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 대부분은 하루나 이틀마다 면도기를 쓴다. 깔끔한 인상, 정돈된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다. 좋은 면도기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고 수염만 깔끔하게 깎는다.

면도기의 성능과 위생을 유지하려면 면도날을 정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3~4개 한세트에 수만원쯤인 가격은 부담스럽다.

생활용품 제조사를 거쳐 컨설팅 펌에서 일하던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역시 창업 전 이 고민이 컸다. 좋은 면도기는 가격이 비싸고, 저렴한 면도기는 성능이 떨어진다. 쓸만한 면도기를 찾던 그는 시장에 만연한 왜곡을 발견했다. 수십년째 특정 제조사의 독과점이 이어져왔고, 원가 대비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고품질 면도기와 면도날을 확보해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면 불합리한 현 면도기 시장 독과점 구조를 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아이디어를 현실화해 면도기와 면도날 구독경제(정기적으로 생필품을 받아보는 서비스) 서비스 ‘스퀘어쉐이브’를 창업했다.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 차주경 기자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 차주경 기자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성능은 좋고 가격은 저렴한 제품’은 하늘에 달린 별과 같이 찾기 어려웠다. 김 대표는 아시아, 유럽 각지를 돌며 면도날 생산 공장을 찾았지만, 이미 시장 독과점 구조가 굳어진 탓에 중소형 생산 공장을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찾은 곳도 면도날 품질이 수준 이하거나 최소 수만개 이상의 대량 수주를 요구하는 곳 뿐이었다.

김 대표는 2년간 면도날 생산 공장을 수소문하는 한편, 한국 내 소비자 요구와 불만사항 등을 데이터로 만들어 분석했다. 노력의 결과 100년 이상의 면도날 생산 역사와 각종 특허까지 갖춘 현재 파트너를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이 보내온 면도날의 성능은 우수했다. 절삭력과 내구성이 좋은 것은 기본이었고, 한국인 고유의 짧고 성긴 수염을 깎는데 적합했다. 그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이 제품이라면 부드럽게 면도하는 것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면도날 생산 공장을 확보한 김 대표는 사명을 현재의 ‘와이즐리’로 바꾸고 1월 30일 정식 오픈했다. 이어 ‘소비자가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라고 확신하면 수요는 자연스레 늘어난다’는 지론에 맞는 홍보 전략을 세웠다.

김 대표는 기존의 불합리한 가격 구조를 꼬집고자 ‘남성 소비자는 평생 속고 살았다’는 도발적인 광고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광고는 좋아요 5만6000개, 덧글 1만6000개를 모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입소문을 탄 와이즐리는 오픈 후 단 3개월만에 국내 주요 포털 검색 점유율 1위(면도기 관련)에 올랐다. 쇄도하는 주문에 배송 지연 공지를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와이즐리 스타터 키트. / 와이즐리 제공
와이즐리 스타터 키트. / 와이즐리 제공
원래 와이즐리는 100% 정기 구독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소비자 피드백을 분석하고 이내 마음을 바꿨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싸게, 그리고 편리하게 공급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정해진 날짜마다 자동 결제 및 배송되는 구독경제의 장점은 때로 단점이 된다. 생활 습관에 구독의 편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구독 일정에 생활 습관을 억지로 맞추게 될 우려가 있다.

김 대표가 얻은 교훈은 ‘구독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소비자가 제품을 파악할 시간, 실제로 써 보고 장단점을 느낄 시간, 제품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낄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야 성공적인 구독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와이즐리 서비스 이용자 10명중 8명은 20~30대다. 정작 날 면도기에 익숙한 40대 이상 사용자가 아직 와이즐리를 만나지 못한 셈이다.

김 대표는 "복잡한 온라인 결제나 회원가입 시스템이 구독경제 참여를 방해한다"며 "오프라인 매장을 비롯해 소비자가 제품을 만날 수 있는 채널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또 "다음 아이템으로 ‘그루밍’ 제품군을 준비 중이다"라고 귀뜸했다. 헤어케어, 샴푸나 탈모 관련 상품에도 상당한 가격 거품이 껴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왜곡된 유통 구조에서 불합리한 가격에 판매되는 제품이 여전히 많다"며 "수요와 편의를 강조한 면도날의 성공 사례처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싸고 편리하게 제공하면 자연스레 성공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