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 대부분은 하루나 이틀마다 면도기를 쓴다. 깔끔한 인상, 정돈된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다. 좋은 면도기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고 수염만 깔끔하게 깎는다.
면도기의 성능과 위생을 유지하려면 면도날을 정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3~4개 한세트에 수만원쯤인 가격은 부담스럽다.
생활용품 제조사를 거쳐 컨설팅 펌에서 일하던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역시 창업 전 이 고민이 컸다. 좋은 면도기는 가격이 비싸고, 저렴한 면도기는 성능이 떨어진다. 쓸만한 면도기를 찾던 그는 시장에 만연한 왜곡을 발견했다. 수십년째 특정 제조사의 독과점이 이어져왔고, 원가 대비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고품질 면도기와 면도날을 확보해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면 불합리한 현 면도기 시장 독과점 구조를 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아이디어를 현실화해 면도기와 면도날 구독경제(정기적으로 생필품을 받아보는 서비스) 서비스 ‘스퀘어쉐이브’를 창업했다.
김 대표는 2년간 면도날 생산 공장을 수소문하는 한편, 한국 내 소비자 요구와 불만사항 등을 데이터로 만들어 분석했다. 노력의 결과 100년 이상의 면도날 생산 역사와 각종 특허까지 갖춘 현재 파트너를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이 보내온 면도날의 성능은 우수했다. 절삭력과 내구성이 좋은 것은 기본이었고, 한국인 고유의 짧고 성긴 수염을 깎는데 적합했다. 그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이 제품이라면 부드럽게 면도하는 것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면도날 생산 공장을 확보한 김 대표는 사명을 현재의 ‘와이즐리’로 바꾸고 1월 30일 정식 오픈했다. 이어 ‘소비자가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라고 확신하면 수요는 자연스레 늘어난다’는 지론에 맞는 홍보 전략을 세웠다.
김 대표는 기존의 불합리한 가격 구조를 꼬집고자 ‘남성 소비자는 평생 속고 살았다’는 도발적인 광고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광고는 좋아요 5만6000개, 덧글 1만6000개를 모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입소문을 탄 와이즐리는 오픈 후 단 3개월만에 국내 주요 포털 검색 점유율 1위(면도기 관련)에 올랐다. 쇄도하는 주문에 배송 지연 공지를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정해진 날짜마다 자동 결제 및 배송되는 구독경제의 장점은 때로 단점이 된다. 생활 습관에 구독의 편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구독 일정에 생활 습관을 억지로 맞추게 될 우려가 있다.
김 대표가 얻은 교훈은 ‘구독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소비자가 제품을 파악할 시간, 실제로 써 보고 장단점을 느낄 시간, 제품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낄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야 성공적인 구독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와이즐리 서비스 이용자 10명중 8명은 20~30대다. 정작 날 면도기에 익숙한 40대 이상 사용자가 아직 와이즐리를 만나지 못한 셈이다.
김 대표는 "복잡한 온라인 결제나 회원가입 시스템이 구독경제 참여를 방해한다"며 "오프라인 매장을 비롯해 소비자가 제품을 만날 수 있는 채널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또 "다음 아이템으로 ‘그루밍’ 제품군을 준비 중이다"라고 귀뜸했다. 헤어케어, 샴푸나 탈모 관련 상품에도 상당한 가격 거품이 껴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왜곡된 유통 구조에서 불합리한 가격에 판매되는 제품이 여전히 많다"며 "수요와 편의를 강조한 면도날의 성공 사례처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싸고 편리하게 제공하면 자연스레 성공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