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深圳)이 짝퉁의 도시란 오명을 벗고 글로벌 IT공룡 애플과 구글이 찾는 혁신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선전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 속에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가 집약된 도시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인다.

◇ 인구 3만 어촌도시서 1253만 ‘캘리차이나’로 탈바꿈

한국무역협회 ‘심천(선전) 경제 및 창업환경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선전은 1980년 경제특구 지정 당시 만해도 인구 3만명의 어촌에 불과했다. 인접한 홍콩, 마카오의 자본과 광동성의 값싼 노동력에 기반으로 가공무역을 위한 제조업과, 판매를 위한 물류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발전했다. 2017년 기준 선전의 인구는 1253만명이다.

중국 선전시 위치. / 구글맵스 갈무리
중국 선전시 위치. / 구글맵스 갈무리
1998년 조성된 화창베이는 짝퉁제품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지금은 ‘중국전자제일가’로 불리며 세계 최대 IT상가(용산 전자상가 10배 이상규모)로 자리매김했다.

선전은 현재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에 이어 중국 내 4위 경제 규모를 보유한 도시로 성장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선전의 GDP는 1980~2016년 연평균 22% 성장했으며, 2017년 2조2438억위안(366조원)을 기록해 2019년 홍콩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전은 현재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잠재력을 갖춰 ‘캘리차이나'란 별명을 가졌다. 시제품 제작이나 신기술 연구를 위해 선전에 거점을 마련한 기업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실리콘밸리 엑셀러레이터 핵스(HAX)는 매년 100개의 미국 스타트업을 선정해 선전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시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스타트업부터 IT 공룡까지 선전으로 몰리는 이유, 기업하기 좋은 생태계

스타트업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던 선전에 최근 글로벌 기업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이는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밑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인재의 입국 절차 간소화 등 고급 인재 우대정책을 확대하고, 80만~150만위안(1억3000만~2억4000만원)의 인센티브 지급과 자녀 입학, 배우자 취업 등 다양한 우대 혜택을 제공했다.

또 선전시는 중국 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최저 자본금 제도를 폐지하고, 이후 온라인 사업자 등록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선전에서는 1위안(163원)만 있어도 기업을 설립할 수 있다. 한 달이상 걸리던 창업절차도 간소화됐다.

이 밖에도 중국 정부는 2002년 도시와 산업의 발전을 위해 토지와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해 베이징대, 칭화대, 하얼빈공대의 선전캠퍼스를 유치했다. 유명 외국 대학들도 속속 진출해 활발한 산학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 선전시 전경. / 바이두 이미지 갈무리
중국 선전시 전경. / 바이두 이미지 갈무리
선전에는 500개쯤의 창업보육 센터가 있다. 그중 따공팡은 중국정부가 지정한 하드웨어 지원기관으로, 투자유치와 제품화뿐만 아니라 상장까지 지원한다.

또 선전에서는 중국 특유의 인적 관계 ‘꽌시(關係· 관계나 인맥)' 문화를 따지지않고, 중국 국영기업의 독점이 없다. 오직 실력으로 승부거는 문화를 정착시킨 결과, 선전의 인구 90%는 외지인이다. 즉 선전 경제의 90%를 민간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획기적인 민영기업 재산권 법적 조장조치와 기업설립 절차 간소화도 외지인 유입에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전의 이러한 이점 덕분에 최근 글로벌 기업들도 하나둘씩 선전에 입성하고 있다. 애플은 2016년 선전에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했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첫 독자운영 R&D센터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설립계획 발표당시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는 "선전의 변화에 따라 인재도 바뀌어 애플을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선전의 인재가 10만명에 이른다"며 "이들이 만드는 소프트웨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우수해 이런 기회를 잡기 위해 선전에 연구센터를 세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애플이 끝이 아니다. 2017년 세계 최대 항공사 중 하나인 에어버스는 두번째 기술 혁신센터를 세울 장소로 선전을 택했다. 최근은 구글까지 합세했다. 구글은 2018년 초 선전에 하드웨어 개발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을 사무실을 개소했다.

◇ 선전과 달리 한국에서 창업이 힘든 이유…복잡한 절차, 고비용

선전이 중국판 실리콘밸리란 평가를 얻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위상은 다소 초라하다.

선전은 제조업 인프라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유럽에서 2개월 걸릴 시제품을 단 1주일 만에 생산해내고, 그 다음 주에 양산이 가능하다. 즉 단순한 아이디어만 있어도 협업을 통해 디자인과 생산을 할 수 있으며, 중국내 법인을 설립한 외국 기업에게도 이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

화창베이 상인들은 소량 주문도 추후 백만개 이상식 판매되는 히트상품으로 발전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어, 시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기꺼이 제품을 제작해 주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의 경우 스타트업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하드웨어 제작비용이 높아 양산의 어려움을 겪는다.

또 선전에서는 기술만 있으면 정부가 조건 없이 장려금을 주고 창업지원 기관과 투자기관이 활성화돼 있어 진입장벽이 낮다. 하지만 한국은 창업자금이 대부분 대출이기 때문이 높은 이자부담을 안고 창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