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통신대란] ②5G 시대 앞두고 망신…설계 미비냐, 운영 미숙이냐

입력 2018.11.26 10:09

KT가 5세대(5G) 이동통신 첫 전파 송출을 목전에 두고 대형 악재를 만났다. 화재 한 번에 KT가 제공하는 주요 지역 내 통신 인프라가 일제히 마비됐다. KT는 5G 상용화라는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 화재 사고 수습과 피해 보상에 매달려야 할 판이다. 화재 사태가 자칫 심각한 국가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오전 11시 12분 KT 서울 아현국사 지하 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는 10시간 만인 오후 9시 26분 진화됐지만, 완전 복구까지는 1주일쯤 걸릴 전망이다. KT를 포함한 이통3사는 21월 1일 첫 5G 전파 송출에 맞춰 초고속 통신을 이용한 가상현실(VR) 미디어 등을 소개하는 대규모 행사를 준비 중이었다. 이번 화재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결과를 가져왔다.

‘초연결'을 지향하는 5G 시대 진입을 앞두고 국가 기간통신사업자인 KT가 겪은 이번 사고는 주요 인프라에 대한 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은 물론, 필수설비 공유 대가 산정 등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각종 제도 보완 논의에도 기름을 부을 전망이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25일 오전 KT 아현국사 앞 공동구 화재 현장에서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 필수설비 70% 보유한 KT, 우회로 확보 의지는 과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고시인 통신망 종합관리지침에는 ‘기간통신사업자는 시외 통신망 및 주요 시내 통신망의 우회 소통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 통신망, 다른 기간통신사업자의 통신망 또는 자가 통신망 등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운용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KT의 통신망이 이번 화재처럼 제 역할을 못 하게 되면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의 통신망을 이용해 서비스를 끊김 없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이 실행돼야 함을 의미한다.

공기업에서 출발한 KT는 한국통신 시절부터 전봇대 등 국내 통신망 필수 설비의 70%를 보유했다. KT는 전국에 걸쳐 68만㎞ 길이의 광케이블을 운용하고 있으며, 이 중 80% 구간이 지중화돼 있다. 지중화는 시설물 폭발이나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통신 시설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장애를 최소화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KT는 서울 아현국사 지하 통신구에서 발생한 화재를 미리 방지하지 못했다. KT에 따르면, 아현국사는 국가 중에서도 중요도가 떨어지는 D등급에 해당해 백업 체계를 구축할 의무가 없는 곳이다. 등급은 해당 국사가 전국망에 미치는 수준을 고려해 정부가 지정한다. KT 입장에서는 굳이 백업망 구축을 위해 이중으로 투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25일 정부 과천청사에 있는 과기정통부 대회의실에서 KT 통신구 화재 관련 관계기관 대책 회의를 열고, 화재 방지 시설 확충 등 체계적인 재발 방지 조치를 12월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했다. 회의에는 KT뿐 아니라 SK브로드밴드도 참석했다. LG유플러스와 케이블TV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화재 재발 방지 노력을 강화하되, 이와 같은 사고 발생에 대비해 통신3사 등 관련 사업자 간 우회로 등을 사전에 확보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 설계 미비냐 운영 미숙이냐…재발 방지 위한 명확한 원인 규명부터

황창규 KT 회장이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하고 통신 장애 등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이번에 불이 난 아현국사 통신구는 총 150m 길이로, 1차 합동감식 결과 실제 화재로 탄 구간은 절반에 가까운 79m쯤이다. 인근 지역을 한순간에 수십년 전 유무선 통신이 없던 풍경으로 돌려놓은 재앙이 바로 이 79m 구간 소실 때문이었던 셈이다.

이미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 것과 별개로 KT의 후속 대응을 보면, 유선 우회망의 중요성이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휴대전화와 같은 무선 통신의 경우 기지국 장애가 발생하면 근처에 있는 다른 기지국으로 단말기가 연결되도록 할 수 있다. KT는 이번 화재 당시에도 이동기지국 45대를 현장에 파견하고, 아현자사와 가까운 여의도지사 등으로 회선을 우회시켰다. 다만, 주말인 탓에 인근 기지국까지 트래픽이 몰리면서 통신망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했다.

반면, 유선 통신은 우회로를 마련하기 쉽지 않아 장애 발생 시 신속히 물리적으로 회선을 다시 까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다. 이번 화재의 경우 KT는 화재로 소실되지 않은 정상 회선을 살린 후 이를 인근 빌딩과 협의해 지상으로 올리는 방식으로 긴급 복구에 성공했다. 가복구 회선은 향후 합동 감식이 끝나고, 지중 설비 재설치를 완료하면 다시 정상적으로 매립될 예정이다.

KT도 이번 화재로 우회로 마련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황창규 KT 회장은 25일 화재 수습을 위해 아현지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기회로 설비 공유 등 문제가 제기돼 (타 통신사와) 더욱 긴밀하게 협조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오성묵 KT네트워크부문장도 "이번처럼 망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타사 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다른 사업자, 정부와 협의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KT의 결단에 따라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역시 적극적인 추가 설비투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통신사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KT는 (이번 사고의 원인이) 백업과 우회로가 없는 네트워크 설계의 미비인지, 운영의 미숙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통신은 단순히 개인 간의 통신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 국민의 생명, 모든 경제 활동을 뒷받침하는 것이기에 정치권의 과도한 통신비 인하 압박은 현재의 운영을 부실하게 할 뿐 아니라 미래 투자 여력을 줄인다"고 말했다.

한편, 5G 송출을 일주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필수설비 공유를 바라보는 KT와 비(非) KT 진영의 시각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를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연초 이통3사 CEO와 필수설비 공유와 관련한 원론적 합의를 이루며 중재에 나섰지만, 적정 수준의 대가 산정과 관련해서는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비 KT 진영은 필수설비 대가 산정 관련 협상을 지속하고 있지만, KT의 요구안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KT 역시 서로 입장 차가 커 실마리를 쉽게 찾을 만한 분위기는 아니라며 줄다리기를 이어갈 태세를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필수설비 공유를 통해 연간 400억원에 달하는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5G망 구축 시 타 통신사의 설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경우 향후 10년간 4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의 투자비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양측이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과기정통부는 섣불리 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매듭을 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성배 과기정통부 기획조정실장은 "필수설비 대가 산정은 풀기 쉽지 않은 문제지만, 공유 자체는 기술적으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며 "먼저 설비 공유를 합의한 후 비용을 정산하는 것도 빠르게 합의에 이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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