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쿠팡에 20억달러(2조2350억원)를 투자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투자나 인수·합병과 같은 굵직한 결정을 할 때, 대상 업체의 특허를 꼼꼼히 챙겨 보는 것으로 유명한 손 회장. 그렇다면 쿠팡의 지식재산(IP) 포트폴리오는 실제 어떤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부실하다. 쿠팡의 100% 지배기업인 쿠팡 LLC가 미국기업임에도 불구,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PCT, 즉 국제특허 출원도 전무하다. 2018년말 현재, 한국 특허만 총 245건 출원·등록돼있다. 이마저도 80건은 이미 특허청으로부터 거절결정이 난 상태다.

요행, 등록에 성공한 특허들 역시 ‘쇼핑 서비스 제공 방법’ 등과 같은, 가치 등급이 낮은 BM, 즉 비즈니스모델 특허가 주를 이룬다. 쿠팡의 대표 서비스인 ‘로켓배송’ 관련 특허도 상표 등록 외에는 별다른 출원건이 없다. 한마디로 아마존의 ‘원클릭’과 같은, 쿠팡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쳐 특허가 없단 얘기다. 스스로를 유통업체가 아닌 ‘테크 컴퍼니’로 정의하며, 경쟁사와 차별화를 꾀해온 쿠팡치곤 초라하다. 손 회장의 이번 추가투자를 인베스트먼트가 아닌 ‘스톱로스’(Stop-Loss), 즉 손절매로 보는 이유다.

실제 손 회장은 추가투자 발표가 있기 직전 2015년 10억달러(1조1180억원)에 샀던 보유 주식을 비전펀드에 7억달러(7828억원)만 받고 전량 매각했다. 이 펀드 최대 출자자인 사우디 왕실까지 엮인, 불가피한 정무적 조치였다는 얘기도 돈다. 각설하고, 특허적 시점으로만 봐도 이번 투자, 손 회장 답잖다.

◇ 손 회장에게 특허란?

일본 최고 갑부,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로는 창업자금을 모을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 유학생 마사요시 손은 곧바로 발명에 몰두한다. 그래서 1년만에 탄생한 발명품이 바로 ‘음성인식 다국어 번역기’다. 1978년 해당 특허를 샤프에 팔아 우리돈 10억원의 창업자금을 마련한 22살 손정의 학생은 이듬해 미국에서 본인 소유의 SW 개발사를 첫 설립한다. 지금의 소프트뱅크를 있게한 마중물은 바로 특허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40년이 지난 현재 손 회장에게 특허는 어떤 존재로 남아있을까?

소프트뱅크의 ‘행동제어 시스템 및 프로그램’ 특허 도면(위). 손정의 회장이 발명자로 정식 등재돼 있음을 해당 ‘특허 공보’(아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윈텔립스·일본 특허청 제공
소프트뱅크의 ‘행동제어 시스템 및 프로그램’ 특허 도면(위). 손정의 회장이 발명자로 정식 등재돼 있음을 해당 ‘특허 공보’(아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윈텔립스·일본 특허청 제공
소프트뱅크의 최신 특허를 하나 보자. 정확히 말하면 이 회사의 감정인식 솔루션 전문 자회사 ‘코코로 SB’가 특허권자다. 이 업체가 2018년 6월 일본 특허청에 등록한 ‘행동제어 시스템 및 프로그램’이라는 특허다. 그런데 이 특허의 발명자는 바로 코코로 SB의 대표인 손 회장 자신이다.

예컨대 집에 홀로 있는 가장을 발견한 가정용 로봇이 "무슨일 있느냐"며 사용자의 감정상태를 체크한다. 예컨대 30대, 남자, 혼자 있음 등과 같은 복수의 행동정보를 로봇이 기억해뒀다 해당 조건에 들어맞는 상황이 발생하면 사용자의 감정변화를 로봇이 사전 인지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다. 소프트뱅크가 현재 일본에서 대당 200만원에 판매중인 가정용 로봇 ‘페퍼’를 왜 손 회장이 ‘마음이 탑재된 로봇’이라고 부르는지, 이 특허를 보면 알 수 있다.

소프트뱅크의 가정용 로봇 ‘페퍼’. / 소프트뱅크 제공
소프트뱅크의 가정용 로봇 ‘페퍼’. / 소프트뱅크 제공
2018년말 소프트뱅크가 일본에서 출원한 특허는 총 2127건, 이 가운데 손 회장이 발명자로 등재된 특허는 모두 117건이다. 개인 명의로 출원한 특허로는 ‘골프 시뮬레이션 게임 환경 장치’와 ‘골프 연습대’가 있다. 골프 매니아 손 회장의 유별난 특허사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손 회장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이 시뮬레이션기를 본인 집 지하에 설치해놓고 전세계 유명 골프코스를 하나하나 정밀 분석했다. 매일밤 잠자리에 들기전 한 라운드씩 연마한 결과, 미국 명문 골프클럽 오거스타에서 72타라는 놀라운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손정의 회장이 개인 명의로 개발·출원한 ‘골프 시뮬레이션 게임 환경 장치’와 ‘골프 연습대’. / 윈텔립스·일본 특허청 제공
손정의 회장이 개인 명의로 개발·출원한 ‘골프 시뮬레이션 게임 환경 장치’와 ‘골프 연습대’. / 윈텔립스·일본 특허청 제공
손정의는 "이 시뮬레이션기를 팔면, 동반자를 이길 수 없다"는 우스갯 소리로 처음엔 이 특허의 제품화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1984년 당대 일본 최대 SW개발업체 허드슨을 통해 이 특허를 우회 상품화했고, 결국 ‘골프광’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SW시장에 내다 판다. 나중에는 ‘허드슨 3D 골프’, 일명 ‘골프 크레이지’라는 상품명으로 미국에까지 수출해 손 회장을 멋쩍게 했다는 일화다.

