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일부 부품의 공급 부족으로 인한 단기적인 가격 상승 문제가 아니다. PC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성능과 사양이 급속히 향상되면서 제조 원가 자체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고사양 ‘게이밍 PC’를 중심으로 고성능 PC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모처럼 PC 시장이 회복될 분위기를 보이지만, 갈수록 인상되는 PC의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부담 또한 가중될 전망이다.

국내서 200만원대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출시된 엔비디아 지포스 RTX 2080 Ti 그래픽카드. / 엔비디아 제공
국내서 200만원대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출시된 엔비디아 지포스 RTX 2080 Ti 그래픽카드. / 엔비디아 제공
지난 수년 동안 IT 업계는 ‘손안의 컴퓨터’라 불리는 스마트폰이 주도해왔다. PC의 발전이 주춤한 사이 인터넷 검색, 온라인 쇼핑, 간단한 오피스 업무, 메일 및 메시지 송수신 등을 처리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PC의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나 게임이 하나의 거대한 문화 및 스포츠 산업으로 커지고, 고사양·고성능을 요구하는 온라인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고성능 게이밍 PC’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PC 시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오늘날 최신 온라인 게임은 더욱 뛰어난 그래픽과 더불어 더욱 높은 하드웨어 사양과 성능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고사양 온라인 게임인 ‘배틀그라운드’의 한 장면. / 최용석 기자
오늘날 최신 온라인 게임은 더욱 뛰어난 그래픽과 더불어 더욱 높은 하드웨어 사양과 성능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고사양 온라인 게임인 ‘배틀그라운드’의 한 장면. / 최용석 기자
게임뿐만이 아니다. 비주얼 분야의 혁신으로 떠오른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및 융합현실(MR) 기술의 도입과 활용, 점차 증가하는 4K급 초고화질 영상콘텐츠의 제작과 공유 등으로 인해 개인용 고성능 시스템에 대한 수요는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PC의 핵심 콘텐츠가 다시금 고사양·고성능을 요구하면서 둔화했던 PC 하드웨어 기술도 다시금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단순히 성능적인 향상은 물론,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추가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PC의 가격 또한 덩달아 상승하기 시작했다.

약 2년 전만 해도 데스크톱 본체 기준으로 150만원 정도의 예산이면 ‘최상급 PC’를 충분히 구성했지만, 2018년 10월 현재는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성능의 PC를 구성하려면 적어도 200만원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PC 원가 상승의 첫째 이유는 다름 아닌 ‘그래픽카드’다. 오늘날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향상됐고, 그러한 그래픽을 표현 및 구현하기 위한 그래픽카드의 성능 역시 세대를 거듭하며 꾸준하게 향상됐다.

문제는 그래픽카드의 핵심인 GPU 성능 발전 방향이 아키텍처 개선으로 인한 처리 효율의 개선보다 하나의 칩에 더 많은 연산 코어를 집어넣어 단순 연산 성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GPU의 성능은 급격하게 향상됐지만, 하이엔드급 GPU 기준으로 코어의 물리적인 크기가 CPU의 4배~5배에 달할 정도로 거대화됐다. 반도체 프로세서는 크기가 커질수록 구조가 복잡해지고, 하나의 웨이퍼로 찍어낼 수 있는 칩의 수가 줄어들면서 수율이 저하된다. 이는 제조원가의 수직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3년 전만 하더라도 단일 GPU 기준 개인용 그래픽카드의 가격은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년 전 ‘지포스 10시리즈’ 시대로 접어들면서 100만원대를 돌파했으며, 실시간 광원 처리, 인공지능 등 각종 신기술을 대거 도입한 최신 ‘지포스 20시리즈’의 경우 200만원을 넘나들 정도로 폭등했다. 과거 PC 풀 세트를 하나 맞출 수 있는 예산으로 그래픽카드 하나밖에 못 사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CPU 역시 코어 수가 늘어나는데 비해 공정 발달이 둔화되면서 제조 원가가 상승하고 있다. / IT조선 DB
CPU 역시 코어 수가 늘어나는데 비해 공정 발달이 둔화되면서 제조 원가가 상승하고 있다. / IT조선 DB
CPU 역시 최근 들어 제조 원가가 다시 상승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4개에 머물러있던 개인용 CPU의 코어 수가 6개, 8개로 늘어나면서 GPU와 마찬가지로 덩치는 커지고 수율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CPU의 코어는 GPU의 단순 연산 유닛과 달리 다양하고 복잡한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범용 프로세서 코어다. 그만큼 코어 하나의 크기도 훨씬 크고 복잡하다.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연산 코어를 내장하는 GPU가 단일 칩 기준으로 더 비싸기는 하지만, 코어 수 증가에 따른 제조 원가 상승 폭은 CPU가 더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수년 동안 개인용 CPU 가격대가 20만원대에서 30만원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최대 코어 수가 4개로 유지됐고, 제조 공정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채산성 향상이 성능 향상으로 인한 가격 인상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조 공정 기술 발전이 둔화하고, 주력 CPU의 코어 수가 1.5배~2배로 늘어난 지금은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인한 가격 인상을 막기 힘든 상황이다. 그나마 인텔과 AMD의 경쟁 구도가 다시 부활하면서 그래픽카드와 같은 일방적인 ‘가격 폭등’까지는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갈수록 가격 상승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물론 그동안 PC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외적인 요인도 많았다.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졌던 암호화폐 채굴 열풍과 그로 인한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 요즘 들어 이슈가 된 인텔 CPU 공급 부족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러한 가격 인상이 공급만 안정화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시적 상황인 데 반해, 제조원가 상승으로 인한 가격 인상은 공급이 늘어난다고 해도 금방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고급형 스마트폰의 가격이 100만원대로 접어든 것처럼 이제 ‘고성능·고사양 PC’의 가격 기준은 2018년을 기준으로 200만원대로 고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