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가 플래그십 세단 ‘G90
‘을 본격 출시하고 판매에 들어갔다. G90은 EQ900의 부분변경 제품이지만, 내외관과 기능 개선을 통해 완전변경급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그래서 제품 이름도 해외시장과 동일한 G90으로 바꿨다. 제네시스는 G90을 통해 ‘한국만의 고급스러움’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제네시스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치 않다. 특히 최대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시장의 부진이 심각하다. 현재 미국에서 G70, G80, G90을 팔고 있는 제네시스는 2018년 10월 판매량이 372대에 불과했다. 제품당 평균 150대도 판매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1786대에 비해 80% 가까이 위축된 결과다.

이에 따라 올해 10월까지 제네시스의 미국 누적 판매량은 9281대를 기록, 전년(1만6870대)에 비해 45% 하락했다. 미국에서 대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브랜드 외에 제네시스보다 판매가 적은 고급 브랜드는 없다.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 제네시스 제공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 / 제네시스 제공
제네시스는 출범 3년차의 신생 브랜드다. 때문에 브랜드의 성패를 논하기는 시기상 어렵다. 지금까지 겨우 3종의 세단을 내놓은 제네시스는 2020년까지 SUV 3종을 라인업에 추가할 예정이다. 그 때까지는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풀라인업을 갖춘다고 해서 제네시스의 판매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차 시장 경쟁은 의외로 치열하기 때문이다.

제네시스는 독립 브랜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2017년 11월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현대차에서 완전히 ‘분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에 대중 브랜드인 현대차의 그림자가 너무 짙은 탓이었다. 현대차의 서브 브랜드가 아니라 하나의 별도 브랜드로 제네시스를 육성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제네시스를 총괄하는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사장 역시 수차례 현대차와의 분리를 얘기해 왔다. 그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중차로서 이미 탄탄한 이미지를 구축한 현대차와 브랜드 콘셉트를 차별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네시스 G90을 발표한 이원희 현대차 사장. / 박진우 기자
제네시스 G90을 발표한 이원희 현대차 사장. / 박진우 기자
그런데 2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출시행사에서 G90을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이원희 현대자동차 사장이었다.

제네시스 G90을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소개한 모습에서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제네시스는 여전히 현대차의 ‘종속 브랜드’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뿌리가 현대차라는 사실까지는 부정할 수 없겠으나, 가치가 더 높은 제네시스가 이원희 사장의 등장으로 현대차의 하위 브랜드처럼 느껴졌다.

제네시스의 미래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연출이다. ‘완전히 고급스러운 제네시스’가 아니라 ‘살짝 고급스러운 현대차’라는 인식을 깊게 심어줄 수 있어서다. G90의 소개는 브랜드 총괄인 피츠제럴드 부사장이 전적으로 맡아야 했다.

폭스바겐그룹이 보유한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의 고급 브랜드 신차 출시행사에 폭스바겐 사장이 나와서 발표하는 일은 없다. 물론 이들 브랜드는 폭스바겐 브랜드와 확실히 분리된 별개 사업체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현대차 사업부 중 하나인 제네시스와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독립 브랜드로서 인정하려면 작은 부분에서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피츠제럴드 부사장은 폭스바겐그룹 소속의 람보르기니를 총괄했던 인물이다. 그에게 람보르기니에서와 같은 역할을 맡기려면 같은 태도로 대해주어야 함이 옳다는 의미다. 그것이 제네시스라는 고급 브랜드의 육성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2016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제네시스 브랜드와 G90을 직접 소개한 정의선 부회장. / 제네시스 제공
2016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제네시스 브랜드와 G90을 직접 소개한 정의선 부회장. / 제네시스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역할론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직접 ‘한국형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세단을 발표했다면 아마 모양새는 더 좋았을 것이다. 그룹 차원에서 제네시스를 중요 브랜드로 여긴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 여부만으로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설득력이 생기는 셈이다. 게다가 정 부회장은 2016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G90(당시 국내 제품명 EQ900)을 미국 시장에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출시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G90이 부분변경 제품이어서 소위 급이 맞지 않는 탓일까. 아니면 내수시장은 충성스런 소비자가 많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덕분일까. 여러모로 아쉬운 제네시스 G90 출시현장과 브랜드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