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기술 선도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서둘러 8K TV를 내놨지만, 아직 관련 기술 규격이 채 영글지 않은 탓에 소비자는 최고 2590만원에 달하는 제품을 구매하고도 업그레이드용 추가 장비를 구매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삼성전자 모델이 7일 열린 QLED 8K TV 체험행사에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모델이 7일 열린 QLED 8K TV 체험행사에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8일 영상 업계에 따르면, 8K 영상 재생과 전송을 위한 코덱(압축규격) 등 관련 규격이 내년 상반기부터 제 모습을 갖춰간다. 조만간 삼성전자가 내놓을 8K TV 업그레이드용 추가 장비에 대한 윤곽도 이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 추가 장비가 어떤 형태가 될지, 유상 판매 또는 무상 제공 여부 등에 대해 아직 정해진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다.

◇ 규격 완성에 따른 추가 장비 구매 가능성 매뉴얼에 명시

삼성전자가 최근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QLED 8K TV 매뉴얼을 보면 , 업그레이드용 추가 장비 구매 가능성을 명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향후 규격에 맞춰 업그레이드를 위한 추가 장비 구매 가능성을 매뉴얼에 명시한 부분. / 삼성 QLED 8K TV 매뉴얼 갈무리
삼성전자가 향후 규격에 맞춰 업그레이드를 위한 추가 장비 구매 가능성을 매뉴얼에 명시한 부분. / 삼성 QLED 8K TV 매뉴얼 갈무리
매뉴얼에는 "8K 연결 규격 및 디코딩 규격은 현재의 상용화된 규격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연결 규격 및 방송, 디코딩 규격이 지원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규격에 맞추어 업그레이드하려면 추가 장비를 구매해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언급돼 있다.

삼성전자가 매뉴얼에 이러한 내용을 미리 명시한 이유는 아직 8K 콘텐츠가 많지 않을뿐더러, 8K 영상을 원활하게 재생하기 위한 코덱(압축규격)과 전송 규격(HDMI 2.1)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유튜브는 일찍이 8K 콘텐츠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현재 삼성 QLED 8K TV에서는 코덱 문제로 바로 재생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가 직접 8K 콘텐츠를 구해 USB에 옮겨담은 후 TV에 연결하는 수고를 거쳐야 비로소 8K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송 규격도 8K 영상을 보낼 수는 있지만, 아직은 초당 30장 수준에 그친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 중인 TV는 초당 60장이 기본이고, 이를 120장에서 240장까지 늘려주는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 초당 화면 전환이 빠를수록 영상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반대로 초당 60장 이하로 떨어지면 영상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짐은 물론이고, 어지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디스플레이가 아무리 우수해도 초당 30장으로 전송되는 영상은 품질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서둘러 QLED 8K TV를 출시하면 시장을 선도한다는 이미지를 굳힐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속도전에 치중한 나머지 완벽하지 않은 8K TV를 내놨다는 지적도 빋을 수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 사장은 7일 QLED 8K TV 국내 출시 기념 체험행사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규격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며 "빠르면 내년 초 규격이 완성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QLED 8K TV의 업그레이드용 추가 장비의 윤곽도 규격이 완성되는 때를 맞춰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 최고 2590만원 TV가 미완이라니…유상판매·무상제공 여부도 미정

삼성전자는 8K 콘텐츠 시장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에 대비해 QLED 8K TV에 인공지능(AI) 화질 엔진 ‘퀀텀 프로세서 8K’를 적용해 화질을 개선해주는 ‘업스케일링' 기술을 도입했다.

업스케일링은 저해상도 영상을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서 재생할 때 각 픽셀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소 낭비를 최소화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해상도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이 기술로 저해상도 영상을 8K 영상의 최대 90% 수준으로 바꿔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송 규격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8K 콘텐츠를 보여주려면 결국 하드웨어 차원에서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QLED 8K TV 의 AI 기반 업스케일링 기술을 부각하면서도 매뉴얼에 업그레이드용 추가 장비 구매 가능성을 미리 언급해둔 이유다.

삼성 QLED TV용 원 커넥트 박스. / 삼성전자 제공
삼성 QLED TV용 원 커넥트 박스.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앞서 TV 설치가 용이하도록 다양한 주변기기 기능을 한 데 담아 눈에 잘 띄지 않는 투명 케이블과 연결시킨 ‘원 커넥트 박스'를 선보인 바 있다. QLED 8K TV 업그레이드용 추가 장비도 인테리어를 고려해 비슷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추가 장비 설치에 따르는 배선 발생과 공간 점유 등을 생각하면 아무리 추가 장비 폼팩터를 최소화하더라도 기존 인테리어를 해칠 우려가 농후하다.

삼성전자가 QLED 8K TV 업그레이드용 추가 장비를 유상 판매할 것인지, 무상 제공할 것인지도 향후 관전 포인트다. 85인치 모델 기준 최고 2590만원에 달하는 제품을 구매하고도 뒤늦게야 제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 추가로 지출을 해야 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삼성전자가 국가별로 지원 정책을 달리 가져간다면 이 또한 충분히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업그레이드용 추가 장비에 대해서는 규격이 나오지 않은 만큼 어떤 식으로 나올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내용이 없다"며 "배포 관련 정책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