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가 자율주행 등으로 대변되는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차량용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일제히 나선다.

차량용 반도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인텔,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치열하게 경합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모두 아우르며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삼성전자가 CES 2019에서 전시한 디지털 콕핏.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CES 2019에서 전시한 디지털 콕핏. / 삼성전자 제공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2018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323억달러(36조26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까지 연평균 성장률도 12.5%로 전체 반도체 시장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 6.1%와 비교해 두 배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시장조사업체 IHS도 2020년까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553억달러(62조85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관측했다.

반도체 업계가 자동차 주목하는 이유는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구조적으로 완전히 궤를 달리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동차는 개인이 소유하는 가장 크고 비싼 전자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PC, 스마트폰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양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운전자나 탑승자의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부품이기도 하다.

차량용 반도체는 ▲차량 내·외부의 온도, 압력, 속도 등 각종 정보를 측정하는 센서 ▲전기제어장치(ECU)를 포함한 엔진·트랜스미션 등 각종 전자장치를 조작하는 전자제어장치 ▲각종 부품을 구동하는 모터의 구동장치 등에 두루 쓰인다. 통상 차 한 대에는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센서 등을 포함해 200~300개의 반도체가 탑재된다. 반도체 업계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한 대에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될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19’에서 각각 자사의 차량용 반도체 알리기에 적근 나선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차량이 요구하는 내구성 기준을 충족하는 D램이나 임베디드 유니버설 플래시 스토리지(eUFS) 등을 주로 선보였으나, 최근에는 자동차 전용 프로세서 등 비메모리 반도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차량용 반도체 브랜드 ‘엑시노스 오토'를 런칭하고, 3개월 만에 아우디에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용 프로세서 ‘엑시노스 오토 V9’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엑시노스 오토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용 V 시리즈 외에도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A 시리즈, 텔레매틱스 시스템용 T 시리즈 등으로 구성된다. 삼성전자는 완성차 제조사가 필요로 하는 특화된 기능의 차량용 프로세서를 지속적으로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그룹 관계사와 함께 처음으로 CES에 참가해 ‘메모리 중심 모빌리티'를 콘셉트로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 솔루션을 소개했다. 자율주행 환경에서 데이터가 주행 경험과 안정성 향상에 직결된다는 점을 내세워 차량과 데이터센터 간 통신과 데이터 분석에 활용되는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등을 전면에 부각했다.

SK하이닉스 역히 향후 차량용 비메모리 반도체로도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2016년 말부터 오토모티브 전담반을 꾸리고 메모리를 시작으로 차량용 반도체 전방위 연구에 돌입한 터다. 자율주행차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인공지능(AI) 연산에 최적화된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을 개발해 제품화하는 것이 목표라는 관측이 힘이 실린다.

차량용 반도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공통된 관심사다. D램 시장 3위 업체인 미국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차량용 반도체 시설투자에 향후 30억달러(3조367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마이크론은 무리한 비메모리 반도체 투자보다는 메모리 분야에서 자율주행차에 특화된 제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최근 몇 년간 인수합병(M&A)이 가장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인텔의 모빌아이 인수를 비롯해 르네사스의 인터실 인수, 아나로그디바이스의 리니어테크놀로지 인수 등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굵직한 M&A 사례로 꼽힌다. 모바일 칩 시장 강자 퀄컴도 네덜란드 1위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인수를 추진하며 역대 반도체 업계 최대 M&A 사례로 주목받았으나, 미중 무역분쟁에 휘말려 최종 인수는 무산됐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19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이 4890억달러(545조원)로 지난해보다 2.6% 늘어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앞으로 시장이 다소 불안하겠지만, 중장기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으로, 특히 자동차와 스토리지용 수요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라고 분석했다.