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통사가 개발한 양자암호통신 장비가 갈곳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별도의 양자암호통신 인증절차를 구축하지 않아 국내외 시장 개척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관렴 용역을 진행한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보인다.

12일 SK텔레콤 한 고위관계자는 "인증 기관인 국가보안기술연구소에서 아직 양자암호통신 기술 실증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관련 장비 납품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가보안기술연구소는 국가 정보보안 연구개발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정부출연연구소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부설기관이다.

경기도 성남 분당 SK텔레콤 사옥에서 연구원이 양자암호 방식 장거리 통신 관련 장비를 테스트하고 있다. / SK텔레콤 제공
경기도 성남 분당 SK텔레콤 사옥에서 연구원이 양자암호 방식 장거리 통신 관련 장비를 테스트하고 있다. / SK텔레콤 제공
양자암호통신은 원자 이하 미립자 세계에서 나타나는 양자현상을 이용한 암호화 기술이다. 제3자가 중간에서 정보를 가로채려는 시도를 할 경우 송·수신자가 이를 알 수 있어 해킹(도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장조사기관 마켓 리서치 미디어에 따르면 글로벌 양자암호통신 시장은 2025년 26조9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창조과학부(現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5년 6월부터 양자암호통신 기술 안정성 관련 실증 기준을 만드는 150억원 규모의 국책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과기정통부는 향후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12월 중 실증 기준을 최종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소관 기관이 인증절차 구축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양자암호통신 실증 기준이 완성되더라도 인증절차 구축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과거 정권에서 시행한 사업이다 보니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관련 부처 및 기관의 시행 의지가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이를 소관하는 곳은 국가보안기술연구소(이하 국보연)다. 과기정통부는 실증 기준 마련 이후 과제에서 손을 뗀다는 입장이지만, 국보연은 과기정통부의 승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과기정통부 한 관계자는 "과기정통부는 양자암호통신 인증절차를 구축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뿐 이후는 소관이 아니다"라며 "인증절차 구축 여부는 국보연이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보연은 양자암호통신 기술 인증절차 구축과 관련, 직접적인 권한이 없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국보연 한 관계자는 "인증절차 구축 작업은 과기정통부 승인이 없는 이상 시행 여부를 얘기하기 어렵다"며 "국보연은 이같은 의사결정을 하는 기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 부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이면서 이통업계는 자칫 국내 양자암호통신 사업이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이통업계 한 관계자는 "관할 부서가 바뀐 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관련 부처의 시행 의지도 미약한 것 같아 답답한 상황이다"며 "글로벌 기업간 양자암호통신 시장 선점 경쟁이 뜨거운데 국내 기업만 멈춰선 상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