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식의 밀리터리 프라모델 세계] ㉕디오라마와 인형

  • 유승식 회계사·프라모델 애호가
    입력 2018.11.10 10:27 | 수정 2018.11.10 11:27

    스케일·SF 등 분야를 불문하고 프라모델에 취미를 붙인 사람(특히 덕후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디오라마’라고 할 수 있다.

    모형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이든 전쟁터이든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것이니, 그 물건 자체뿐만 아니라 그 물건이 실제로 사용되는 장면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것이다.

    타미야 카탈로그에 소개된 48분의 1 스케일 디오라마. 요즘은 48분의 1 스케일 기갑차량 모형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비행기 모형과 함께 디오라마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커지고 있다. / 타미야 제공
    예를 들어 지난 회(IT조선 11월3일 6시 ㉔러시아 공군과 수호이 전투기(2편) 기사 참고)에 소개한 수호이 전투기에 흥미를 갖게 되면 수호이 전투기 프라모델을 구입할 것이고, 처음에는 조립만 하다가 색칠도 하게 될 것이고, 그러고 나면 수호이 전투기가 주기된 비행장도 만들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이 비행장에 파일럿이나 지상 요원 같은 인형들을 배치하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디오라마’가 되는 것이다.

    ◇ 디오라마란 무엇인가

    ‘디오라마(Diorama)’란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하나의 장면이나 풍경을 일정한 공간 안에 입체적 구경거리로 구성한 것’(광고사전 인용) 같은 식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냥 밀리터리 프라모델 덕후 관점에서 간단히 설명하면 지면과 건축물 등을 이용한 풍경을 만들고 그 풍경 안에 기갑 차량이나 항공기, 인형 등 프라모델 제품을 놓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SF 모형에서도 디오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꽤 있는데, 도시 등에서 로봇끼리 싸우는 장면이나 로봇 정비소 등을 꾸민 디오라마를 접할 수 있고, 자동차 모형도 레이싱 장면 등을 재현한 디오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정통 디오라마라면 밀리터리 분야라고 할 것이다.

    디오라마는 꼭 전쟁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형으로 표현하면 디오라마가 된다. / 만들자! 초 리얼 디오라마 갈무리
    사실 디오라마의 원조는 유럽의 귀족들이 테이블 위에 인형 등을 올려놓고 역사적인 전투 장면을 재현한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후 1970년대경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프라모델이 대중적인 취미로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디오라마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좋은 디오라마란?

    예전 유럽 귀족들은 테이블 위에 인형들을 올려놓으면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라모델이 대중화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님들을 중심으로 프라모델을 ‘조립식 장난감’으로 치부하는 시각들이 일반화하게 된다. 디오라마 또한 "장난감 탱크"와 "장난감 인형"을 함께 놓고 전쟁놀이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함께 하게 된다.

    1970년대 모노그램 전차키트 팜플렛에 나온 셰퍼드 페인의 디오라마. 예전 모노그램 전차 키트에 있던 팜플렛 사진들은 sheperdpaine.atspace.com에서 볼 수 있다. / 구글 갈무리
    이렇게 사람들이 ‘장난감 놀이’에 불과하다는 시각을 가진 가운데 디오라마가 단순한 장난감 놀이나 손장난이 아닌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이론적 기틀을 세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셰퍼드 페인(Sheperd Paine)’이라는 사람이었다.

    셰퍼드 페인은 1946년생으로서 2015년에 만 70살도 안 된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는데, 1970년대 당시 세계 굴지의 모형 메이커였던 미국의 모노그램(Monogram)사의 32분의 1 스케일 탱크 시리즈 키트 안에 들어있던 A4 사이즈 4페이지 분량의 디오라마 팜플렛의 내용구성을 담당함으로써 모형 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팜플렛은 지금 시각으로 보아도 정말 잘 만든 디오라마와 기법 내용 들을 담고 있어 필자를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모형덕후 지망생들에게 감동과 꿈을 주고 프라모델을 잘 만들기 위한 기법을 가르쳐주게 된다.

