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실패 용납 덕분에…이스라엘은 스타트업의 '왕국'

입력 2019.01.06 06:00

이스라엘은 세계 유수의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스타트업을 유독 많이 보유한 국가 중 하나다. 인구는 서울시보다 적은 845만명이며, 면적은 대한민국의 5분의 1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감 만큼은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는 국가다.

2018년 8년 이스라엘 텔아이브에서 개최된 국제 스마트 모빌리티 회의 모습. / 오트라(ORTRA) 제공
이스라엘에는 2017년 기준 7600개의 스타트업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스타트업이 많은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1인당 창업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인텔,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면면을 보면 군대가 이스라엘 혁신산업의 모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군용 무기와 정보분석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한 곳이 많다.

◇ 이스라엘 스타트업 투자 늘리는 한국 주요기업들

한국 대기업들도 최근 이스라엘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를 보인다.

전장사업을 미래먹거리로 키우는 LG전자는 2018년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개발을 위해 이스라엘 스타트업 오디오버스트와 손잡았다.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9에서 오디오버스트와 협업한 결과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오디오버스트는 2015년 설립된 신생 스타트업이다. 사용자의 청취 패턴을 분석해 오디오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디오버스트는 2017년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벤처투자로부터 460만달러(49억원)의 투자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LG전자는 이밖에도 주로 전장과 관련된 이스라엘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2018년 1분기 카멜 벤처스에 45만2800달러(5억원)를 투자한데 이어, 10월 미쓰비시와 함께 자율주행 인공지능 스타트업 바야비전에 800만달러(90억원)를 투자했다.

삼성전자도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계속해서 러브콜을 보낸다.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은 인공지능(AI), 딥러닝 등에 주력하는 IT업체들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중동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텔아비브에 ‘삼성 넥스트 텔아비브'를 개소한 후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중이다. 2018년 초 삼성전자는 벤처투자펀드 삼성넥스트를 통해 이스라엘 로봇 스타트업 인튜이션로보틱스에 투자했다. 투자금은 밝히지 않았다. 삼성넥스트는 10월 해외 암호화폐 지갑 스타트업 케이젠 네트웍스에도 400만달러(44억9000만원)를 투자했다.

삼성넥스트 이스라엘 텔아이브 사무실. / 삼성넥스트 제공
현대자동차그룹도 2018년 10월 이스라엘에 오픈이노베이션 센터 ‘현대 크래들 텔아비브'를 개소하며 보다 적극 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개소와 함께 이스라엘 유력 스타트업 중 한곳인 알레그로AI에 투자했다. 2016년 설립된 알레그로AI는 컴퓨터 비전을 활용한 딥러닝 기반 AI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업체다. 앞서 2018년 8월 현대차는 자율주행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옵시스의 지분을 300만달러(33억7000만원)을 들여 인수하고,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 오토톡스에도 투자한 바 있다.

기아차도 2018년 초부터 이스라엘 스타트업 갈룰리와 커넥티드카 솔루션과 관련한 협업을 진행 중이다

SK텔레콤도 앞서 2017년 텔아비브에 스타트업 발굴을 위한 글로벌 모바일 오피스(GMO)를 설립한 바 있다.

◇ ‘창업국가' 위상 뒤엔 뒤끝없는 정부지원

이스라엘이 창업국가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우선 정부의 제도가 뒷받침됐다는 평가가 두드러진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실패한 창업자에게 첫 창업 때보다 더 많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과 자금지원을 약속한다. 실제로 텔아비브에는 매년 1000개의 스타트업이 나온다. 이 중 2%가 성공을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실패한 나머지 98%의 창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따로 관리한다. 게다가 실패 이전보다 20% 많은 추가 지원을 제공한다. 젊은 창업자들이 한번쯤 도전을 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갖춰져 있는 것이다.

실패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가 부담한다. 이스라엘은 창업 성과를 공무원의 인사평가에 반영하지 않으며, 단 한 개의 성공사례가 없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윈드워드 직원들. / 윈드워드 갈무리
또한 이스라엘은 국가 안보에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적다면 가급적 많은 정보를 창업자에게 넘겨준다. 실제로 윈드워드라는 스타트업은 이스라엘 정부와 국제해사기구가 제공한 항공정보서비스를 토대로 전세계 20만척의 선박 정보와 항로, 경유지, 시간 등을 점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이스라엘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융합산업학과)는 "스타트업은 초기단계 자금투자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위험이 크다"며 "민간 창업투자사보다는 모태펀드(정부가 직접 투자하지 않고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 상위의 펀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성공가능성이 낮은 초기투자를 많이 해야함에도 안정적인 후기투자를 더 많이한다"고 말했다.

또 "성실한 실패도 용납하지 않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문화가 팽배한 것이 문제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또 이스라엘처럼 외국 자본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