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는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는 물론이고, 연초 한 해를 관통하는 IT 트렌드를 미리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시회로 꼽힌다. 올해 CES 2019에는 전 세계 155개국 4500여개 업체가 참가해 다가올 미래기술의 현주소를 조망하고, 혁신의 향연을 펼쳤다.

CES 2019 메인 전시장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홀(LVCC) 전경. / CTA 제공
CES 2019 메인 전시장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홀(LVCC) 전경. / CTA 제공
CES에 참가하는 모든 업체가 저마다 최고를 외치지만, 매년 스타로 급부상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한정돼 있다. CES를 주관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매년 주목할 만한 제품에 ‘혁신상(Innovation Award)’을 수여하지만, 이들 제품이라고 해서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서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대기업의 화려한 부스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브랜드 파워나 부스 규모에 관계없이 관람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의외의 제품도 적지 않다.

혁신을 따지는 기준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화제성 측면에서 CES 2019를 뜨겁게 달군 제품과 서비스를 모아봤다. 당장 관련 업계에 큰 파급력을 미칠 제품부터 아직 상용화까지 길은 멀지만 향후 몇 년간 트렌드를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기술이 눈길을 끈다. 혁신은 지금 이 순간도 현재진행형이다.

◇ ‘거실의 지배자’ TV는 옛말…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가전의 꽃'으로 불리는 TV는 매년 CES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 제품 중 하나다. 글로벌 가전 시장의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매번 경쟁사보다 앞선 기술력을 뽐내기 위해 프리미엄 중에서도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TV를 간판으로 내건다.

이번 CES 2019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TV는 단연 LG전자의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이다. 정식 명칭보다 ‘롤러블 TV’로 더 많이 알려진 제품이다.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은 한 마디로 거실 한 쪽 벽을 차지하는 전통적인 TV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꿀 제품으로 주목받는다.

CES 2019 관람객들에 둘러싸인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 LG전자 제공
CES 2019 관람객들에 둘러싸인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 LG전자 제공
둘둘 말고 펼 수 있는 6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는 평소에는 본체 안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TV를 시청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시청 모드에 따라 화면 전체 또는 일부만 드러내기도 한다. TV를 끄면 화면은 다시 본체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화면이 사라진 본체는 마치 독립적인 사운드바 제품처럼 쓸 수 있다. 공간 연출에 따라서는 TV를 벽이 아닌 거실 중앙에 두고 쓸 수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도 CES 2019에서 집적도를 높여 화질을 높이고, 크기도 75인치로 줄여 가정용으로 적합하게 업그레이드한 마이크로 LED TV를 선보였으나, 기술력은 차지하고라도 화제정 측면에서는 둘둘 말리는 롤러블 TV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라스베이거스 지역 신문인 ‘라스베이거스 선'은 10일자 CES 2019 특별판 1면에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을 톱으로 내걸었다. CES 공식 어워드 파트너인 엔가젯도 이 제품을 ‘최고의 TV 제품(Best TV Product)’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엔가젯은 "큰 화면을 위한 모든 이를 위한 TV지만, 거대한 검은색 거울이 항상 거실을 지배하지는 않는다"며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은 딥 블랙과 초당 120프레임 4K를 지원하는 HDMI 2.1을 포함한 LG의 다른 2019년형 올레드 TV와 똑같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 가볍게 입기만 하면 힘이 쑥쑥…삼성 GEMS-H

삼성전자는 CES 2019에서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으나, 정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제품 중 하나는 올해 처음 선보인 로봇 플랫폼 ‘삼성봇'이었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기술을 망라한 삼성봇은 건강·환경 등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시대에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부스에서 ▲실버 세대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주는 반려 로봇 ‘삼성봇 케어' ▲집안 공기가 오염된 곳을 감지해 직접 이동하면서 공기질을 관리해주는 ‘삼성봇 에어' ▲쇼핑몰이나 음식점 등에서 결제와 서빙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삼성봇 리테일' ▲웨어러블 보행보조장치 ‘GEMS’를 전시했다.

CES 2019 삼성전자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웨어러블 보행보조장치 GEMS-H 시연을 보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CES 2019 삼성전자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웨어러블 보행보조장치 GEMS-H 시연을 보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이 중 하체 외골격용 웨어러블 보행보조장치 GEMS-H가 엔가젯 선정 ‘최고의 접근성 기술(Best Accessibility Tech)’로 선정됐다. GEMS-H는 23% 적은 노력으로 또는 20% 더 빨리 걸을 수 있는 파워 어시스트 기능과 부상 후 재활을 돕기 위해 적당한 저항을 제공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엔가젯은 "삼성 GEMS-H는 무게가 4.6파운드(2.08㎏)로 가볍기 때문에 착용하기 쉽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매력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 완성도 떨어져도 화제성만큼은 최고…로욜 플렉스파이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를 표방하며 폴더블폰을 선보인 중국의 로욜(Royole)도 CES 2019에 참가해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로욜은 폴더블폰 ‘플렉스파이'를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 공개했는데, CES 2019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데뷔전을 치른 셈이다.

