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위한 정부 정책이 중견기업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벤처부(이하 중기부)는 최근 3D 프린터, 전지형에너지저장장치(ESS) 등 품목을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으로 새롭게 지정했다. 경쟁제품 지정제도는 공공기관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정한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 직접 생산하는 중소기업으로부터 해당 제품을 구매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하지만 중견기업 업계는 정부의 중소기업 보호 정책을 이해하면서도 새롭게 성장 중인 시장 진출 자체에 제약을 받으며 오히려 역차별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경쟁제품 지정·추천 설명회. /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정부의 경쟁제품 지정·추천 설명회. /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 드론에 이어 3D프린터, ESS까지…중견기업계 "신사업 확장 가로막혀"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지정제도는 공공 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 제품을 의무화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과 판로 확대에 도움이 되지만 중견기업은 판로에 제한을 받는다. 중소기업 보호위주 정책은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오히려 약화시켜, 국내 산업 경쟁력까지 저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3D 프린터와 ESS를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했는데, 이와 관련한 반발도 상당하다. 중소기업 기술력으로는 아직 해당 분야와 관련한 글로벌 시장 경쟁력이 미비한데, 중견 기업 조차 관련 신시장 진출 자체가 봉쇄됐다. 정부는 중견기업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3D 프린터와 ESS를 경쟁제품으로 지정했다.

중견기업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정을 강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에는 드론이 문제가 됐다. 당시 정부는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드론 업체 제품을 공공기관이 구매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공공기관 중 상당수가 중국산 제품을 쓰는 등 부작용이 있었다. 공공조달 시 25㎏ 이하 무게의 드론은 국산제품이 우선시 되지만, 중견기업이 25㎏ 이상 시장만 보고 제품을 개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2018년 중기부는 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3D프린터, ESS 등 신성장산업 품목의 경우 운영위원회의 개별 심의를 거쳐 중소기업자간 경쟁 입찰이 가능한 사양으로 한정해 제품을 지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견기업의 불만은 꾸준히 나온다. 드론 시장처럼 불합리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견 프린터 전문 기업 신도리코는 3D 프린터 시장에서 가장 큰 피해자로 꼽힌다. 신도리코는 3D 프린터 시장의 후발주자지만 독자개발한 제품을 선보이는 등 최근 본격적으로 시장 확대에 나서던 참이었다.

신도리코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지정전) 조정회의를 통해 수차례 반대입장을 말씀드렸지만 결국 3D 프린터가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는 결과가 나왔다"며 "(정부 결정에 대해) 유감이다"는 입장을 전했다.

ESS 시장 진출을 노리던 중견기업들도 난감하긴 매한가지다. 한 중견 배터리업체는 ESS사업 확장을 검토하기 위해 투자계획서까지 작성했지만 공공 조달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사업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도리코가 독자개발한 3D프린터. / 신도리코 제공
신도리코가 독자개발한 3D프린터. / 신도리코 제공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한 관계자는 "ESS는 시스템 산업이자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는 신산업인 만큼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다"라며 "기술력을 더 발전시켜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나서 경쟁품목으로 지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또 "무정전전원장치(UPS)도 중소기업 경쟁제품으로 지정됐다가 중국산 제품으로 도배가 돼 버리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 중견기업계 "보호위주 정책 부작용 우려"

중소기업 보호 정책이 기업의 자생력을 약화해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견기업협회 한 관계자는 "정부의 중소기업 관련 정책은 보호보단, 경쟁력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감사원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지금처럼 보호위주 정책은 소수의 중소기업이 공공 조달시장을 나눠먹기 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중 상하수도관 같이 아예 시장이 공공 조달시장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며 "중소기업 외에는 시장에 아예 진출할 수도 없는 상황이 생기므로, 중견기업들은 불합리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기부는 이에 대해 중견기업의 진입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범위를 한정해서 지정하는 방식으로 역차별 논란을 해소해간다는 입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경쟁제품지정 전) 조정회의를 거쳐 논의된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며 "3D 프린터도 재료압출방식(FDM)에 한해 전체 입찰 물량의 50% 이상으로 제한했으며, 기타 기술력이 높은 제품의 경우 지정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ESS의 경우 전력변환장치(PCS) 용량 250kw 이하에만 지정하고, 가정용과 배전용은 제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