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프라모델을 취미로 삼기 시작한 것이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2학년경이니까, 몇 년만 더 지나면 50년이 되어간다. 페인트 가게에서 건축용으로 사용하는 일반 페인트를 사다가 대충 칠하기 시작한 것은 국민학교 3학년 전후였던 것 같다. 모형용 도료가 시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2년 뒤였던 것 같다.
한동안은 붓으로만 색칠했기 때문에 메이커 카탈로그에 나오는 제작 예처럼 색칠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지내다가, 처음으로 에어브러시라는 것을 만져본 것이 정확히 1986년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말에 우연한 기회에 모형 서클에 가입하게 되고, 외국의 모형 잡지라는 것을 보면서 프라모델 제작에 대한 여러 가지 기법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 두 가지 고민
아무리 자기 스스로 즐기는 것이 취미라지만 더 잘해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데, 지금까지도 필자의 머리를 짓누르는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중 후자는 비교적 최근부터 생긴 것이다.
첫 번째는 이 프라모델이라는 것이 실물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디테일도 중요하고, 조립을 깔끔하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잘 만든 작품은 색칠에서 승부가 나는데, 미술을 배웠거나 미술 쪽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색칠에서 금세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전문 서적에 나오는 기막힌 실력의 작가들 작품을 보면 당연히 그만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세밀한 디테일을 직접 만드는 것은 필자도 90% 정도까지는 따라 할 수 있지만, 색칠만큼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필자가 만든 작품도 객관적으로 보면 B+급 내지 A-급은 되지만 그 이상은 절대로 불가능하고, 그것이 한계였다. 물론 미술 쪽에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지도를 받으면 어느 정도는 극복이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이 나이에’, ‘요즘 세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고민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국 자기 눈높이를 낮추고 많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 눈높이를 낮추고 많이 만들자
우선은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것을 보면 필자가 프라모델 취미를 갖고 나서 제대로 된 기법을 갖추기까지 15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요즘은 전문 서적이나 인터넷, 유튜브 등에 엄청 잘 만든 작품들이 널려 있어 처음 프라모델을 배우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일단 눈이 높아지게 된다.
말로만 떠드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완성시키는 것이 프라모델 취미를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작품 수준이 썩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의 필자는 완성도를 좀 낮추고 결과물을 많이 만드는 식으로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 있는 제품을 사용하자
지난 회(IT조선 11월 10일 10시 ㉕디오라마와 인형 기사 참고)에서 디오라마가 예술작품이 되려면 스스로 영감을 떠올리고 그에 맞게 인형이나 소품들을 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맞는 얘기지만 이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작 의욕을 꺾는 언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프라모델이 예술 분야로 인정받는다면 만드는 사람도 어른이 장난감 만든다고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자부심도 느낄 수 있겠지만, 예술적으로 만들 기량도 안되면서 만들 엄두도 안 낸다면 더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디오라마에 사용하는 건물이나 다른 소품들도 마찬가지다. 여러 메이커에서 여러 가지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그냥 그 물건들을 갖고 꾸미면 된다.
지면도 여러 가지 형태의 지면별로 소재가 발매되고 있으므로 그냥 사다가 발라서 지면을 만들면 된다. 여기에 여러 가지 덧칠을 하면서 더 멋지게 만들 수 도 있지만 그냥 바르기만 하고 만족해도 된다.
◇ 인형도 간단히
차량이나 비행기 같은 작품들도 그렇지만 ‘입델러’들이 양산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인형이 아닐까 한다. 지난 회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한국 모형 전문지를 중심으로 인형칠을 제대로 못하면 내놓지도 말라는 식의 풍조를 만든 탓이 크다.
그런데 인형을 색칠하는 데에는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프로급 작가들은 인형 하나 칠하는데 얼굴만도 3일 내외가 걸리고, 인형 한 개 완성하는데 차량 한 개 완성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만일 인형이 10개가 들어가는 디오라마를 만든다고 하면 인형 색칠하는 데에만 한 달이 걸리는 셈이다. 요즘같이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이만큼의 시간을 투자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인형 얼굴은 기본색을 칠한 다음에 얼굴 명암 넣는 데에는 20분 이상 소모하지 않는다. 군복 또한 기본 칠을 하고 파스텔 계열의 소재(웨더링 마스터 같은 이름으로 몇몇 메이커에서 발매 중이다)를 이용해 간단히 명암을 넣으면 전체적으로 한 시간을 넘지 않는 시간에 인형 한 개를 마무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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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식 현직 공인회계사(우덕회계법인)는 군사 무기 및 밀리터리 프라모델 전문가로, '21세기의 주력병기', 'M1A1 에이브람스 주력전차', '독일 공군의 에이스', 'D 데이', '타미야 프라모델 기본가이드' 등 다수의 책을저술하였으며, 과거 군사잡지 '밀리터리 월드' 등을 발간한 경력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유승식씨는 현재 월간 '디펜스타임즈'등 군사잡지에 기사를 기고하고 있으며, 국내 프라모델 관련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