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 의존도가 높은 현대문명이 ‘통신두절’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재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초연결시대에 있어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의 안정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일상생활에 미치는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치킨 하나도 스마트폰으로 주문해 먹는 우리의 생활을 떠올려보면 그렇습니다.

통신두절 사고가 일어나면 달리던 자율주행차가 갑자기 멈출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 현대차 제공
통신두절 사고가 일어나면 달리던 자율주행차가 갑자기 멈출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 현대차 제공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의제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바로 ‘자율주행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연결시대에 이번 KT 화재와 같은 사고가 대책없이 발생하면 달리던 자율주행차가 갑자기 멈추게 될 것이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자율주행차의 중요 기술 중 하나가 ‘커넥티비티’, 즉 ‘연결성’이니, 네트워크에 연결된 자율주행차도 통신이 두절되면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 같은 가설은 근거가 충분해보이면서도 또 희박합니다. 자율주행차에 있어 네트워크와의 연결은 필수로 여겨지지만, 자율주행은 딱히 네트워크와 연결하지 않아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율주행차의 움직임은 네트워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자동차’ 그 자체가 가고 서는 일을 결정합니다.

자율주행차는 ‘인간운전자’의 대체가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운전과정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 행동하는 일을 기계장치인 자동차 스스로 하게 하자는 것이 골자입니다.

사람의 뇌는 모두 연결돼 있지 않습니다. 각 영역이 단독 의사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신망없이도 운전이 가능합니다. 자율주행차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은 자동차에서는 카메라와 센서 등이 담당합니다. 이들이 모은 정보는 자동차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가 분석하고, 행동을 결정합니다. 행동이 결정되면 각 장치에 명령을 내립니다. ‘앞차보다 빨라서 충돌 위험이 있으니 속도를 줄여’ ‘지금 차선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니 차선 중앙으로 차를 위치시켜’ ‘보행자가 감지됐다. 차를 빨리 멈춰’ 등입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자동차의 각 부위가 작동합니다.

자동차의 자체 판단 능력은 아주 예전부터 조금씩 발달해 오고 있습니다. 가령 비가 올 때 자동으로 와이퍼를 움직이게 하는 앞 유리창의 레인센서는 단순히 와이퍼 작동에서 역할이 끝나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 정도를 파악해서 자동차의 제동 시스템에도 정보를 전달합니다. 비가 오면 차가 미끄러질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제동 시스템은 레인센서에서만 정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바퀴의 회전수에서도 관련 정보를 모읍니다. 자율주행은 이런 자동차 개별 판단 능력을 종합적으로 극대화한 기술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네트워크의 역할은 뭘까요? 그 역할이 딱히 크지 않다는 게 정론입니다. 어차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죠. 주행과정에서 네트워크의 도움은 카메라와 센서 인지 범위 밖의 도로 상황 등을 자동차에게 전달하는 정도에 머무릅니다. 이 네트워크가 없어도 사람과 동등한 수준의 판단력을 발휘하도록 인공지능과 정보처리장치의 정밀도를 높이는 것이 현재 자율주행 기술의 방향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자율주행을 개발하는 기술자들은 통신두절에 대한 생각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다는 점입니다. 통신망이 전세계 어디에나 뻗어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봐도, 터널이나 산악 등지에서 통신은 원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도 자율주행차는 활동해야 하니, 개발 과정에서 되려 통신 의존도를 최대한 낮추려고 하는 겁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고정밀지도’입니다. 지난 2월 현대차는 강원도 평창에서 수소차 넥쏘의 레벨4 자율주행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왕복 7㎞의 짧은 코스였으나, 설정한 시속 50㎞의 속도로 도로 병합 구간이나 오르막길에서 속도를 조절해가며 달렸습니다.