    셰퍼드 페인의 유명 저서 ‘How to Build Dioramas’의 표지 사진. 지금도 이 책은 구입할 수 있다. / 클람바크 갈무리
    이어 ‘클람바크’라는 출판사(지금도 ‘파인 스케일 모델러(Fine Scale Modeler)’라는 모형 월간지를 출간 중이다)를 통해 바로 그 유명한 저서인 ‘하우 투 빌드 디오라마즈(How to Build Dioramas)’(지금도 구할 수 있다)를 통해 좋은 디오라마가 갖출 요건과 각종 디오라마 제작 기법을 소개함으로써 모형 업계에서는 일약 선구자이자 저명인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필자도 1986년 당시 모 모형서클에 가입하면서 이 책을 수기로 번역하고 그것을 다시 타자기로 쳐서 회원들에게 배포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별의별 신기한 소재들이 많이 발매되고 있지만, 주변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어렵사리 찾아 디오라마 제작 소재로 써야 했던 그 당시에 이 책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책에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 있지만 핵심적인 포인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디오라마는 스토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 디오라마의 크기가 크든 작든 여기에는 스토리가 담겨있어야 하며, 디오라마를 보는 관객들이 그 디오라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한눈에 깨달으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와 같이 만든다고 하면 결국 디오라마의 주인공은 인형이다. 스토리를 잘 표현하는 포즈를 한 인형 한 개가 그냥 의미 없이 놓여진 인형 30개보다도 더 임팩트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잘 만든 차량과 아주 잘 색칠한 인형 몇 개가 그냥 놓여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냥 잘 만든 차량과 인형일 뿐이지 디오라마로서는 2류나 3류에 불과한 것이다. 그 안에서 뭔가가 벌어지고 있고 그것을 인형의 포즈 등을 통해 잘 표현해야 디오라마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디오라마를 만들려면 어떤 시판 프라모델(차량, 인형)을 구입하여 그것을 디오라마에 등장시키기 위해 머리를 짜내려고 하면 안 된다. 일단 머릿속에 좋은 영감을 떠올리게 되면 그 영감과 스토리에 어울리도록 차량과 인형을 만드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소통의 수단이며, 디오라마가 예술이 되려면 그 안에 스토리를 담아 관객의 흥미를 끌면서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디오라마의 핵심이다.

    ◇ 인형을 잘 만들어야 한다?

    정말 그럴듯하고 좋은 얘기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술적인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일단 인형의 포즈를 만드는 문제는 별도로 친다고 해도, 35분의 1 스케일의 인형이라야 이마부터 턱밑까지 길이가 6mm 정도에 불과한데, 이렇게 작은 인형 얼굴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색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로밀리테어에 경연대회에 출품되었던 48분의 1 스케일 디오라마. / 더 모델링 뉴스 갈무리
    실제로 이처럼 작은 인형을 일반 사람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칠한 작품들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프라모델이라는 취미의 원조 자체가 유럽에서 만들어진 메탈 인형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는 만큼, 특히 유럽지역에서는 각종 경연대회도 있고 대단한 작품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색칠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인형 하나를 색칠하는데 며칠씩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인형 색칠이라는 것이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다.

    독일군 하인켈 폭격기가 수면 위에 불시착한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인형포즈나 색칠, 물 표현 등이 압권이다. / 더 모델링 뉴스 갈무리
    하지만 일반적인 프라모델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그 정도로 인형 색칠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언더파를 밥먹듯이 치는 프로 골프 선수와 속칭 ‘백돌이’라 불리는 실력 없는 주말 골퍼와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프라모델에서는 공인된 프로 선수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런 수준 차이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냥 인형 색칠을 잘하는 몇몇 사람들이 ‘인형 색칠을 제대로 못 하면 디오라마는 만들지도 마라’, ‘제대로 색칠하지 못한 인형은 인형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나오는 바람에 프라모델 차량은 만들어도 인형은 좀처럼 만들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기막히게 색칠한 1/35 스케일 인형의 모습. 베트남전 미군이다. 실제 크기는 54mm 정도이고, 얼굴은 7mm 정도이다. 이런 인형 하나를 색칠하려면 며칠씩은 소요된다. / 대일본회화 디오라마 더 퍼펙션3 서적 갈무리
    집안 한구석에 만들고 색칠해 보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만든 인형을 절대 밖으로 내놓지 않는 풍조가 심한 것이다.

    요즘은 여러 가지 나라, 시대, 복장, 포즈의 인형 세트들이 수백 종이나 나오고 있지만 인형 세트는 팔려도 조립되고 색칠되어 나오는 것은 거의 구경하기가 힘드니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백돌이 주말 골퍼라고 골프장 가면 안 되는 것인가?

    셰퍼드 페인의 책에 나온 인형 색칠과정 그림. 실제로 잘 칠한 인형은 이것 보다도 훨씬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 클람바크 갈무리
    사실 필자도 이 업계에서 나름 알려진 사람이고 모형 만든 지 40년도 넘었지만(단품 기준으로 400점 이상 만든 것 같다) 아직 인형 색칠을 제대로 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필자는 디오라마도 몇 개 만들어 보았고 인형 잘 못 칠한다고 이 취미를 접을 생각도 없다. 그래서 다음 회에서는 21세기 취미로서의 프라모델 또는 디오라마 제작에 대한 필자의 편견을 좀 말씀드려보기로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승식 현직 공인회계사(우덕회계법인)는 군사 무기 및 밀리터리 프라모델 전문가로, '21세기의 주력병기', 'M1A1 에이브람스 주력전차', '독일 공군의 에이스', 'D 데이', '타미야 프라모델 기본가이드' 등 다수의 책을저술하였으며, 과거 군사잡지 '밀리터리 월드' 등을 발간한 경력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유승식씨는 현재 월간 '디펜스타임즈'등 군사잡지에 기사를 기고하고 있으며, 국내 프라모델 관련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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