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작의 신약이야기] 토종 CRO가 대한민국 제약산업 일으킨다

  • 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
    입력 2018.12.09 11:00 | 수정 2018.12.10 17:17

    ‘2013년 44건, 2014년 48건, 2015년 64건, 2017년 85건’

    해외로 나간 국내 바이오·제약사 임상시험 용역 건수다. 관련업계는 올해 100건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임상시험 용역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국내 제약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다. 동시에 다국적 CRO에 의해 토종 제약기업 국내 임상시험까지 잠식당함으로써 국내 CRO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는 제약바이오사 임상시험을 대행하는 전문기관을 말한다.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17년 26조원으로 추정된다. 2022년까지 45조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해외 임상시험 한 건당 최소 1000만달러 이상이다. 편의상 미국 달러 환율을 1000원으로 치면 해마다 최소 4400억원, 4800억원, 6400억원, 8500억원으로 증가하는 셈이다. 올해는 1조원을 초과할 전망이다.

    반면, 한국 CRO 입지는 줄고 있다.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KoNECT) 통계에 의하면 국내 토종 CRO 매출은 2014년 1023억원, 2015년 1173억원, 2016년 1168억원 등 성장폭이 높지 않다.

    국내 CRO 매출 20% 가량은 외산 제약사 업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제약바이오사가 국내 CRO에 맡기는 용역 금액은 100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신약개발을 위해 창설된 정부투자기관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KDDF) 비전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신약 개발 국가로 진입해 제약 강국이 되는 것이다. 2020년까지 글로벌 신약 10개 이상을 개발하고 신약연구개발 투자전략 플랫폼 글로벌화를 위해 지난 9년간 1조6000억원을 투자했다. 이런 거대한 국가적 신약개발 사업도 토종 CRO 없이는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신약개발사업단에 ‘토종 CRO’는 없다.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2일 개최된 KoNECT 심포지엄 역시 외산 CRO 선전장이었다. 1000억원 미만 영세한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릴 30여개 토종 CRO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당국은 토종 CRO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는 것 같다. 도산하는 토종 CRO도 속출할 것이다.

    몇 년 전 일이다. 국내 굴지 제약사가 퍼스트 인 클래스(First in Class) 신약으로 미국에서 임상시험 허가를 받고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다국적 제약사는 후발주자로 이 신약 관련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을 먼저 마치고 판매허가를 받았다. 선두주자였던 국내 제약사는 임상시험을 중단하고 미국 시장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본 제약사는 대부분 중소 규모다. 모 일본제약사는 해외에서 대형 다국적 CRO와 임상시험을 하다가 중단하고 필자가 운영하는 CRO(국내 토종 CRO)와 계약했다.

    국내 굴지 제약사가 국내 임상시험을 다국적 CRO에게 용역을 맡겼으나 관리가 안돼 필자가 운영하는 CRO가 일부 업무를 받아서 진행 중이다. 왜 그랬을까.

    사례는 더 있다. 소규모 CRO는 종종 "대형 CRO는 큰 제약사와, 소형 CRO는 작은 제약사와 함께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CRO와 의뢰사(sponsor)는 궁합이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규모 다국적 CRO를 막연히 믿기 때문인지 의외로 작은 제약사는 다국적 CRO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1조 매출도 못하는 제약사와 30조 매출을 일으키는 제약사가 10조 매출을 하는 CRO에 용역을 준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국내 토종 CRO가 모두 없어진다면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은 예상되는 현상에 따른 역경을 겪을 것이다.

    현재 정부와 제약바이오사들은 국민 건강을 위해 제약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꿈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의약품 시장인 미국을 위해 신약개발을 하겠다는 것 같다. 순서가 잘못됐다. 우리나라 신약은 우리나라에서 시작돼 성공하고 세계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1만개 신약물질 가운데 10개가 임상개발에 진입하고 그 가운데 하나가 성공할지 말지다. 신약 하나가 태어나는데 2조 이상 돈이 들고 10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신약사업은 ‘고위험’, ‘고비용’ 그리고 ‘긴 시간’이 걸리는 사업이다.

    신약이 어디에서 개발되든 고위험은 피할 수 없다. 제약선진국과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개발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 뿐이다. 그런 전략이 가능한 곳이 바로 한국이다.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한다면 미국과 비교해 시간은 50%, 비용은 30~40% 정도면 가능하다. 속전속결 저비용 개발전략으로 의약품 선진국과 대결한다면 제약강국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미국에서 실패한 모 국내 제약사의 first in class 신약도 국내에서 우선 개발하고 미국으로 진출했더라면 운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공율이 10% 미만이라면 미국에 가도 10% 미만이고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신약은 세계시장에 나가도 성공한다. 우리나라가 임상시험 선진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토종 CRO만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동반자가 되어 제약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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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통계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통계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미국 국립암연구소(NIH), 국립신경질환연구소, 국립모자건강연구소 등에서 데이터 통계분석과 임상연구를 담당했다. 1999년 한국으로 귀국해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를 겸임하며 2000년도에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LSK Global PS)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임상CRO협회장을 역임해 국내 CRO산업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권위 인명 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도 등재됐다. 현재 서경대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