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모든 마블 슈퍼히어로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스탠 리(Stan Lee)’가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할리우드리포터 등 미국 매체는 마블 만화 작가이자 편집자였던 스탠 리가 12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시더시나이 병원에서 폐렴 투병 중 사망했다고 전했다.

스탠 리. / 엔가젯 갈무리
스탠 리. / 엔가젯 갈무리
마블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스탠 리는 개봉되는 마블 영화마다 까메오로 출연해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모습을 계속 보여왔기 때문이다.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컴퍼니 대표는 성명서를 통해 "스탠 리는 자신이 만든 슈퍼히어로 캐릭터만큼이나 탁월한 작가였다"며 "스탠 리는 슈퍼히어로 캐릭터에 영감을 불어넣었다"라고 밝혔다.

마블 영화 세계관을 구축한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대표는 "스탠 리는 마블 스튜디오를 유지시킬 수 있는 탁월한 유산을 남겼다"며 "그의 유산과 천재성 카리스마는 수백만 명의 마블 팬들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1922년 뉴욕에서 태어난 스탠 리(본명: 스탠리 마틴 리버·Stanley Martin Lieber)는 지금의 마블 슈퍼히어로의 근간을 만든 원작자이자 1930~1950년 미국 만화 황금기를 이끌었던 출판인이다. 그는 만화가 ‘잭 커비’, ‘스티브 딕코’ 등과 함께 마블 코믹스를 세계적인 만화 콘텐츠 제작사로 끌어올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2018년 올해로 설립 79주년을 맞이한 ‘마블 코믹스’는 1939년 '타임리 코믹스(Timely Comics)'란 이름으로 만화 출판업을 시작했다. 회사 첫 번째 작품인 '마블 코믹스'는 당시 90만부 이상이 판매되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젊은시절 스탠 리. / 위키피디아 갈무리
젊은시절 스탠 리. / 위키피디아 갈무리
타임리 코믹스를 만든 마틴 굿맨(Martin Goodman)은 훗날 '마블의 아버지'로 불릴 자신의 어린 조카 '스탠 리'를 회사로 불러 자신의 조수 일부터 만화 제작 업무까지 맡겼다. 1939년 설립된 타임리 코믹스는 1951년 '아틀라스 코믹스(Atlas Comics)', 1957년 현재의 '마블 코믹스'로 이름을 바꾼다.

1940년대 후반 미국 만화 업계는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슈퍼히어로의 인기 추락을 경험한다. 당시 다수의 현지 만화 출판사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호러・로맨스・SF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쏟아냈다.

이런 상황 속에 슈퍼히어로 만화 인기를 재점화 시킨 작품이 바로 DC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다. 당시 마블의 굿맨은 경쟁사 DC코믹스의 집단 슈퍼히어로 만화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의 성공을 지켜보며 마블만의 슈퍼히어로 만화 제작을 결심한다.

1961년 출간된 ‘판타스틱 포’. / 위키피디아 갈무리
1961년 출간된 ‘판타스틱 포’. / 위키피디아 갈무리
스탠 리는 당시 만화 제작 스트레스로 업계를 떠날 생각이었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라는 아내의 권유로 캡틴 아메리카를 만든 잭 커비와 함께 히트작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를 탄생시킨다.

판타스틱 포는 우수한 지능을 가진 '미스터 판타스틱'과 모습을 감추는 능력을 가진 여성 슈퍼히어로 '인비저블 우먼', 초인적인 힘을 가진 '씽', 화염폭풍 공격이 가능한 '휴먼 토치' 등 4명의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그렸다.

판타스틱 포의 성공으로 만화 제작에 탄력을 받은 스탠 리는 1962년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를, 1963년 '아이언맨', '닥터 스트레인지', '엑스맨'을 제작했다. 1964년에는 그간 연재가 중단됐던 '캡틴 아메리카'를 부활시켰으며, 1968년에는 '실버 서퍼'를 탄생시켰다.

어벤져스' 만화가 탄생한 것은 1963년이다. 당시 스탠 리는 만화가 잭 커비와 함께 어벤져스 만화를 만들었다. 1963년작 어벤져스 초기 멤버는 토르・앤트맨・와스프・헐크・아이언맨 등이다. 마블은 이후 어벤져스 참여 슈퍼히어로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간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마블 코믹스는 위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 마블에서 활동하던 인기 만화가인 잭 커비와 프랭크 밀러 등이 이탈한다. 만화가들이 어렵게 만든 이야기와 세계관이 마블 코믹스에 의해 삭제되는 일이 빈번해지자 작가들이 이에 반발한 것이다.

인기 만화가들의 마블 탈출은 만화 작가가 저작권을 가지게 되는 계기로 이어진다. 과거 미국 만화 업계는 그림과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페이지당 제작비를 받는 식이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는 만화가가 직접 저작권을 소유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마블 코믹스는 사업확장 실패, TV콘텐츠 시장 활성화에 따른 만화 업계 불황, 작가들의 이탈과 독립 등 영향으로 파산 직전까지 내몰리게 된다.

마블이 20세기 폭스 등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에게 캐릭터 사용 판권을 판매한 것도 바로 이때다. '엑스맨'과 '판타스틱 포'의 슈퍼히어로들이 어벤져스 영화에 참여하지 못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1997년 파산한 마블 엔터테인먼트 그룹은 장난감 제조사 토이비즈와 합병한 뒤인 1998년 '마블 엔터프라이즈'라는 새로운 법인을 설립한다. 회사는 2005년 영화 자금 조달을 위해 사명을 '마블 엔터테인먼트'로 변경한다.

2009년 월트디즈니컴퍼니는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42억4000만달러(4조577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마블을 집어삼킨 디즈니는 마블의 영화 부문 자회사 '마블 필름'을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자회사로 편입시켰고, 영화 '엑스맨'을 만든 케빈 파이기 프로듀서를 대표 자리에 앉혔다. 파이기는 2008년작 영화 '아이언맨'부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독자적인 슈퍼히어로 세계관을 만들고, 그 속에 차례차례 마블 슈퍼히어로를 끌어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