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원의 오덕이야기] (53)日서 태어난 사자로봇 '고라이온'이 미국산 '볼트론' 된 사연

입력 2019.01.12 06:00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다섯 대의 사자로봇이 서로 합체하는 ‘백수왕 고라이온(百獣王ゴライオン)’은 원작인 일본판보다 리메이크작에 해당하는 미국판 ‘볼트론(Voltron)’으로 더 알려진 작품이다.

백수왕 고라이온. / 토에이 제공
국내 3040세대도 ‘고라이온’이란 이름보다 ‘볼트론'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고, 북미와 유럽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은 볼트론이 미국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믿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고라이온 리부트 애니메이션은 2016년 미국 드림웍스의 손을 거쳐 넷플릭스 독점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됐고, 2018년 8월에는 레고그룹이 볼트론을 소재로 한 브릭 상품을 내놓았다.

드림웍스와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미르가 공동 제작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볼트론 전설의 수호자'는 시장조사업체 패럿 애널리틱스가 집계한 ‘미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9위에 오르기도 했다. 패럿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8년 12월 2주차(9~15일) 주간 순위 조사에서 한 주간 1964만900번 시청됐다. 원산지 일본에서는 조용히 잠자고 있는 사자로봇이 일본 밖 세상에서는 활발하게 포효하고 있는 셈이다.
백수왕 고라이온 애니메이션 오프닝. / 유튜브 제공
볼트론은 1981년 일본 토에이(東映)가 제작해 현지 TV에 방영한 ‘백수왕 고라이온’과 1982년 공개된 로봇 애니메이션 ‘기갑함대 다이라가 피프티(機甲艦隊ダイラガーXV)’를 평행세계 이론으로 서로 묶은 작품이다.

고라이온을 ‘볼트론'이란 이름으로 북미에 방영한 월드이벤트프로덕션(World Events Production·
이하 WEP)은 북미지역에서 문제가 될 법한 잔인한 장면을 삭제하고, 죽은 사람을 중상을 입은 것으로 바꾸는 등 내용과 설정을 변경했다. 그리고 다이라가 피프티를 짜깁기 하는 방식으로 시즌2를 구성하고, 총 20편에 달하는 북미 전용 에피소드를 일본 토에이와 함께 만들었다.

고라이온. / 야후재팬 갈무리
미국에는 볼트론처럼 전혀 관련이 없는 작품을 묶은 또 다른 유명작으로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와 ‘사잔크로스’, ‘기갑창세기 모스피다’ 등 세 작품을 재편집해 구성한 ‘로보텍(Robotech)’이 있다. 로보텍은 미국 현지 TV 방송국의 요청으로 65화 분량의 콘텐츠로 반영됐다.

미국에서 다른 작품을 하나의 콘텐츠로 묶어 만들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미국 콘텐츠 배급업자에게 콘텐츠를 편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볼트론은 2005년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20세기 폭스와 뉴 리젠시를 통해 실사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보도됐는데, 이후 저작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8년 토에이는 "미국 WEP가 만들 수 있는 것은 볼트론 애니메이션에 관한 것"이라며 실사영화 제작 권리가 토에이에 있다고 주장한다. 토에이의 이야기를 들은 미국 WEP는 토에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볼트론 저작권 분쟁은 2010년 미국 WEP가 일본 토에이로부터 볼트론·고라이온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인수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일본에서 태어난 고라이온이 미국산 사자로봇으로 바뀐 셈이다.

볼트론 실사영화 프로젝트는 이후에도 아틀러스 엔터테인먼트의 소송 등 시끄러웠다. WEP는 2010년 클래식 미디어(드림웍스 클래식)에 볼트론 콘텐츠 제작 권리를 부여했고, 드림웍스는 이 권리를 바탕으로 2016년 볼트론 리부트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볼트론 리부트작 ‘볼트론 전설의 수호자’. /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제공
토에이가 ‘백수왕 고라이온'에 대한 권리를 미국에 팔아넘긴 탓에 슈퍼로봇이 총출동하는 인기 게임 콘텐츠 ‘슈퍼로봇대전'에서 고라이온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2019년 출시될 최신작 ‘슈퍼로봇대전T’에서도 고라이온은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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