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주인공이 콘택트렌즈를 끼면 눈 앞에 증강현실(AR) 세계가 펼쳐진다. 마치 게임 속에 직접 들어온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화면을 구현한다. 눈앞에 적이 나타나면 칼과 총을 겨누며 직접 싸움을 하고, 전투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흘러내리는 피마저도 감쪽같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중 한 장면. / tvN제공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중 한 장면. / tvN제공
이 이야기는 배우 현빈과 박신혜가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속 장면이다. 시청자들은 증강현실이라는 신선한 소재에 주목한다.

영화 ‘미션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에서도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톰크루즈가 자신이 주목하는 사람이나 사물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콘택트렌즈를 끼면 증강현실이 펼쳐지는 기술이 개발 됐을까.

◇ 스마트 콘택트렌즈 관련 연구개발…한국서도 활발

증강현실을 구현하기 위한 스마트 콘택트렌즈에 대한 관심은 2010년 전후부터 본격화됐다.

특히 2010년을 기점으로 증강현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증강현실 기술동향 및 지적재산권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증강현실 관련 특허는 2010년 599건으로 2009년(94건)대비 537% 증가했다.

스마트 콘택트렌즈에 대한 특허 역시 2010년 등장했다. 키프리스(특허정보넷)에 따르면 2010년 ‘어안렌즈를 이용한 증강현실 구현 시스템 및 그 구현방법 ‘특허 출원을 시작으로 드물지만 꾸준하게 스마트 콘택트렌즈 관련 특허가 출원되고 있다.

내로라하는 IT 기업 삼성전자에서도 2번이나 특허를 출원했다. 삼성전자는 2014년 4월, 9월 연이어 ‘증강현실을 위한 스마트 콘택트렌즈와 그 제조 및 동작방법'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발명자에는 삼성종합기술원 직원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해당 특허는 2년 뒤인 2016년 공개되며 이목을 끌었다.

삼성전자가 제출한 특허 출원서에 따르면 콘택트렌즈 중앙 작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증강현실 화면을 보여준다. 렌즈에 내장된 안테나가 영상정보를 수신하고, 렌즈 속 디스플레이를 통해 재생한다. 눈 깜박임으로 주요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안구에 직접 착용하는 만큼 기존 스마트 글래스보다 시야각이 넓은 것도 장점이다.

삼성전자가 특허 출원한 스마트 콘택트렌즈 도면. / 특허정보넷 갈무리
삼성전자가 특허 출원한 스마트 콘택트렌즈 도면. / 특허정보넷 갈무리
하지만 해당 제품은 아이디어 수준이며, 상용화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LG이노텍은 구글 자회사 베릴리와 협업해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개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내에서는 의료기능이 접목된 스마트렌즈에 대한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7년 박장웅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현 연세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혈당, 안압을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개발했다. 렌즈에 장착한 센서가 눈물 속 포도당을 감지해 초소형 LED를 통해 혈당 수치를 알려준다.

위 기술은 구글이 2014년 혈당 변화 알려주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시제품 공개한 이후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포기한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2018년 11월 최지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자재료연구단 박사팀은 콘택트렌즈 안에서 작동하는 박막형 이차전지 개발에 성공했다. 그동안 연구 중이던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전기를 외부에서 공급해야 하는 점이 상용화에 큰 걸림돌이었는데, 이를 해결해 준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박막형 이차전지는 스마트렌즈에 장착할 수 있으며, 렌즈 자체에 전원이 있어 전원공급이 자유롭고 재충전해서 쓸 수 있다.

◇ 현재 기술은 ‘기초단계' 수준…"생생한 AR 구현, 5~10년 기다려야"

스마트 콘택트렌즈 관련 연구는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은 ‘기초 단계'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스마트 콘택트렌즈 실물. /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스마트 콘택트렌즈 실물. /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최지원 박사는 "박막형 이차전지를 콘택트렌즈 안에 넣을 수 있는 기술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기반 기술이다"며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렌즈를 꼈을 때 증강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선 렌즈 내에 삽입할 수 있는 반도체, 트랜지스터,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소재들이 개발돼야 하지만, 아직은 그 정도의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료기능 스마트 콘택트렌즈 개발에 성공한 박정웅 연세대 교수(신소재공학부) 역시 같은 견해를 내놓는다.

박 교수는 "의료기능이 접목된 스마트 콘택트렌즈가 1단계라면, 증강현실이 가능한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그 다음 단계다"며 "렌즈 속에 투명한 디스플레이를 탑재해야하고, 동영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의료기능 스마트 콘택트렌즈보다)훨씬 더 많은 LED가 들어가 구동회로 역시 매우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증강현실이 가능한 스마트 콘택트렌즈 상용화를 논하기엔 아직은 이르다"며 "다만 완전히 먼 미래는 아니고 5~10년 뒤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