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암호화폐(가상화폐) 투기 과열 현상을 막기 위해 지난 1월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도입했지만, 투자자 보호 장치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인이 암호화폐를 접하는 최접점인 암호화폐 거래소와 관련된 법령이 우선 마련해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트코인 이미지. / 텍사스주 증권위원회 트위터 갈무리
비트코인 이미지. / 텍사스주 증권위원회 트위터 갈무리
한서희 법무법인 유한바른 변호사는 8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암호화폐 유통은 사실상 블록체인 기술과 상관없다"며 "암호화폐 거래 시장을 증권 시장과 비교하면 규제 공백 상태다"라고 꼬집었다.

한 변호사는 "진입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거래소 등록제나 허가제, 최소 자본금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천차만별인 거래소 이용약관에 대한 표준 약관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주식을 사고파는 증권거래소와 달리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사실상 없다. 현재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은 신고제다. 담당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 수수료 4만원만 내고 등록하면 된다. 업종에 제한이 없어 사업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신판매업, 전자상거래업 등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기에 은행처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자기자본금 규정도 없다. 거래소가 해킹을 당하더라도 투자자를 보호할 명확한 피해 구제 방안이 없지만, 누구나 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본금 사정이 열악한 영세 사업자가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에 뛰어든다. 암호화폐 거래 수수료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증권사 수수료(거래액의 0.005%)의 최대 30배인 0.05~0.15%를 거래 수수료로 받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 자체가 엄청난 수익 사업이다"라며 "암호화폐 관련 프로젝트로 수익을 내는 기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수익은 암호화폐 거래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해도 투자자는 손해를 볼지언정, 매매하려는 사람이 몰리면 거래소는 이득이다"라고 지적했다.

거래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역시 거래소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진대제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국내에는 최소한의 자기자본, 보안 심사, 상장 규정 등도 준수하지 않은 수십 개 거래소가 난립 중이다"라며 "자기자본금 20억원 이상, 상장위원회 구성 등 요건을 갖춰야만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암호화폐 거래소를 '가상통화 취급업소'로 규정하고 신고제를 도입하는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