넥쏘 자율주행차. / 현대차 제공
넥쏘 자율주행차. / 현대차 제공
이는 차에 미리 탑재된 고정밀지도 덕분이었습니다. 고정밀지도 안에는 도로가 굽은 정도, 신호등, 제한속도, 도로 폭 등의 세밀한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경사 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차는 이 지도 정보를 가지고 실주행에서 취합한 정보와의 차이를 분석해가며 움직입니다. 당시 현대차는 서울에서 평창까지 이르는 190㎞ 고속도로 구간에서도 자율주행 시연을 했는데, 역시 GPS 신호가 닿지 않는 통신단절을 대비해 이 구간의 고정밀지도를 넥쏘 자율주행차에 넣어뒀습니다.

이와 관련 현대차에서 자율주행을 개발하는 한 연구원은 "이론상 고정밀지도만 확보하면 어느 도로에서도 운전대와 가속·제동페달에서 손과 발을 떼고, 차에 완전히 의지하는 이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자동차 정보 저장장치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율주행에 있어 정보 소통은 클라우드가 대세가 될 것이란 분석도 분명 있습니다. 초연결시대에 차내 저장장치가 굳이 필요하냐는 주장인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러셀 루빈 웨스턴디지털 오토모티브 솔루션 마케팅 총괄은 "(자율주행차가) 데이터를 얻기 위해 항상 클라우드에 접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최근 자동차 저장장치는 통신이 결여돼 커넥티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도 능력을 내는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자율주행차에는 여러 안전 시스템을 구비해 놓습니다. 만약에 통신이 끊겨 자율주행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자동차는 판단을 내릴 겁니다. 터널을 통과하는 수분 이내라면 그대로 주행이 가능하겠지만 이번 화재사고와 같이 수십시간동안 네트워크와 분리될 경우 차는 그자리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안전지대로 이동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아우디 AI 트래픽 잼 파일럿의 활성화 스위치. / 아우디 제공
아우디 AI 트래픽 잼 파일럿의 활성화 스위치. / 아우디 제공
비슷한 기술을 아우디가 선보였습니다. A8에 채용된 ‘AI 트래픽 잼 파일럿’이라는 레벨3 자율주행 기술입니다. 이 시스템은 교통체증의 원인이 진행 중인 차로 앞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이라면 자율주행하지 않습니다. 또 시속 60㎞ 이상 속도를 내지 않는데, 이 속도를 초과하게 되면 인간 운전자에게 운전대를 잡으라는 경고를 보내고, 운전자가 반응하지 않을 경우 비상등을 켠 후 서서히 속도를 줄여 정차합니다. 이 뒤에 자동차는 긴급 서비스를 호출합니다. 큰 사고를 유발하는 급정거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율주행차라도 사람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율주행의 기술 단계는 레벨 0에서 레벨 5까지 구분하는데, 고레벨일수록 자동차의 자율성이 강조되고, 최종단계인 레벨5는 운전대와 가속 및 제동페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술단계든 사람이 승차한 상태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차는 모든 통제권을 사람에게 넘기도록 설계됩니다. 다시 말해 통신이 두절되면 통신이 필요없는 인간 운전자가 운전하면 된다는 겁니다. 운전대와 가속페달이 없는 자율주행차 역시 사람이 적접 조작할 수 있는 비상 정지 시스템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사람이 다시 운전대를 잡으면 된다. / 아우디 제공
자율주행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사람이 다시 운전대를 잡으면 된다. / 아우디 제공
자동차의 개발과 상용화 과정에서 안전은 최우선 목표입니다. 자동차 내의 작은 버튼 하나까지도 사람에게 안전하도록 만들어집니다. 자율주행 시대라고 해서 그 목표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애초에 자율주행은 인간 운전에 의한 교통사고를 ‘0’으로 만들기 위해 탄생한 기술입니다.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자율주행차 시대도 열리지 않습니다.

이번 KT 화재사고는 초연결시대를 앞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지만, 자율주행 기술에 있어서 만큼은 너무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안이한 시각도 경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