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김포한강신도시는 매일 아침이면 교통전쟁이 펼쳐진다. 늘어나는 인구에 적절한 교통정책이 가미되지 못한 탓이다. 특히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하는 직장인에게 ‘이동의 자유’란 사치에 가깝다. 선택할 수 있는 이동성이 극히 제한돼 있는 까닭이다.

현재 김포한강신도시에서 서울 주요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대부분 버스 아니면 자차를 이용한다. 버스는 서울 합정역이나 당산역, 강남역 등지로 갈 수 있는 광역버스와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종점인 개화역에 시내/시외 버스가 존재한다.

광역버스의 경우 김포한강로-올림픽대로를 거쳐 시간이 절약된다. 이 장점 때문에 사람이 몰린다. 아침 6시30분이면 벌써 설 자리도 없다.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는 최악의 이동 수단이 돼 버린다.

반면 시내버스는 공간에 여유는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개화역까지 버스마다 노선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한시간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9호선 개화역에서 서울 각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추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만약 7시에 집앞에서 개화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탄다면 9시는 돼야 서울 중심으로 올 수 있다.

어느 순간에는 자차 운전자가 부럽다. 출근 소요 시간은 엇비슷해도 불편의 정도가 극히 낮아서다. 또 한편으로는 카풀의 활성화가 안된 게 야속하다. 운전자 혼자 타고 있는 공간을 나눌 수만 있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훨씬 효율적일텐데라는 생각을 매일 아침마다 한다.

카풀은 이동을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으려는 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한다. 즉, 적절한 보상없이 이동성을 내어주는 운전자는 없다. 이해관계를 맞추는 가장 손쉬운 수단은 돈이다. 이동하려는 사람이 이동성 혹은 이동성을 제공하는 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용자가 지불한 돈은 연료비, 관리비 등으로 소비된다. 물론 이동성 제공자의 수익으로도 돌아간다.

하지만 국내법상 이런 행위는 불법에 가깝다. 우리나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일반 승용차로 영업하는 행위, 다시 말해 돈을 버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업계가 카풀을 반대하는 근거다. 예외 규정으로 출퇴근 시간 일정부분 카풀이 허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존재하던 몇 개의 카풀 서비스는 모두 망했거나 사장되는 분위기다. 법령을 근거로 택시업계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 행정가들이 내린 결론이 바로 ‘카풀은 불법’이다. 카풀하고 싶으면 댓가를 빼고, 이웃의 정이 듬뿍 든 커피나 나눠 마시라는 것이다.

최근 쏘카에 인수된 VCNC는 ‘타다’라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선보였다. 유명 승차공유 서비스인 ‘우버’와 유사한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승차정원 11~15인승의 승합차를 택한 것이 특징이다. 승합차를 임차할 경우 운전자 알선은 현행법상 ‘합법’이어서다. ‘타다’는 이용자가 승합차를 ‘호출’하면, ‘기사’와 ‘승합차’를 배정해 서비스한다. 이 서비스의 운전기사는 서비스 업체가 용역업체에서 알선받은 기사여서 근로계약 관계가 아닌 이유로 법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게 VCNC의 설명이다.

역시나 택시업계는 강력히 반발 중이다. 타다의 서비스가 유사택시 영업이기 때문에 당장 중단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 이면에 자신들의 밥그릇 걱정이 상당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쉬운 점은 택시의 반발만큼 택시가 모든 이동성에 대한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택시는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규에 따라 대중교통도 아니다. 그렇다면 택시 역시 모빌리티 서비스라는 큰 범주에 속해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이동성 중 하나일 뿐이다. 택시가 이동성을 대표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김포한강신도시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까지 출근할 사람은 없다. 같은 거리를 버스는 2400원에 이동할 수 있는데, 택시는 2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해서다. 아침 출근시간에는 이동의 목적이 철저하게 ‘이동’ 그 자체에 맞춰져 있고, 이동의 종류나 질은 큰 관계가 없다. 따라서 시민의 이동 선택권은 ‘금액’과 ‘소요시간’에 기준한다. 택시가 시민의 이동 선택지에 들지 못하는 이유다. 때문에 이동의 자유를 반대하는 택시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동의 방법은 시민이 결정할 일이다.

한편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택시업계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권이나 행정기관의 속내가 야속하다. 법 개정이나 개선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인플루언서(영향력이 있는 개인)’로서의 택시가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나 행정은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굳이 거창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이제 이동의 자유와 선택권은 시민에게 온전히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