1980년대 미국에 ‘허드슨 3D 골프’란 이름으로 수출된 일본 소프트뱅크의 골프 시뮬레이션 SW제품. / 소프트뱅크 제공
1980년대 미국에 ‘허드슨 3D 골프’란 이름으로 수출된 일본 소프트뱅크의 골프 시뮬레이션 SW제품. / 소프트뱅크 제공
일본은 물론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지만, 그의 특허중 총 37건은 보기 좋게 거절 결정을 당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이를 창피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특허청 문을 두드린다. 마치 가난한 유학생 시절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듯한 몸부림처럼 말이다.

◇ 손 회장다운 투자란?

미국으로 가보자. 소프트뱅크의 미국 출원 특허는 모두 119건이다. 여기서도 발명자 필드를 검색해보면, ‘Masayoshi Son’, 즉 손 회장의 특허 총 30건을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미 특허청에 2018년 11월 등록된 ‘무선 네트워크 커버리지 제공을 위한 장치와 방법’이라는 특허를 주목한다. 혁신적인 안테나 시스템을 통해, 실내는 물론이고 실외 또는 인접 건물의 네트워크 수요까지 커버할 수 있는 통신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게 이 특허의 핵심이다.

그런데 눈길이 가는 건 해당 특허의 ‘발명자 라인업’이다. 손 회장과 함께 미국 에어스팬 네트웍스의 CEO 에릭 스톤스트롬의 이름이 올라 있다. 에어스팬은 소프트뱅크의 LTE, 5G 분야 투자협력사다. ‘투자의 귀재’ 손 회장의 손길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같이 특허를 매개로 한 공동 개발작업을 통해, 해당 투자사와의 기술적·경영적 교감과 소통을 끊임없는 이뤄가고 있다.

손정의 회장과 에어스팬 네트웍스의 CEO 에릭 스톤스트롬이 나란히 발명자로 등재된 미국 특허 ‘무선 네트워크 커버리지 제공을 위한 장치와 방법’. / 윈텔립스·미 특허청 제공
손정의 회장과 에어스팬 네트웍스의 CEO 에릭 스톤스트롬이 나란히 발명자로 등재된 미국 특허 ‘무선 네트워크 커버리지 제공을 위한 장치와 방법’. / 윈텔립스·미 특허청 제공
손 회장은 ‘바이오센서 손목밴드’라는 미국 디자인특허에도 발명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 디자인의 특허권자는 소프트뱅크나 자회사가 아닌 ‘뉴로스카이’라는 뇌파 관련 R&D 전문기업이다.

이곳 역시 2013년부터 소프트뱅크와 연을 맺고 각종 투자를 받고 있다. 이 업체 소재지는 미국 실리콘밸리다. 하지만 핵심 연구소는 대전 KAIST에 있는 토종 스타트업이다. 이 특허의 발명자란에는 손 회장 외 이 회사 창업자 이구형 박사의 이름도 나란히 등재돼 있다.

손정의 회장과 이구형 박사가 공동 발명자로 올라 있는 미국 디자인 특허 ‘바이오센서 손목밴드’. / 윈텔립스·미 특허청 제공
손정의 회장과 이구형 박사가 공동 발명자로 올라 있는 미국 디자인 특허 ‘바이오센서 손목밴드’. / 윈텔립스·미 특허청 제공
◇ 한 손엔 돈, 한 손엔 특허

2018년 12월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도쿄증시에 상장시켰다. 단숨에 우리돈 26조5000억원을 조달했다. 손 회장은 이 돈으로 소프트뱅크그룹을 기존 무선통신사업자에서 ‘기술투자사’로 대변모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미 소프트뱅크는 지난해부터 로봇회사 보스턴 다이나믹스, 보안솔루션 업체 사이버리즌, 반도체 설계회사 ARM 등을 잇따라 인수하는 등 엄청난 먹성을 보이고 있다.

이젠 훨씬 두툼해진 실탄까지 장전 완료한 소프트뱅크. 손 회장의 매서운 눈초리가 ‘특허’에 더욱 깊고 촘촘히 꽂힐 것이다. 이는 그의 쿠팡 추가투자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또다른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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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동 위원은 전자신문 기자와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국내 최대 특허정보서비스 업체인 ㈜윕스에서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특허청 특허행정 모니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와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ICT시사상식 2015’ 등이 있습니다. ‘특허시장의 마법사들’(가제) 출간도 준비 중입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활동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이 선정한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 2017)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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