 후인 1973년 5월 16일 태평양 노선에 정식 투입됐다. 1974년 9월에는 세계 최초로 보잉747 점보기를 화물 노선에 투입하며 항공 화물시장에 첫 걸음을 내딛었다.

보잉747 항공기 도입은 대한항공이 변방국의 신생 항공사라는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많은 항공사는 오일쇼크와 여객 수요 감소로 보잉747 도입·운영을 꺼리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1970년대부터 1980년 초까지 이어진 석유 파동 등 변수에도 꿋꿋이 버텼다. 결국 1980년대말 해외여행자유화가 이뤄지면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는데 보잉747은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

보잉747-8i 항공기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배경으로 이륙하는 모습. / 대한항공 제공
보잉747-8i 항공기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배경으로 이륙하는 모습. / 대한항공 제공
◇ 보잉747의 미래는?…’굿바이’ 아닌 ‘리멤버’

8만7000시간, 1만9000회를 운항한 대한항공의 첫 보잉747 점보기는 누적 승객 600만명과 누적 화물 90만톤을 실어나른 후 1998년 퇴역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대형 항공기의 대표 아이콘을 유지한 보잉747 항공기는 새로운 대형 기종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6년쯤 개발 기간을 거쳐 2011년 2월에 공개된 보잉747-8i는 보잉747 점보기를 잇는 항공기다.

보잉747 항공기의 시대는 점차 저물고 있다. 보잉747-8i는 보잉747 프로젝트의 마지막 버전이다. 대한항공이 2017년 7월 마지막으로 인도받은 후 보잉747-8i는 생산을 멈췄다.

대한항공은 보잉747 여객기 14대와 화물기 11대 등 총 25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비행기는 10년 이상 운항을 지속할 예정이다.

대한항공 한 관계자는 "세계 항공산업을 이끄는 것은 여전히 보잉747 점보기의 후광을 입고 태어난 대형기다"라며 "보잉747은 비약적 혁신 동력으로 항공산업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