로욜 플렉스파이. / 씨넷 갈무리
로욜 플렉스파이. / 씨넷 갈무리
플렉스파이는 아웃폴딩(디스플레이가 바깥으로 접히는) 방식의 폴더블폰이다. 삼성전자가 출시할 폴더블폰은 인폴딩(디스플레이가 안으로 접히는) 방식으로, 폴더블 패널의 곡률(굽힐 수 있는 정도)이 더 높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로 알려져 있다. 플렉스파이와 비슷한 형태로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 시제품이 기존에도 여럿 나왔다는 점에서 혁신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분위기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썩 좋지 않은 편이다. 실물을 직접 본 관람객의 반응을 종합하면 ‘접었다 폈을 때 자국이 남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께가 두툼해 접었을 때 휴대하기 불편하다’, ‘접었을 때 디스플레이가 잘못 눌려진다', ‘가운데 있는 고무가 떨어져 나간다'는 지적이 나왔다.

IT 전문 매체 더버지는 "기기를 돌리거나 접거나 펼칠 때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며 "로욜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워터 OS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매체 씨넷은 "화면 방향을 전환하는 동안 버그가 있었다"며 "디자인 측면에서 여전히 세련된 제품이 아닌 시제품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제품의 경쟁력은 떨어져 보인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지만, 삼성전자가 ‘제대로 된' 폴더블폰을 선보이기 전 열린 CES 2019에서 화제성 만큼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는 점에서 로욜의 승부수는 통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50만원에 달하는 이 제품이 실제로 상용화됐을 때 시장은 냉정하게 반응할 것이다.

◇ 미래 항공택시는 이런 모습?…벨 ‘넥서스'

CES는 최근 몇 년새 모터쇼를 방불케 할 정도로 완성차 업계의 참가가 줄을 잇는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이 IT 업계를 넘어 완성차 시장에도 화두로 떠오르면서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이 급성장한 탓이다. CES 2019에서도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내 노스홀에서 미래차의 경연이 펼쳐졌다.

CES 2019에 전시된 벨 넥서스. / 비즈니스 인사이더 갈무리
CES 2019에 전시된 벨 넥서스. / 비즈니스 인사이더 갈무리
LVCC 노스홀에 들어서면 웅장한 크기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거대한 물체가 맞이한다. 바로 헬리콥터 제조사 벨(Bell)’의 수직이착륙 항공택시 ‘넥서스(Nexus)’다. 항공택시라고는 하지만, 외형은 거대한 드론처럼 생겼다. 넥서스는 실제로 드론처럼 전기로 주행한다. 벨은 하늘을 나는 택시를 개발 중인 우버 엘리베이트의 파트너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넥서스는 시제품인 관계로 실제로 날지는 못한다. 벨에 따르면, 넥서스는 5인용으로 상하 동작하는 프로펠러 덕트 팬 6개로 양력과 추진력을 동시에 얻는다. 최대 중량 600파운드(272㎏)을 운송할 수 있다고 한다. 수직이착륙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간 제약도 적다. 벨은 넥서스를 2020년 중반쯤 실제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벨 넥서스를 CES 2019 최고의 새로운 운송수단(Best New Transportation)으로 선정하고 "미래 운송수단을 얘기할 때 스쿠터와 주율주행 셔틀 등이 더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비행 택시는 이보다 더 흥미진진하다"고 논평했다.

◇ CES 2019 ‘최고 중의 최고’ 제품은?

CES를 수식하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라는 표현 때문에 CES에서 전자기기만 넘쳐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술이라면 CES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가젯이 CES 2019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제품(Most Impactful Product)이자 최고 중의 최고(Best of Best)로 뽑은 제품이 좋은 예다.

임파서블 버거 2.0. / 엔가젯 갈무리
임파서블 버거 2.0. / 엔가젯 갈무리
주인공은 바로 푸드테크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임파서블 버거 2.0’이다. 엔가젯 에디터진의 입맛을 제대로 사로잡은 이 햄버거가 바로 CES 2019 최고의 제품으로 선정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식품벤처기업 임파서블푸드가 선보인 임파서블 버거는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패티로 실제 소고기와 흡사한 맛과 식감을 내는 제품으로, 이미 미국에서는 제법 유명하다.

CES 2019에 등장한 2세대 제품 임파서블 버거 2.0은 더욱 실제 음식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1세대 제품이 스테이크 맛이었다면 2세대는 일본 고베 품종의 꽃등심 맛을 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물론, 맛은 소고기지만 칼로리는 훨씬 낮다. 공장식 축산업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발생이나 도축에 따른 인도적 문제 등에서도 자유롭다.

엔가젯은 "식물성 단백질은 당신에게도 좋고, 지구를 도울 수 있지만 맛이 없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라며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지구에서 우리가 소고기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억제할 수 있을 때까지는 임파서블 버거 2.0의 우리의 차선책이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엔가젯의 호평은 어디까지나 CES가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매년 자기 체중이 넘는 양의 소고기를 소비한다. 무엇보다 햄버거는 미국을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푸드테크가 더 건강한 개인, 더 건강한 지구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란 관측에 동의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꼭 임파서블 불고기 2.0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기술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CES 2019는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